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알츠하이머 감염설
치매에 걸린 시아버지와 그 수발을 드는 며느리. 이보다 비극적인 조합이 또 있을까. 40대 직장 여성이 주인공이다. 시아버지는 여자의 권위 따위란 인정할 생각이 전혀 없는 공군 출신의 가부장적 남성이다. 둘 사이가 좋을 리 없다. 갑자기 시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시아버지는 치매에 걸린다. 아버지 재산을 가장 많이 물려받은 둘째 아들 부부는 바쁘다는 핑계로 나 몰라라 하고, 막내딸은 감감무소식이다. 아무도 못 알아보는 시아버지는 유독 자신이 미워한 맏며느리만 알아본다. 눈물겨운 아이러니다. 지금 우리나라 얘기는 아니고, ‘여인 사십’이라는 홍콩 영화의 스토리다. 영화가 만들어진 1994년, 이때 이미 홍콩 사회엔 치매의 어두운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치매는 인종과 국적, 지위를 가리지 않는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같은, 시대를 호령한 유명 인사들도 말년에 치매를 앓았다. 투병과 간병을 오가는 긴 세월 때문에 미국에서는 치매의 한 종류인 알츠하이머병을 ‘롱 굿바이’로 부른다. 길고 느린 이별의 시간. 거기엔 건널 수 없는 강이 가로놓여 있다. 치매 환자와 간병 가족 사이를 깊게 흐르는, 몸은 함께하지만 정신은 그렇지 못한 소통 불가의 강물이다. 그래서 누구나 오래 살되 멀쩡한 정신과 인지력이 있는 노년을 꿈꾼다. 삶의 축복을 결정하는 건 결국 생의 종반부다.
전체 치매 환자의 50~60%가 알츠하이머병이다. 아직 정확한 발병 원인을 모른다. 오랫동안 지목된 것은 ‘아밀로이드 베타’라는 이상 단백질이다. 뇌에 쌓이는 이 단백질 탓에 신경세포가 서서히 죽어 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 우울증이나 운동 부족, 식습관도 발병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여겨진다.
최근 알츠하이머병이 ‘감염’으로 유발될 수 있다는 뉴스에 눈길이 쏠리게 된다. 영국 신문 〈가디언〉은 19일(현지시간) 헤르페스 바이러스와 알츠하이머 사이의 연관성을 35년간 연구한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성과들을 보도했다. 요컨대, 바이러스나 미생물이 숙주의 몸속에 잠복해 있다 노화로 면역 체계에 문제가 생기면 활성화돼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대상포진 바이러스와 알츠하이머의 상관관계를 밝힌 연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감염이 발병의 주된 원인임이 밝혀진다면 치료제 개발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치매 치료의 새로운 지평은 열릴 수 있을까.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