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다중심의 부산, 15분 도시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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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 과 교수

이동 속도 높이려는 목표는 오해
일터·주거·공원 집적 삶의 질 향상
부산은 다중심적 도시로 발달
새 리듬 만들 여러 권역 존재
시간에 쫓기는 삶에서 벗어나
기후위기 시대 공동 목표 삼아야

‘15분 도시’를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터널을 뚫고 고속도로를 내어 이동 시간을 단축하여 도시를 개조하는 일쯤으로 생각한다. 주지하듯이 우리 부산은 산과 구릉이 많아 도로가 부족하여 막히거나 정체가 빈번하니 지하를 이용하거나 우회로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그런데 15분 도시는 이와 같은 이동의 속도를 높여 도달하려는 목표가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이동성과 연관하여 소요된 시간을 되찾으려는 구상에서 비롯한다. 다시 말해서 일터와 여가 공간, 편의시설과 공원을 가기 위하여 이동하는 데 들었던 시간을 단축하여 15분 거리에서 이 모두를 수행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자는 도시 혁신의 기획이다. 주거공간과 일터가 분리되어 있어 시민들이 매일 자동차나 전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적지 않다. 15분 도시는 이처럼 이동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려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발상에서 비롯한다.


〈도시에 살 권리-세계도시에서 15분 도시로〉를 쓴 카를로스 모레노는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를 드는 가운데 서울의 청계천 공원 조성 프로젝트를 도심 고속도로를 없애고 도로 밑에 감춰져 있던 하천을 복원하여 자동차를 위해 할애되었던 도시 공간을 삶의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한 사례로 든다. 그러니까 15분 도시는 기본적으로 자동차의 도시를 인간의 도시로 바꾸는 일로 나타난다. 집합 주거 단지인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비중이 높고 이에 따라서 일터와 학교와 여가 공간이 분리되어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자동차를 줄이는 일이 쉽지는 않다. 더군다나 자가용차를 위신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의식이 지배적인 사회라면 차 없는 거리를 만들거나 주차장을 공원화하는 일이 수월할 수가 없다. 하지만 덴마크의 코펜하겐은 ‘5분 동네’라는 구호를 내세울 만큼 환경과 사회와 경제를 하나의 공간으로 수렴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와는 너무 먼 이야기에 속한다. 카를로스 모레노도 도시의 밀도 차이를 인정하면서 ‘30분 영토’를 제안하기도 한다. 여하튼 ‘5분 동네’와 ‘30분 영토’, 그 사이에 ‘15분 도시’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눈을 바깥으로 돌리면 서울 혹은 수도권 일극 체제가 우리 사회의 큰 모순 구조로 보인다. 그런데 로컬을 중시하는 이들은 서울이나 경기도에서 로컬이 강한 도시와 동네를 주목한다. 가령 모종린 교수 등이 쓴 〈로컬 브랜드 리뷰 2023〉을 보면 소중심의 문화가 있고 청년인구가 밀집되며 원도심 형태의 건축환경을 지니면서 로컬 크리에이터가 존재하는 도시 혹은 동네가 전국에 산재하고 있다. 부산의 경우 부산진구 전포동과 영도구 봉래동이 리뷰의 대상이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여기서 말하는 로컬이 강한 도시와 동네는 그동안 유행한 창조도시 개념의 재해석에 가깝다. 15분 도시는 창조도시처럼 일과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중심에 두기보다 근접성과 시간에 중점을 둔다. 앞서 말한 카를로스 모레노의 말을 빌리면 ‘시간과 공간, 삶의 질, 사회적 교류가 밀접하게 연결된 품격 있는 도시 생활의 리듬을 만드는’ 방향이다. 이를 위하여 도시의 개발보다 도시에서의 삶을 개발하는 게 관건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부산이 15분 도시로 가는 길이 요원하게만 느껴진다. 산복도로에 사는 사람들이 병풍처럼 수직화한 아파트의 출현으로 바다 경관을 상실하고 있다. 오래도록 도로로 덮인 하천이 쉽게 공원으로 변모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사람을 불러 모으는 장소는 도로가 아니라 공원이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부산은 15분 도시로 가는 기본 요건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바로 다중심적 도시라는 사실이다. 여러 개의 중심을 가진 도시라는 비전은 15분 도시로 가는 가장 긴요한 지향이다. 16개 구·군이라는 행정단위가 아니라 공간과 시간과 장소가 한데 어울리고 환경, 경제, 사회가 삶의 새로운 리듬을 만들 여러 권역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이들 권역을 새로 나누면서 그 요건을 세심하게 조사하고 따져 볼 필요가 있겠고, 그다음으로 15분 도시로 갈 수 있게 하는 정책과 시민의 운동이 뒤따라야 하겠다.

‘C40도시기후리더십그룹’도 팬데믹 이후의 경제와 환경 그리고 인간을 위한 도시를 표방하는 핵심 개념으로 ‘15분 도시’를 채택한 바 있다. 결국 인류가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도시에서 살고자 한다면 15분 도시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시간에 쫓겨 허덕이는 삶에서 벗어나 근접성 속에서 일하고 만나고 노는 과정이 함께 이뤄지게 하자고 한다.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문화적으로 집적한 공간에서 그동안 강제된 시간에서 풀려나 새로운 생활 양식을 창출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15분 도시라면 팬데믹과 기후 위기를 맞은 우리 시대가 호응하며 만들어 가야 할 공통의 목표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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