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로 우주 정복? 스타워즈 캐릭터 무장한 '스톰탁주' [술도락 맛홀릭] <6>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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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도락 맛홀릭] <6> 밀양클래식술도가 '스톰탁주'
클래식 음악으로 발효 전통주
세계인 입맛 겨냥 야심찬 행보

밀양클래식술도가에서 지난해 12월 출시한 ‘스톰탁주’. 영화 스타워즈의 스톰트루퍼 캐릭터를 활용한 술병 모양부터 향과 맛까지 독특하다. 김보경 PD harufor@ 밀양클래식술도가에서 지난해 12월 출시한 ‘스톰탁주’. 영화 스타워즈의 스톰트루퍼 캐릭터를 활용한 술병 모양부터 향과 맛까지 독특하다. 김보경 PD harufor@

가가호호 술을 빚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던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100년 만에 다시 부활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급된 지역특산주 면허만 1400건에 이르고, 해마다 새로운 양조장과 전통주가 탄생한다.

전통주엔 지역의 특색이 오롯이 담겼다.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술을 빚어, 특산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부산일보>는 ‘술도락 맛홀릭’ 기획시리즈를 통해 부울경의 전통주 양조장을 탐방하며 지역의 맛과 가치를 재조명한다.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등 전통주 전문가도 힘을 보탠다.

우리 술과 클래식 음악, 그리고 외계인.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3가지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클래식 음악으로 술을 빚던 경남의 한 양조장이 최근 영화 ‘스타워즈’ 캐릭터를 앞세운 막걸리를 출시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만남의 사연이 궁금해 밀양시 단장면으로 향했다.

■전통주, 클래식 선율에 취하다

중앙고속도로 밀양IC를 빠져나와 단장천과 논밭이 펼쳐진 시골길을 달리길 5분여. 도로 안쪽으로 대형 문주와 입구를 갖춘 신식 건물이 나타난다. 4년 전, 인근 태룡리에서 단장리로 자리를 옮긴 ‘밀양클래식술도가’(옛 단장양조장)이다. 입구 주차장에 세워 둔 냉장탑차부터 눈길을 끈다. 차량 화물칸 겉면이 온통 스타워즈 캐릭터인 ‘스톰트루퍼’ 그림으로 가득하다.

“경운기 모는 스톰, 부채춤 추는 스톰, 김장 담그는 스톰 등 더 재밌는 그림이 많습니다. 요즘 젊은 양조인들이 늘고 있잖아요. 좀 재밌게 표현해 보고 싶었죠.” 배현준(37) 총괄매니저가 환한 웃음으로 취재진을 맞으며 설명을 보탠다.

2019년 봄 지금의 자리로 확장 이전한 ‘밀양클래식술도가’(옛 단장양조장). 냉장탑차의 '스톰트루퍼' 그림이 시선을 끈다. 2019년 봄 지금의 자리로 확장 이전한 ‘밀양클래식술도가’(옛 단장양조장). 냉장탑차의 '스톰트루퍼' 그림이 시선을 끈다.
밀양클래식술도가 체험동(카페표충로)에 설치된 각종 음향 설비. 박종대 대표가 직접 선곡한 클래식 음악이 온종일 흘러나온다. 밀양클래식술도가 체험동(카페표충로)에 설치된 각종 음향 설비. 박종대 대표가 직접 선곡한 클래식 음악이 온종일 흘러나온다.

여기까지만 보면 밀양클래식술도가를 신생 양조장으로 여기기 쉽지만, 무려 90년 넘는 역사를 지녔다. 시골마을에 흔히 있을 법한 양조장은 2009년 배 매니저의 장인 박종대(64) 대표가 인수하면서 달라졌다. 박 대표가 어린 시절 뛰놀던 바로 그 양조장이었다. 그는 ‘단장양조장’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클래식 음악을 활용해 술을 빚기 시작했다.

“클래식의 잔잔하고 섬세한 리듬이 발효·숙성 과정에서 효모의 활동성을 깨웁니다. 효모가 어떻게 활발하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술의 맛이 달라지거든요.”

박 대표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는 ‘클래식 발효’가 오랜 연구 끝에 탄생한 비법이기 때문이다. 양조장 운영은 15년째지만 박 대표가 실제로 술을 빚은 기간은 배 이상이다. 그는 고향으로 귀농하기 전까지 부산에서 웨딩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자택에 술방을 마련해 끊임없이 맥주·막걸리·와인 등을 빚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가양주 문화가 자연스럽게 취미로 이어졌다. 우리 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지금처럼 높지 않던 시절, 그는 전통주 동호회에서 활동하며 멀리 호남 지역까지 강의를 다니기도 했다.

박 대표의 또 다른 취미는 클래식 음악 듣기다. 집이건 스튜디오건 클래식 선율이 끊어질 않았다. ‘일탈’처럼 보이는 우리 술과 클래식의 만남이 박 대표에겐 ‘일상’이었던 셈이다.

단장양조장에서 밀양클래식술도가로, 2019년 확장 이전을 하면서도 바뀌지 않은 건 ‘클래식’이다. 체험동과 제조동 전체에서 박 대표가 선곡한 클래식 선율이 울려 퍼진다. ‘톡 톡 토독 톡 톡 토도독….’ 곡과 곡 사이 잠깐의 침묵이 흐르자 발효조 안에서 또 다른 연주가 들려온다. 발효 막바지 단계에서 기포가 터지면서 내는, 술 익는 소리다.

“밤에 음향을 낮추면 (효모의)활동성이 떨어지고, 낮에 음향을 올리면 활동성이 올라가요. 잔잔한 선율에서 악센트가 센 파트로 바뀌어도 활동성이 떨어진답니다.” 배 매니저의 설명을 듣고 다시 보니 음악에 맞춰 술이 춤을 추는 듯하다.

박종대(왼쪽) 대표와 배현준 매니저가 밀양클래식술도가의 역사와 술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김보경 PD 박종대(왼쪽) 대표와 배현준 매니저가 밀양클래식술도가의 역사와 술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김보경 PD
밀양클래식술도가의 제조동에 설치된 대형 스테인리스 발효조. 단장양조장 시절 쓰던 항아리는 양조장 건물 밖에 전시 중이다. 밀양클래식술도가의 제조동에 설치된 대형 스테인리스 발효조. 단장양조장 시절 쓰던 항아리는 양조장 건물 밖에 전시 중이다.
발효 막바지 단계, 발효조 안에서 술이 익어가는 모습. 수많은 기포가 올라와 터지는 소리가 클래식 선율과 하모니를 이룬다. 발효 막바지 단계, 발효조 안에서 술이 익어가는 모습. 수많은 기포가 올라와 터지는 소리가 클래식 선율과 하모니를 이룬다.

■캐릭터 술 앞세워 세계로, 우주로

밀양클래식술도가는 ‘클래식’의 또 다른 의미인 ‘전통’을 강조한다. 박 대표는 줄곧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면서 직접 배양한 효모를 사용해 쌀과 누룩, 천연감미료 등으로 술을 빚는다.

처음엔 클래식막걸리와 클래식청약주 2종이었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한층 다양해졌다. 특히 아들 같은 사위, 배 매니저가 5년 전 합류하면서 신선한 변화가 일었다.

“처음엔 양조장이 뭔지도 몰라 간장을 만드는 곳인가 싶었어요. 아버지 기술이 참 좋은데 알릴 방법이 없어 너무 막막했죠.”

부산에서 유통사를 운영하던 그는 전국 양조장을 100군데 넘게 돌아다니며 벤치마킹과 실험을 거듭했고, ‘전통’과 ‘변화’의 갈림길에서 두 가지 모두를 선택했다.

고민 끝에 2018년 탄생한 ‘마실꾸지’는 꾸지뽕 열매를 손수 갈아 넣어 만든 막걸리다. 살구빛 빛깔에서 연상되듯 젊은 층이 좋아할 만한 새콤달콤한 향미가 특징이다. 뒤이어 출시한 ‘밀양대추막걸리’는 자연탄산이 가득한 샴페인 막걸리다. 일주일에 100병씩 소량만 생산하기 때문에 선착순 전화 주문만 받는다.

2021년 선보인 ‘밀양탁주’는 기존 클래식막걸리에서 밀을 빼고 100% 쌀로만 빚은 막걸리다. 정부 ‘술품질인증’을 획득하고 밀양이란 지역명까지 더해져 특히 주변 캠핑장을 찾는 이들에게 인기다.

밀양클래식술도가의 대표 술인 '스톰탁주'와 '밀양탁주'(오른쪽). 밀양클래식술도가의 대표 술인 '스톰탁주'와 '밀양탁주'(오른쪽).
스톰탁주는 술병과 캡, 술잔, 포장박스까지 온통 '스톰트루퍼' 캐릭터의 얼굴(헬멧)을 형상화했다. 김보경 PD 스톰탁주는 술병과 캡, 술잔, 포장박스까지 온통 '스톰트루퍼' 캐릭터의 얼굴(헬멧)을 형상화했다. 김보경 PD

꾸준한 실험과 변화 속에서 작심하고 만든 술이 있으니 바로 ‘스톰탁주’다. 최근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는데 SNS 등으로 소문이 나면서 금세 밀양클래식술도가의 대표작으로 떠올랐다.

외관도 이름처럼 독특하다. 술병 전체를 영화 ‘스타워즈’의 캐릭터 중 하나인 ‘스톰트루퍼’(스톰) 이미지로 채웠다. 병뚜껑 위에도 스톰 얼굴(헬멧) 캡을 씌워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수많은 캐릭터 중 왜 스톰일까.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서울의 (주)우주라이크와 협업하면서 ‘그냥 캐릭터만 활용한 술이 아니라, 전혀 다른 종류의 술을 만들어 보자’는 얘기를 나눴어요. 스톰 캐릭터 자체가 백색이라 막걸리하고도 닮았잖아요. 영국 셰퍼톤 디자인 스튜디오와 연결되면서 정식 라이선스 계약까지 맺었죠.”

막걸리로 ‘지구정복’을 넘어 ‘우주정복’을 하겠단 야심찬 스토리텔링처럼, 배 매니저는 외국인에게 익숙한 스톰 캐릭터를 통해 해외 입맛을 사로잡겠단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 술의 기본인 맛부터 많은 신경을 썼다. 밀양탁주와 주원료는 같지만 쌀의 함량을 늘렸고, 12~13일 발효를 거친 뒤 사흘 동안 저온숙성을 더했다.

실제로 스톰탁주를 한 모금 들이켜자 같은 뿌리인 밀양탁주와는 전혀 다른 향미가 느껴진다. 은은한 달콤함 속에 포도를 닮은 과실 향이 풍기는 이색적인 맛이다.

밀양의 한 논에서 새참으로 스톰탁주를 나르고 있는 스톰트루퍼. 밀양클래식술도가 제공 밀양의 한 논에서 새참으로 스톰탁주를 나르고 있는 스톰트루퍼. 밀양클래식술도가 제공
발효조에서 익어가는 술을 지키기 위해 보초를 서는 스톰트루퍼. 밀양클래식술도가 제공 발효조에서 익어가는 술을 지키기 위해 보초를 서는 스톰트루퍼. 밀양클래식술도가 제공

■클래식·외계인과 어울리는 맛은

스톰탁주는 누구나 가볍게 마실 수 있는 6도와 애주가를 위한 17도, 2종이 있다. 특히 17도는 물을 전혀 섞지 않은 원주로, 알코올의 쏘는 맛이 강하기 때문에 얼음을 섞거나 다른 음료와 함께 마시면 좋다. 온라인에선 6도와 17도를 묶은 세트도 판매하는데, 취향에 따라 두 술을 원하는 비율로 섞어 마실 수 있다.

밀양 쌀로 세 번 빚어 삼양주의 부드러움을 지닌 스톰탁주는 한식과 양식 모두와 어울린다. 밀양클래식술도가를 찾으면 갓 생산된 술과 궁합이 맞는 음식도 맛볼 수 있다. 지금의 자리로 확장 이전하면서 막걸리 체험공간인 ‘카페표충로’를 함께 열었는데, 방문객들의 요구로 현재는 식당처럼 운영되고 있다.

식사류 대표메뉴는 밀양탁주(또는 차) 한 잔이 함께 나오는 ‘새싹불고기비빔밥’이다. 새싹잎과 산채나물, 소불고기 등을 곁들인 푸짐한 비빔밥과 탁주의 조합은, 농사일을 하다 먹는 막걸리와 새참 같은 느낌이다. 안주류로는 돼지수육과 오돌뼈 등이 있다. 수육은 껍질 부위를 바삭하게 구운 식감이 매력이고, 땡초가 들어간 매콤한 오돌뼈도 절로 술을 부른다.

밀양클래식술도가는 스톰탁주를 시작으로 비슷한 계열의 자매품과 시즌별 술도 출시할 예정이다. 해외 수출도 올해부터 본격화한다. 다음 달 7일에는 서울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스톰탁주 정식 출시 행사가 열린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밀양클래식술도가에서 체험장 겸 식당으로 운영하는 ‘카페표충로’. 밀양클래식술도가에서 체험장 겸 식당으로 운영하는 ‘카페표충로’.
'카페표충로'의 새싹불고기비빔밥 정식. 막걸리 또는 차 한 잔을 선택해 곁들일 수 있다. '카페표충로'의 새싹불고기비빔밥 정식. 막걸리 또는 차 한 잔을 선택해 곁들일 수 있다.

[기자들의 시음평]

▶김희돈 스포츠라이프부 부장

“청포도 같은 상큼한 향이 느껴지다 강한 끝맛을 남긴다. 독특한 캐릭터처럼 독특한 맛.”

▶남형욱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꽃향기와 함께 과일 향이 많이 난다. 이국적인 향 때문에 누군가는 거부감이 들 수도….”

▶김동우 편집파트 기자

“라벤더 같은 꽃향기에 맛도 독특. 요즘처럼 날이 풀리는 시기에 잘 어울릴 것 같다.”

▶이지민 디지털미디어부 에디터

“신기한 맛이다. 살짝 포도 향이 느껴지며, 입 안에 남는 게 없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전문가의 맛 코멘트]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입국에서 유래한 뽀얀 컬러를 갖추고 있으며, 제성은 맑게 잘 되어 있다. 입자감도 곱고 바디감도 미디엄 이하로 라이트한 느낌이다. 외관에서 주는 남성미 뿜뿜한 이미지와는 달리 향은 정반대 느낌이다. 부드러운 곡향과 함께 달콤새콤한 청포도 향이 가득 피어오른다. 맛에서도 향에서 느낀 관능적 특성이 이어지며, 음료수처럼 술렁 넘어간다. 천연감미료가 들어가 입안에 텁텁함이 남지는 않으나 단맛이 길게 남는다. 막걸리 입문자나 단맛을 선호하는 분들이 환영할 만한 막걸리다.”

-제품명 : 스톰탁주

-양조장 : 밀양클래식술도가(경남 밀양시)

-내용량 : 600mL

-알코올 : 6.0%

-원재료 : 쌀·입국·정제수·천연감미료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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