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99. 손에 쥐여 줘라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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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팀장

‘…주워 담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꼼짝없이 코가 꿰어 여기까지 왔다.’

어느 책에서 본 구절인데, ‘꿰어’가 어색하다. ‘코가 꿰다’라는 우리말은 없기 때문이다. ‘코가 꿰이다’가 바른 쓰임이므로 ‘코가 꿰여’라야 했다.

‘길림에서 이들을 격려한 신익희는 살을 에이는 듯한 대륙의 추위를 견디며 남경을 거쳐 상하이에 이르렀다.’

반면, 이 문장에 나온 ‘살을 에이는’은 ‘살을 에는’이라야 했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보자.

*에이다: 칼 따위로 도려내듯 베이다. ‘에다’의 피동사.(어찌나 추운지 살이 에이는 듯하다.)

*에다: 칼 따위로 도려내듯 베다.(가뜩이나 빈속은 칼로 에는 것처럼 쓰렸다….)

‘에이다’가 피동사여서 목적어가 어색했던 것. 피동사를 살리려면 목적어 ‘살’을 주어로 만들어 ‘살이 에이는’으로 써야 했다.

‘강시영은 뭔지 모를 사연에 눈물을 글썽이고, 차요한은 강시영의 손에 자신의 우산을 쥐어준다.’

어느 드라마를 설명하는 기산데, ‘쥐어준다’가 잘못. ‘쥐어 주다’는 ‘쥐다+주다’인데, 여기서 ‘주다’는 보조동사. 그러니 ‘쥐어 준다’고 하면 내가 쥐어서 상대방에게 준다는 말일 뿐이다. 저 자리에는 ‘쥐여 준다’가 와야 했다. ‘쥐여 주다’는 ‘쥐이다+주다’인데, ‘쥐이다’는 ‘쥐다’의 사동사. 표준사전을 보자.

*쥐이다: 어떤 물건을 잡게 하다. ‘쥐다’의 사동사.(나는 그의 손에 쪽지를 쥐여 주었다./그녀는 우는 아이에게 사탕을 쥐이고 달래 보았다.)

그러니 상대방의 손에 우산을 잡게 해 주는 건 ‘쥐여 준다’라야 했던 것.

이처럼, 몇몇 동사에 붙는 사동접미사, 혹은 피동접미사 ‘-이-’를 쓸데없는 데 붙여 버릇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나가는 이의 팔뚝에 새겨진 문신을 보고, 자동차 탄 이의 얼굴을 보고, 사람들 발길에 채일 듯 아슬아슬 종종걸음 치는 비둘기를 본다.’

어느 책에서 본 구절인데, 여기 나온 ‘채일’이 바로 그런 예. 발에 내어 질리거나 받아 올려진다는 뜻인 ‘차이다’의 준말이 ‘채다’이니 ‘챌’로 활용해야 했다.

‘…빗소리는 비가 내는 것이 아니라/창문이 내는 아픈 소리/그러니까 내 방에 기대인 창문은/내 곁의 먼 곳이었네.’

심재휘의 시 ‘창문의 발견-런던’의 한 구절인데, 그러므로, 여기에 나온 ‘기대인’도 ‘기댄’이 옳았다.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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