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깜깜이 법안’ 심사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 김종우 기자 kjongwo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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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 ‘선진화법’ 후 최악 지연 사태
대통령실 “힘에 밀려 민생 예산 퇴색”

지난 24일 새벽 0시 55분 국회 본회의에서 2023년도 예산안이 의결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4일 새벽 0시 55분 국회 본회의에서 2023년도 예산안이 의결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도 예산안이 지난 24일 진통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여야가 밀실에서 '주고받기'식으로 협상하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고 쟁점 법안을 제대로 논의도 하지 않고 한꺼번에 졸속 처리하는 등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국회 예결특위는 법정 활동 기한인 지난달 30일까지 감액 심사도 완료하지 못한 채 활동을 종료했고, 예산안은 이른바 '소(小)소위' 단계로 넘어갔다. 소소위는 교섭단체 원내 지도부와 예결위 간사 등 소수 인원만 참여하는 협의체로, 국회법상 근거 조항이 없어 속기록도 남지 않고 비공개로 회의가 이뤄진다. '깜깜이 심사' '밀실 심사'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는 이유다.

그러나 여야는 '소소위'에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예산안은 법정 처리시한(12월 2일)을 넘긴 데 이어 정기국회 기한(12월 9일) 내에도 처리되지 못했다. 결국 양당 원내대표들의 협상과 담판을 통해 지난 22일에야 합의가 이뤄졌고, 이는 2014년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최악의 예산안 처리 지연 사태로 기록됐다.

예산안과 함께 처리된 19건의 세법 관련 예산 부수 법안 역시 제대로 된 심사를 거치지 않았다. 법인세,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등 쟁점 법안에 대한 심사는 상임위에서부터 여야가 큰 견해차를 노출했다.

여야가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을 넘기자 결국 이들 법안은 여야 정책위의장과 예결위 간사가 구성한 '2+2 협의체'로 넘어갔다. 여야는 줄다리기를 거듭하다 22일 새해 예산안과 예산 부수 법안을 한꺼번에 합의했고, 이들 법안은 본회의에서 일괄 처리됐다.

본회의에서도 '깜깜이' 법안 심사가 반복됐다는 지적이 터져 나왔다. 당 안팎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고, 밀실 협의인 만큼 법안이 여야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모든 과표구간에서 법인세율을 1%포인트 인하하는 내용의 법인세법 개정안은 정의당과 민주당에서 반대표가 37표나 나왔다. 기권표도 일부 민주당 의원이 가세하며 34표나 됐다.

대통령실은 여야가 합의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힘에 밀려 민생 예산이 퇴색됐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합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면서도, 국회 다수 의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실력 행사'에 밀려 정부 예산안 취지가 상당 부분 후퇴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마지막까지 원칙을 지키며 최선을 다하라"고 '원칙'을 강조했지만 힘에 부친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정부의 국정 기조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데 대해 아쉬워하는 모습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일부 부처 장관의 소극적 대응, 당정의 정무 역량 부족 등 책임론이 제기될 조짐이다. 내년 초 개각과 대통령실 개편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 김종우 기자 kjongwo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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