20년째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땜질 방치…안전운임제 근본 해결 없인 또 ‘시한폭탄’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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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부터 2022년 반복되는 화물연대 파업 왜?

2003년부터 반복되는 화물연대 총파업
최소 운임 보장, 다단계 개선 등이 이슈
정부, 표준운임 요구 단기지원으로 모면
안전운임제 도입으로 갈등 잠복만 지속

화물연대본부 총파업 15일째이자 건설노조 소속 부산·울산·경남 레미콘·콘크리트펌프카 기사들이 동조파업에 돌입한 8일 오후 부산 남구 신선대 부두에서 컨테이너 선적 및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화물연대본부 총파업 15일째이자 건설노조 소속 부산·울산·경남 레미콘·콘크리트펌프카 기사들이 동조파업에 돌입한 8일 오후 부산 남구 신선대 부두에서 컨테이너 선적 및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의 총파업이 보름째 이어지면서 2003년 화물연대 총파업 기간을 넘어 역대 최장 기간 파업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화물연대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장기간 노동에 따른 저가 운임 탈피와 안전 보장’ 이라는 이유로 총파업에 나서고 있다. 정부가 총파업이라는 현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단기적 해법을 제안하는 것이 아닌 물류 체계 체질 개선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8일 철강·석유화학 업종 운송거부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면서 화물연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더 높였다. 화물연대 총파업이 노-정 대화도 없이 보름째를 맞이하면서, 여전히 상황은 안갯속이다.

2003년부터 시작된 화물연대의 총파업은 ‘최소한의 운임 보장’과 ‘다단계 하청 구조 등 제도개선’을 이유로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화물차 기사는 19년 전과 똑같이 특수고용노동자로 최저 임금이나 노동법상의 여러 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 화주(화물 주인)가 운수사에 화물을 옮겨달라고 돈을 지불하면 운수사가 개인 화물차 기사에게 운송을 맡기는 구조다. 통상 화주는 입찰을 통해 운송사와 계약을 맺고, 선정된 운송사는 다시 소형업체에 하청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다단계 구조에서 수수료를 떼이면서 화물차주의 임금은 줄어드는 생태계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2003년 당시 화물연대는 이러한 구조를 탈피하고자 △지입제(개인 소유 화물차를 운수사에 등록하고 회사 이름으로 차를 운행)와 다단계 알선제 폐지 △지금의 안전운임제인 표준요율제 등을 요구했다. 2008년과 2009년 그리고 그 이후 일어난 화물연대 총파업도 장시간 노동에 비해 지나치게 적은 운임과 교통 안전 개선 등 같은 이유로 촉발됐다.

2008년 총파업은 당시 치솟는 유가를 따라가지 못해 화물차 기사들이 적자 운행을 면치 못하면서 시작됐다. 노조와 정부가 운임 인상과 지금의 안전운임제인 표준운임제 법제화에 대해 논의하기로 합의하면서 파업은 일주일 여 만에 막을 내렸다.

2012년에도 화물연대는 총파업에 나섰는데, 화물차 기사들의 적정 이윤을 보장하는 ‘표준운임제’의 법제화를 요청했다. 열흘간 총파업이 이어진 2016년에도 개인 소유 화물차를 운송사업자 귀속시키는 ‘지입제’를 폐지하고 표준운임제를 법제화하자고 강력히 요구했다. 화물연대는 꾸준히 최저 수입 보장을 위한 표준운임제 도입을 시도했으나, 정부는 경유가에 보조금을 더하거나 화물차주들의 비용을 일정 부분 지원해주는 단기적 해법으로 상황을 모면하면서 정작 중요한 제도 도입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화물연대의 끈질긴 투쟁 끝에 2020년부터 교통 안전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운임을 정하는 안전운임제가 시행됐다. 안전운임제는 화물 기사에게 최소한의 임금을 보장해주는 제도로 화주, 운수사업자, 화물차주 등이 포함된 안전운임위원회에서 매년 협상을 통해 이를 결정한다.

그러나 2020년부터 시행된 안전운임제는 3년 시한의 일몰제라서 올해 말 만료돼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이번 화물연대 총파업 핵심은 올해 말 만료되는 △안전운임 일몰제 폐지 △품목 확대이다. 화물 품목 중 컨테이너와 시멘트에만 안전운임제가 적용되고 있는데 철강이나 위험물 등으로 품목을 확대하고 안전운임제를 무기한 연장하자는 것이 화물연대의 파업 투쟁 이유이다. 최소 운임을 계속 보장해야 화물 기사들이 과로·과적·과속의 위험에 내몰리지 않고 안전 효과도 개선된다는 것이 화물연대의 입장이다. 이번 총파업에 참여한 화물연대 부산지역본부 김해지부 소속 한 화물노동자는 “기름값과 보험, 할부금 등을 다 제외하면 실제로 가져가는 돈은 200만 원 조금 넘는데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상황은 그대로인 거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안전운임제가 물류비 부담을 초래하고 이에 대한 비용은 시민이 감당하기 때문에 화물연대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며 파업은 장기화됐다. 정부는 현재 안전운임제가 적용되는 두 품목에 대해서만 3년 간 연장하고 다른 품목으로 확대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이뿐만 아니라 안전운임제가 화물 기사들의 교통 안전 효과도 불분명하다고 주장하며 양측은 대화도 없이 장기간 대치를 이어오고 있다.

화물연대 측은 ‘안전운임’라는 제도가 제대로 정착도 하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지 않다면 향후에도 화물연대 파업은 같은 이유로 또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화물연대 부산지역본부 송천석 본부장은 “안전운임이라는 제도를 도입했으면 이에 대한 효과가 뚜렷이 나타날 수 있도록 제도 안착을 위해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며 “단기적으로 현 파업 상황을 모면하려는 것이 아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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