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번개탄과 자살률의 함수?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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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2027년 18명 수준으로 줄이겠다”
다른 부처 이율배반적 대응으로 효과 의문

지난달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자살위기극복 특별위원회 출범식. 연합뉴스 지난달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자살위기극복 특별위원회 출범식. 연합뉴스

■번개탄 해프닝? 과연 해프닝인가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13일 공청회를 통해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을 알렸는데, 이 자리에서 “산화형 착화제가 사용된 번개탄 생산을 금지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인터넷 등에서 “번개탄을 금지한다고 자살이 예방되냐”는 등 비판과 조롱이 줄을 이었다. 정부는 “번개탄 생산 중단 계획은 없다”며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복지부는 자살 예방에 번개탄을 왜 끌어들였을까. 배경이 있다. 복지부는 2020년 ‘자살 수단으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거나 사용될 위험이 상당한 물건’을 자살위해물건으로 지정했다. △일산화탄소 독성효과를 유발하는 물질 △살충제의 독성효과를 유발하는 물질 △제초제·살진균제의 독성효과를 유발하는 물질이 그 대상이다. 번개탄은 일산화탄소 독성효과를 유발하는 물질이다. 그런데 번개탄을 자살위해물건으로 지정한 이후 일산화탄소로 인한 자살 사망자가 17% 정도 줄어들었다는 통계가 최근 나왔다. 번개탄을 없애겠다는 발상이 나올 법도 한 것이다.

그러나 본말이 전도됐다. 자살의 원인이나 배경 등 구조적 문제는 그대로인데 자살 도구나 수단만 규제하면 무슨 소용인가.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워 죽고 싶은 사람이 번개탄이 없어 자살을 포기할까. 핵심은 사람을 자살로 내모는 사회적 조건을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자살과 사회적 조건의 상관관계

2021년 한국의 자살률은 26.0명이었다. 인구 10만 명당 한 해 26명이 자살했다는 의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근 20년째 부동의 1위다. 같은 기간 OECD 국가 평균 자살률은 11.3명이었다.

한국이 OECD에서 1등 하는 게 또 있다. 우울증 유병률이다. 2021년 OECD 평균은 30%인데 한국은 36.8%다. 한국인은 10명 중 4명 꼴로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았다는 이야기다. 우울증이 있으면 자살 위험률이 4배나 높다. 실제로 자살 원인 가운데 60% 이상이 우울증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무엇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가.

짐작되는 통계가 있다. 역시 OECD와 비교 대상이다. 삶의 만족도다. 통계청이 2019~2021년 조사한 자료를 보면, 한국인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는 5.9점으로 나온다. OECD 평균인 6.7점에 크게 못 미친다. 왜 한국인은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가. 눈에 띄는 항목이 있다. 사회적 고립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어려울 때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이 있냐”는 질문에 “없다”라는 응답이 18.9%였다고 한다.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국가에서는 2~4% 정도였다.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는 지난달 16일 자살위기극복 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특위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가시적인 변화를 끌어내겠다고 밝혔다.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말에 그쳐서는 안 된다. 돌아보면, 우리 정부의 자살 예방 정책은 대체로 탁상공론이었다. 체계적이지도, 통합적이지도 않았다. 부처 간 손발도 맞지 않아 진정성까지 의심받는 지경이다. ‘번개탄 해프닝’이 좋은 사례다.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사진은 지하철을 타기 위해 개찰구를 통과하는 노인들. 연합뉴스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사진은 지하철을 타기 위해 개찰구를 통과하는 노인들. 연합뉴스

■자살에 대한 이율배반의 정책들

한국의 자살 사망자 51.1%가 40~60대다. 한창 일할 나이인데 왜 자살하는 이가 많을까. 과로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직장갑질119가 노동자 161명의 자살 원인을 분석했는데, 가장 많은 이유가 과로였다. “죽으면 묘비명에 죽어라 일만 하다가 죽었다고 그렇게 써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자살률을 낮추겠다면서 동시에 노동개혁을 거세게 밀어붙인다. 정부가 말하는 노동개혁의 핵심은 노동시간 유연화다. 여기에 과로의 위험성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됐다. 주 52시간을 3개월 단위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데, 이럴 경우 최장 4주 연속 69시간 근무가 가능하다. 심지어는 연속 휴식 시간조차 제한을 두지 않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한다. 이는 현행 노동부 고시로 정해진 과로 산재 기준을 크게 벗어나는 것이다.

요즘 청소년들의 자살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청소년들의 사망 중 60% 이상이 자살로 인한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우리 청소년들에게서 자살생각률, 우울 위험군 비율, 불안장애 경험률 같은 정신건강 지표가 악화되고 있다며, 능력주의와 경쟁주의,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런데 최근 교육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교육 개혁을 명분으로 새로운 정책을 잇따라 발표했다. 그중 하나가 고교 내신 성취평가(절대평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고교학점제다. 여러 논란에도 교육부는 2025년 시행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고교 서열화가 심화되고, 중학교 때부터 입시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한쪽에선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을 걱정하는데 다른 한쪽에선 정신을 황폐하게 만드는 경쟁으로 아이들을 내모는 꼴이다.

한국은 노인 자살률이 유달리 높다. 인구 10만 명당 60대는 33.7명, 70대는 46.2명, 80세 이상은 67.4명이다. OECD 평균보다 2~3배 높다. 전문가들은 노인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선 새로운 특별한 대책보다는 이미 사회 공동체 안에 만들어진 시설이나 프로그램에 노인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지하철 등 교통수단에 대한 노인 무임승차제도가 그렇다. 노인 무임승차 정책으로 노인 자살자 수가 크게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노인들이 교통비 제약 없이 이동하면서 외부 활동이 활발해지게 되고 우울증 감소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를 비용으로 환산하면 연간 3600억 원 정도라고 한다. 지금 노인 무임승차제도는 폐지될 위기다. 적자가 쌓인다는 이유에서다. 부산과 서울 등 지자체는 국비 지원을 요청하지만 정부는 외면한다. 노인 자살률 문제에서 알 수 있듯이 노인 무임승차제도는 보편적인 노인복지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국비 지원은 당연한 것인데도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부처별 일관된 대응으로 협력해야

지금 이 시각에도 우리 사회 구성원 중 누군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그 수가 하루에 36.6명, 시간당으로는 1.5명이다. 정신건강, 경제적 궁핍, 질병, 가정불화, 학업이나 업무 스트레스 등 원인이야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문제는 개인의 노력으로는 이 비극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는 점이다. 개인을 보듬는 사회적 안전틀이 촘촘하고 튼튼해야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마침 복지부는 2027년까지 자살률을 18.2명 수준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부디 소기의 성과를 거두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번개탄 해프닝’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살 문제를 심사숙고해서 해결하기보다 드러난 증상만 좇다 땜질식 처방을 내놓는 식의 접근은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킬 뿐이다. 역대 정부에서 자살률을 낮추겠다면서 수많은 방법을 내놓았지만 효과가 신통치 못했던 건 그런 이유가 있어서다. 무엇보다 정부 각 부처마다 일관된 자살 대응 정책을 갖추고 협력해야 한다. 한 부처는 자살을 막자고 나서는데 다른 부처들은 오히려 자살을 부추길 수 있는 정책을 고집한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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