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수도권이 우스워 보여요?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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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국 경제부 산업팀장

부산살이 시작해야 할 산업은행 임직원
이들에게 이전 지원 시책은 ‘당연한 보상’
수도권 일극체제 속 상대적 낮은 부산 선호
인정할 건 인정해야 균형발전 맞춤 전략 나와

“수도권이 우스워 보이세요?”

사업하는 지인이 수도권의 한 소도시로 짐을 쌀까 고민이랍니다. ‘인구 80만도 안 되는 곳보다야 부산이 낫지 않느냐’ 했더니 피식 웃으며 이렇게 답합니다. ‘거긴 강남에서 한 시간 거리’라는 말도 덧붙이고요. 그 짧은 문답 속에 부산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난 듯해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부산의 도시 경쟁력이란 참 우울한 수준이죠. 어쨌거나 수도권 일극체제가 된 대한민국에서 강남과 가장 먼 곳에 자리 잡은 땅이 아닙니까. 산업은행을 김포나 의정부로 이전한다고 했어도 저리 반발이 심했을까요. 서글프지만 분명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이번 주부터 부산시가 산업은행 이전 지원을 위한 시책 보따리를 풉니다. 주택 특별공급에 지방세 감면, 직장어린이집 등의 지원이 검토될 참입니다. 물론 적잖은 도움이 될 지원책입니다.

그러나 부산살이에 ‘자부심’이나 ‘자기만족’을 불러 일으킬 요소는 보이지 않습니다. 부산에 가든, 대구에 가든, 광주에 가든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나올만한 지원책입니다. 그걸 ‘이 정도면 굉장하지?’ 하는 시혜적인 태도로 전한다면 부작용만 커질 테죠.

지난주 가족과 겨울 여행으로 다녀온 경주가 떠올랐습니다. 썰렁한 보문단지와는 대조적으로 황리단길은 불황이 맞나 싶을 정도로 북새통이었습니다. 해운대 해리단길처럼 웨이팅이 끊이지 않지요.

사람을 불러 모으는 이들 ‘리단길’에서 얼마나 합리적인 가격에 식사를 할 수 있느냐를 따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리단길’의 성공 여부는 그곳에서 얼마나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힙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에서 갈립니다.

자본주의의 천박한 풍경이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움직이고, 돈을 움직이고, 급기야 시류까지 움직인다면 그 천박함은 더 이상 천박함이 아닌 거지요. 성공적인 마케팅 전략입니다.

문현금융단지에서 근무하다 서울로 돌아간 한 공기업 간부는 자리가 있을 때마다 동천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강제로 이전까지 시켜놓고 부산시가 인근 하천 하나 정비해 놓지 않았다는 게 그의 주된 불만이었습니다. 그의 부산살이를 힙하게 한 건 아름다운 황령산 등산로였고, 불쾌하게 했던 건 열악한 동천의 수질이었습니다.

또 다른 공기업에서는 금융단지 입주 초기 식사 자리를 찾아 ‘썩은다리’를 건너 시장을 지날 때면 자괴감마저 느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비슷한 맥락 아니겠습니까?

판박이처럼 내놓는 이전 지원책에 고마워하고 감격할 사람은 없습니다. 다들 그건 타향살이를 감내한 당연한 ‘대가’라 여길 테니까요. 거기에 더해 부산살이가 만족스러울만한 ‘플러스알파’가 있어야 합니다. 요는 귀가 후 가정에서 ‘당신을 따라 부산 왔더니 이게 좋다, 저게 좋다’라는 말이 나올 만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사실 연고 기관을 대하는 부산시의 태도가 섬세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놓친 집토끼가 어디 한둘이던가요.

프로농구 연고지를 뺏길 때도 그랬습니다. 구장 사용료가 비싸다고, 코트 관리가 엉망이라고 그렇게 하소연 해도 귀를 틀어막고 있었지요. 그 사이 KT는 차곡차곡 수원행을 준비해 훌쩍 떠나버렸습니다.

‘어떻게 330만 명이 사는 대도시를 포기할 수 있지?’라는 건 부산의 오판이었습니다. 선수에게도, 구단 직원에게도 서울을 들락거릴 수 있는 수원은 부산보다 나은 근무지였던 겁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요.

그래도 새해 벽두에 부산시가 기장군에 향토기업 금양의 이차전지 생산기지를 품었다는 소식은 고무적입니다. 적극적으로 산단 매각 중재에 나섰습니다. 시외로 나갈 뻔한 기업에게 한 달 만에 매수확약을 받아낸 부산시의 자세는 분명 달라진 모습입니다.

‘부산 정도면 괜찮지’하는 자신감에 도취되면 자기 객관화가 어렵기 마련입니다. 적어도 직장 종사자 입장에서는 부산이 수도권 중소도시보다도 선호도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부산시의 지원 시책 보따리에 ‘감성’이라는 조미료를 주문해 봅니다. 추가적인 공공기관 이전까지 노린다면 이들 종사자의 입맛에 맞춰 ‘생 당근’이 아니라 ‘당근 코스요리’가 준비되어야 하는 게 당연지사 아니겠습니까? 그래야 이들의 불만을 달래고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는 데 들어갈 부산의 사회적 비용도 줄어들 테니까요.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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