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도시철도 무임승차 “더는 못 참겠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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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쏘아 올린 도시철도 국비 요청
적자 보전 지원 없으면 내년에 요금 인상
부산 도시철도는 서울보다 더 열악한 상황
정부도 지자체와 협의, 해결책 모색해야

전국의 도시철도 무임승차로 인한 재정 적자 문제가 이제 막다른 골목으로 접어드는 느낌이다. 그동안 정부에 여러 번 무임승차로 인한 재정 적자 보전을 요구해 온 지자체가 요금 인상을 통한 자구책을 직접 모색하는 양상이다.

그 첫 테이프를 최근 서울시가 끊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9일 매년 1조 원 정도의 적자를 보고 있는 서울 도시철도에 대해 정부가 손실 보전을 해 주지 않으면 내년에 요금 인상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것이다. 오 시장이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 해소를 위해 도시철도의 요금 인상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그 파장이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초고령화 도시인 부산은 도시철도 무임승차의 비율이 서울에 비해 배가량 높다. 부산일보DB 초고령화 도시인 부산은 도시철도 무임승차의 비율이 서울에 비해 배가량 높다. 부산일보DB

■ 한계에 이른 도시철도 재정 적자

오 시장이 도시철도 적자에 대해 정부에 포문을 연 것은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 폭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 시장은 “정부가 도와주지 않는 것으로 정리된다면 요금 인상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될 수 있다”며 자구책 마련을 선언했다.

서울 도시철도를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당기 순손실은 2020년 1조 1137억 원, 지난해엔 9644억 원이었다. 이 가운데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액은 25% 안팎인 2700억 원 정도. 그 이전 3년 동안엔 무임승차 손실액 비중이 60%를 넘었으나, 코로나 여파 등으로 다소 줄었다.

비교적 재정 상태가 나은 서울시에 비해 부산의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하다. 초고령화 도시인 부산의 경우 도시철도 무임승차 비율은 서울보다 2배가량 높다. 이로 인한 부산교통공사의 당기 순손실은 2020년 2634억 원, 지난해엔 1948억 원이었다. 이중 무임승차 비중은 2020년 40%인 1045억 원, 지난해에는 1090억 원으로 56%에 달했다. 역시 코로나 여파로 인한 유동인구 감소가 무임승차 손실 비중을 다소 낮춘 요인이 됐다.

그 이전인 2019년엔 92%, 2018년 79%, 2017년 84%로 사실상 무임승차 손실액이 당기 순손실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이미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부산은 무임승차 인원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앞으로도 이 비중을 줄일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정부는 철도산업발전기본법에 근거해 코레일의 무임 수송에 따른 손실의 60%가량을 매년 보전해 주고 있다. 고속열차 ‘KTX-이음’의 운행 모습. 연합뉴스 정부는 철도산업발전기본법에 근거해 코레일의 무임 수송에 따른 손실의 60%가량을 매년 보전해 주고 있다. 고속열차 ‘KTX-이음’의 운행 모습. 연합뉴스

■ 코레일은 보전, 도시철도는 외면

현재 정부는 철도산업발전기본법에 근거해 코레일에 대해선 무임 수송에 따른 손실의 60%가량을 매년 보전해 주고 있다. 그러나 노인복지법에 따라 65세 이상 노인에게 무임승차를 제공하고 있는 도시철도에 대해선 도시철도법에 이와 관련된 규정이 없다.

도시철도를 운영 중인 지자체들은 1984년 5월 당시 정부가 만 65세 이상 노인에게 100% 요금 면제 제도를 도입해 놓은 뒤 이에 따른 부담은 고스란히 지자체에만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는 지자체의 손실 보전 요구에 대해 도시철도는 운영 도시의 노인층 등 특정 계층만 혜택을 보기 때문에 국비 지원을 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에 대한 무임승차는 정부의 결정이었지만, 이는 보편복지가 아니라 특정 이용자에만 한정되는 혜택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무임승차 손실액을 지원하면 도시철도가 없는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까지 불거질 수 있어 현재로선 지자체가 알아서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무임승차로 인한 도시철도의 재정 적자 문제가 심각한 상황인 만큼 정부와 각 지자체 간 적극적인 협의를 통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때다. 한 시민이 승강장에서 전동차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 부산일보DB 무임승차로 인한 도시철도의 재정 적자 문제가 심각한 상황인 만큼 정부와 각 지자체 간 적극적인 협의를 통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때다. 한 시민이 승강장에서 전동차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 부산일보DB

■ 더는 외면 곤란, 현실적 대책 필요

정부의 입장은 여전히 강경한데, 무임승차로 인한 재정 적자는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더는 이 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도시철도를 운영하는 각 지자체가 협의를 통해 현실적인 대책 모색에 나서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특히 내년부터는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를 상징하는 ‘58년생 개띠’부터 만 65세로 접어들면서 무임승차 인구도 크게 늘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따라 무임승차 연령을 더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는 법률 개정 사항이어서 여야 간 합의가 쉽지 않다.

따라서 일단 우리 현실에 맞는 조건을 달아 탄력적인 운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세계 주요국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100% 무료인 나라가 없는 만큼 전액 무료가 아닌 부분 할인 또는 소득 수준에 따른 혜택 부여나 무료 승차 시간대의 탄력적 운용 등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또 당장 전액 국비 지원이 부담스럽다면 무임승차 손실액의 5% 또는 10% 정도로 조금씩 지원하면서 향후 인구 추계에 따른 기준 상향 등 여러 대안을 중장기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어쨌거나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자체장 중 처음 이 문제를 공식 제기한 이상 정부도 마냥 이를 외면하기가 어려워졌다. 무임승차 비율이 더 높은 부산을 비롯한 다른 지자체들도 잇따라 공식적인 의견을 표명할 가능성도 매우 커졌다.

도시철도 무임승차 문제는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들의 이동권이라는 기본권과 연결된 데다가 보편복지와 지역 간 형평성, 여기다 달라진 사회적 인식까지 아울러야 하는 고차원의 방정식이 됐다. 정부도 더는 이 문제를 지자체에만 맡겨 둘 게 아니라 당면한 과제로 인식해 지자체와 적극적인 협의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단계가 됐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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