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부산항 신항 주도권 놓고 부산·경남 싸우나
경남도, 진해신항 관리·운영 경남항만공사 설립 희망
부산신항·진해신항 이원화 체제는 경쟁력 저하시켜
부산항 전체 효율성·연계성 제고 차원에서 접근해야
부산항은 국내 전체 수출입 물동량의 75.6%를 담당하는 최대 무역항이다. 지난해 1년간 총 2207만TEU(1TEU는 길이 6m짜리 컨테이너 1개)의 컨테이너 물동량을 처리해 전 세계 130여 개 항만 중 7위를 기록했다. 부산항은 특히 일반 화물에 비해 부가가치가 높은 환적 화물 처리 규모가 싱가포르항에 이어 세계 2위인 동북아시아 물류 허브 항만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10년 가까이 물동량 기준 세계 3위를 유지했지만, 경제가 급성장한 중국 주요 항만들의 폭발적인 물동량 증가세에 밀려 순위가 점차 하락해 왔다. 부산항 전체 물동량 가운데 70%가량이 부산신항에서, 나머지는 북항 자성대·신선대·감만·신감만 4개 컨테이너부두의 17개 선석에서 각각 처리된다.
현재 부산항 부산신항은 북컨테이너부두와 남컨테이너부두에 조성된 25개 선석이 가동되고 있다. 올해부터 일부 선석 개장에 들어가는 서컨테이너부두가 완공되면 부산신항은 모두 38개 선석을 갖춘 세계 굴지의 초대형 항만으로 탈바꿈한다. 부산신항과 북항 등 부산항 전체 개발과 관리·운영은 2004년 출범한 부산항만공사(BPA)가 맡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경남에서 가칭 경남항만공사를 설립하자는 목소리가 강하다. 부산신항이 부산 강서구와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걸쳐 있는 데다 진해에 부산항의 제2 신항인 진해신항 개발이 예정돼 있어서다. 경남항만공사 설립 움직임이 이어질 경우 과거 부산신항 조성사업 추진 과정에서 부산시와 경남도 사이에 신항 명칭 결정과 행정구역 획정을 둘러싸고 장기간 빚어진 갈등이 재현될 소지가 있다.
부산항 부산신항(오른쪽)과 진해신항 조감도. 해양수산부 제공
■부산항 진해신항 조성 의미
부산항 부산신항은 기존 북항이 부두시설의 노후화와 협소성으로 급증하는 컨테이너 물동량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포화 상태에 이르자 개발됐다. 한꺼번에 많은 물동량을 운송하기 위해 급격히 대형화 추세를 보인 컨테이너 선박의 접안과 하역이 가능한 대규모 현대식 컨테이너터미널의 필요성도 있었다. 1997년 착공된 부산신항은 2006년 북컨테이너부두의 일부인 3개 선석 개장을 시작으로 순차적인 개장과 운영이 이뤄지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부산신항의 물동량마저 포화가 예상되자 서컨테이너부두 뒤편 진해 연도 서쪽의 제덕만 일대에 진해신항을 추가 건설하기로 했다. 진해신항을 통해 물동량 처리 능력을 대폭 늘려 부산항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진해신항은 오는 2040년까지 13조 원이 투입돼 21개의 초대형 컨테이너 선석과 최첨단 자동화 시스템을 갖춘 스마트 항만으로 조성된다. 사업이 완료되면 부산항은 부산신항과 진해신항을 합쳐 4200만TEU 처리가 가능한 메가톤급 컨테이너항으로서 중국 등 동북아 주요 항만에 대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게 될 전망이다. 이로써 부산항은 세계 3위권의 글로벌 물류 중심항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게 정부 주장이다. 두 신항이 인근 가덕신공항과 철도·고속도로 교통망과 결합해 시너지를 높이면 세계적인 트라이포트 복합물류의 핵심 거점으로 성장할 것으로도 기대된다. 해수부와 BPA는 이를 위한 1단계 사업으로 2031년까지 총사업비 7조 9208억 원을 들여 9개 선석 건설을 추진한다. 이 사업은 2021년 12월 예비타당성조사 통과 후 기반시설에 대한 기초자료조사 용역이 진행 중이다.
상공에서 바라본 부산항 부산신항과 항만배후단지. 정종회 기자 jjh@
■신항만 주도권 쥐려는 경남
이달 4일 경남도는 부산신항과 진해신항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부산·경남에 산재한 항만 관련 공공기관을 한 곳에 집적화할 필요가 있다는 자료를 발표했다. 이는 경남연구원이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올 1~2월 항만 공공기관과 항만·물류 업체 등 342곳을 대상으로 ‘신항만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항만 기관·업체의 집적 필요성’이란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응답자의 67%가 공공기관 집적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는 게다. 이유는 항만 경쟁력 강화와 원스톱 행정 서비스 제공을 위해서란다. 또 92%가 신항 관련 행정 수요의 증가를 예상했고, 73%는 항만·물류 업체들의 집적도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남도 측은 설문조사 목적이 다양한 항만 이용자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진해신항을 만들고 항만 규모에 맞는 업무지원 시설을 설치하는 기초자료로 활용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일단, 적극적인 고객 중심 행정으로 좋게 평가할 수 있겠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경남이 진해신항 건설을 계기로 미리 신항만의 주도권을 가지려는 의도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속셈은 진해신항 조성이 마무리되면 경남쪽 선석 수가 부산보다 훨씬 많아진다고 강조하는 경남도의 논리에서 읽을 수 있다. 부산신항 38개, 진해신항 21개 등 신항 전체 59개 선석 중 행정구역상 경남에 속한 선석이 61%인 36개(부산 23개)나 되는 것이다. 부산신항의 경우 가덕도 북쪽 연안의 남컨테이너부두를 제외하고는 서컨테이너부두 전부와 북컨테이너부두의 절반 정도가 진해 땅 위에 들어선 까닭이다. 이에 따라 경남에서는 북항에 위치한 BPA 청사를 부산신항으로 옮기자는 주장이 나온다. 심지어 진해신항이 부산항의 하위 항만이라는 사실조차 불만인 이들도 있다.
부산항 진해신항 조성사업 예정지. 해수부 제공
■경남항만공사 설립 움직임 꿈틀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지난해 9월 14일 경남도의회 본회의에서 진해신항 조성과 관련해 적절한 시기에 경남항만공사를 만들어야 한다며 한발 더 나아간 입장을 밝혔다. 이와 함께 관계 부서에 독자적 항만공사 설립의 필요성과 시기에 대해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아마도 경남에 별도의 항만공사가 생기면 경남 측에서 부산신항과 진해신항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지역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판단했을 테다. 경남도는 두 신항을 포함한 부산항의 향후 주도권이 부산에서 경남으로 이동해 경남의 입김이 더 세질 가능성에 고무돼 있다. 이에 힘입어 신항과 신공항, 내륙 교통망을 연계한 지역 발전의 밑그림도 주도적으로 그리고 싶은 것이다. 경남도는 진해신항 1단계 사업만으로도 연간 70억 원 이상의 지방세 증대, 항만 내 약 4200명의 고용 창출, 28조 4758억 원의 생산 유발, 22조 1788억 원의 부가가치 유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하면서 신항만의 주도권을 잡게 되기를 바라는 모양새다.
경남도는 지난달 28일 지역구 국회의원 4명과 함께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신항만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항만행정 서비스 개혁 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도 개최했다. 경남이 신항만이 크게 확장되는 여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신항만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하려는 성격이 다분한 행사였다. 이날 “BPA가 있는 부산에 항만의 경제적 혜택이 집중되고 있어 항만 관할권과 관련 산업·인력 인프라가 미흡한 경남의 독자적 항만공사와 항만 주도권 확보가 요구된다”는 목소리가 높았던 이유다. 토론회에선 진해신항 주변으로 관련 행정기관을 이전하고 집적해 항만 경쟁력을 강화하고 항만행정의 편의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경남연구원의 설문조사 결과와 맥을 같이하는 주장이다.
부산 중구 중앙동 부산항만공사 사옥. 부산일보DB
■부산항 관리체계 이원화는 위험
경남과 창원의 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갈망에서 비롯된 경남 측 주장과 바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항만 기관·업체의 신항 일대 집적화 등은 일리가 있으며 현실적으로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적어도 경남항만공사 설립만큼은 되레 신항은 물론 부산항의 경쟁력을 해치는 위험한 발상이 될 우려가 높다. 경남항만공사 설립은 국가항만인 부산항을 둘로 쪼개서 북항 및 부산신항 그리고 진해신항 등 이원화된 체제로 운영하는 걸 뜻한다. 2개 항만공사가 생겨 각각 부산신항과 진해신항을 관리할 경우 양측의 유기적이고 원활한 협력은커녕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두 항만공사가 부산항에 기항하는 글로벌 대형 해운사들로 구성된 세계 3대 해운동맹에 끌려다니기라도 하면 저가의 부두 운영으로 항만 수익성만 악화될 공산이 크다. 중국 항만들과의 경쟁에서 더욱 뒤처질 수도 있다. 가뜩이나 북항과 부산신항 간 연계성이 떨어져 비효율적이란 지적을 받는 상황이다. 두 신항의 보완성을 높여 물동량 유치와 환적 물량 처리에서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것이야말로 막대한 예산으로 진해신항을 건설하는 취지를 잘 살리는 길이 아닐 수 없다.
이러기 위해선 부산신항과 진해신항의 행정구역과는 무관하게 항만 관리·운영 주체를 단일화해 일관되고 신속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부산항의 효율성과 경쟁력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모습이다. 따라서 진해신항 조성사업의 진척 상황과 선석 수 증가 속도에 맞춰 현 BPA의 규모와 역량을 키워 나갈 일이다. 필요 시 부산·경남항만공사나 부산·진해항만공사로 이름을 변경하고 전문가와 인력을 충원할 때 경남 출신 인재를 더 뽑으면 된다. 경남도는 입장을 바꿔 해수부와 기획재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BPA의 자율권과 독립성을 강화하거나 BPA 또는 지방정부가 항만 자치권을 확보하는 데 힘을 보태야 마땅하다.
2021년 7월 부울경 메가시티 합동추진단 개소식. 부산시 제공
■부울경 메가시티 무산의 아쉬움
만일 경남 측이 경남항만공사 설립 추진을 본격화할 경우 부산과 극심한 마찰을 빚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부산의 지역사회와 해운·항만·물류 업계가 두 신항과 부산항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움직임을 용납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서다. 이미 부산과 경남은 2006년 부산신항이 3개 선석을 개장하며 공식 개항하기 전 7년 동안 신항 명칭을 정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깊은 갈등을 겪은 바 있다. 부산은 부산신항을, 경남은 진해신항을 고수하며 첨예하게 대립했었다. 게다가 당시 부산시와 경남도는 북컨테이너부두와 항만배후부지의 행정 관할권을 놓고도 장기간 맞서다 2012년에야 가까스로 행정구역 경계선을 획정했다. 세수 증대와 부지 확보 등을 위한 다툼이었으나, 부산과 경남으로 나눠진 부산신항과 배후단지에 대한 행정구역은 지금까지 각 부두와 입주 기업들의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요인으로 꼽히는 실정이다.
향후 부산항 진해신항 건설공사 과정에서 언제든 경남항만공사 설립이 논란을 빚으며 부산·경남 간 오랜 전쟁의 불씨를 되살릴 것이 걱정된다. 이 때문에 지난해 경남도지사와 울산시장의 반대로 허망하게 무산된 부산·울산·경남 특별연합(부울경 메가시티)이 너무나 아쉽다. 단일 경제공동체 구축을 위한 부울경 메가시티가 올 1월 예정대로 출범했더라면 경남항만공사의 필요성은 제기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지역의 숙원인 BPA의 지방공사화도 실현 시기가 앞당겨졌을지도 모른다. 부울경 3개 시도는 폐지된 메가시티의 대안으로 부울경 경제동맹과 부산·경남 행정통합 추진을 약속했다. 앞으로 실무추진위원회 활동이 본격화하면 부산신항과 진해신항 문제를 부산·경남 간 상생 차원에서 심도 있게 논의하길 바란다. 부산신항과 진해신항이 동시에 성장세를 보이며 발전하려면 부산·경남이 대승적으로 머리를 맞대는 자세가 절실하다. 이참에 부산신항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관할권 문제를 재정리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강병균 논설위원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