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의 디지털 광장] 지역 뉴스에 기부할 수 있다면
모바일전략국장
미국, 지역 뉴스 사막화로 부작용 심화
공공성 위해 신문사, 자선 단체 전환
구독료 세액 공제로 기부 모집 독려
일본도 기부 대가 지역 신문 구독 제공
한국도 신뢰 받는 지역 신문 많아져
기부가 저널리즘 유지할 수 있기를
한국의 뉴스 트래픽은 검색 플랫폼(네이버와 다음)에 쏠려 있다. 문제는 포털 주도의 디지털 공론장이 중앙 집권적이라는 점이다.
대다수 지역 매체는 ‘콘텐츠 제휴(CP)’의 문턱을 넘지 못해 뉴스 유통에 제약을 받고 있다. 지역 목소리가 과소 반영되는 디지털 공론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일뿐이다. 그 결과 중앙 집권은 공고화되고 지역 균형 발전의 구호는 공염불에 그치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지역 뉴스 생태계 붕괴가 초래하는 부작용은 미국이 반면교사다. 구글과 유튜브 등속의 외부 플랫폼에 광고와 뉴스 트래픽을 빼앗긴 미국 지역 신문과 방송은 줄줄이 파산했다. 전국에 걸쳐 ‘지역 뉴스의 사막화’가 나타났다.
동네 뉴스가 사라지고 중앙 뉴스만 득세한 데 따른 후유증은 혹독했다.
소도시에 유사 언론이 횡행했다. 소고기 맛 식품 첨가물에 빗댄 핑크 슬라임(Pink-slime) 저널리즘, 즉, 가짜 언론이 지역 여론을 참칭했다. 다양성이 사라지고 편견과 증오를 부르는 콘텐츠가 만연한 결과, 여론의 양극화와 극단적 진영 갈등으로 번졌다. 대선 결과에 불복한 시위대가 의회에 난입한 탓에 당선자 발표까지 지연된 사태는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
지역사회, 언론학계, 정치권까지 나서 대책 마련에 나섰으나 만시지탄이었다. 지역 언론에 세금을 감면하는 ‘지속가능한 지역 언론 법안(Local Journalism Sustainability Act)’도 결국 좌초했다.
뉴욕타임스 같은 극소수 전국구 매체가 독자 1000만의 경이적인 성과를 얻은 이면에 대다수 지역 언론은 독자와 광고주를 잃고 감원, 합병, 폐업으로 내몰렸다. 이 지경에 이르자 뉴스의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시도가 등장했다.
솔트레이크트리뷴은 탐사 보도로 유명한 유타주 지역 신문인데 2019년 비영리로 전환하면서 신문업계에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뉴스 생산과 배포에 있어 이윤 추구를 포기하고 비영리 법인으로 전환한 것이다.
신문사 경영은 더 이상 영리 모델이 아니다. 대신 공공재인 뉴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기부 금품을 모집한다. 구독료 혹은 기부금에 세액 공제를 제공하는 공공 자선 단체가 된 것이다.
미 연방 국세청(IRS)은 까다로운 심사를 거칠 것이란 예상을 깨고 신속하게 자선 단체 지위를 승인했다. 미국 레거시 미디어 중 최초다. 2022년 1월 시카고선타임스가 6100만 달러(우리 돈 750억 원)의 기부금을 모아 자선 단체 지위를 획득하는 등 비영리 전환 시도가 이어졌다.
“기존 지역 신문 비즈니스 모델은 붕괴됐고 회복될 수 없습니다.”
솔트레이크트리뷴 소유주이자 발행인인 폴 헌츠맨은 언론사가 지역 자산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그는 한 걸음 나아가 “신문의 사명과 목적은 본질적으로 자선(charitable in nature)이었다”고 정의한 뒤 저널리즘에 충실한 보도를 이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영국의 진보 매체 가디언처럼 후원 회원을 모집하는 경우와 달리 세법상의 비영리 단체를 추구한 건 전례 없는 시도다. 레거시 미디어가 디지털 온리 환경에서 저널리즘에 자선을 접목하는 새로운 실험을 선택한 것이다.
일본 지역 신문도 기부를 매개로 한 확장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일본의 ‘고향납세’는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세금처럼 보이지만 실은 기부 제도다. 도시민이 지역의 지자체에 기부하면 세액 공제와 함께 해당 지자체가 제공하는 답례품을 받는다.
눈여겨볼 대목은 ‘고향납세’가 지역 신문에 구독자 확장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고향납세’에 등록된 답례품은 통상 특산품인데, 이중 신문 구독권을 제공한 전국의 지역 신문은 모두 113곳에 이른다.
배달 권역 밖이라 구독이 불가능했던 출향인도 고향에 기부하고 답례품으로 유료 지면보기 앱 혹은 지면 구독권을 받아 고향 소식을 알게 되는 방식이다. 지역 신문은 구독 권역을 전국으로 확장해서 좋고, 출향 인사는 전국지나 포털이 알려주지 않는 지역 소식을 접할 수 있어 상호 이익이다. 공공적 기부 제도가 낳은 지역 뉴스의 선순환 구조다.
올해 한국에서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됐다. 일본의 ‘고향납세’와 같은 취지다. 기부금의 30%까지 재화와 서비스로 돌려받는 구조가 동일하다.
한국의 지역 신문도 기부를 매개로 수도권 독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지역민 눈높이에 맞춘 보도, 저널리즘에 충실한 보도로 지역의 신뢰 자산으로 존재감이 굳건한 지역 매체라면 가능할 것이다.
고향사랑기부제를 계기로 기부하고 싶은 지역 신문이 많이 발굴됐으면 좋겠다. 지속 가능한 지역 언론을 유지하고, 지역의 목소리를 전국에 전할 수 있게!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