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종묘제례악 지방 공연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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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임금이 신하들에게 물었다. “우리나라 사람은 살아서는 향악(鄕樂)을 듣다가 죽으면 아악(雅樂)을 듣는다지요?” 신하들이 의아해하니, 다시 물었다. “우리는 본디 향악이 익숙한데 종묘제례에 당악(唐樂)을 먼저 연주하니…, 조상들이 평시 들으시던 음악을 쓰는 것이 어떻겠소?”

향악은 조선의 음악이고, 아악과 당악은 중국 음악을 일컫는다. 조선 초기 종묘제례는 고려의 형식을 따랐다. 고려 때 종묘제례에 쓰는 음악은 중국 송나라에서 들여온 아악이었다. 세종은 이를 향악으로 바꾸면 어떻겠냐고 물은 것이다.

거듭된 질문에도 신하들의 호응이 없자 세종은 아예 곡을 직접 만들어 보여 줬다.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이 그것이다. 보태평은 조선 선대 임금들의 문덕(文德)을, 정대업은 무공(武功)을 찬양하는 곡으로, 고려가요 같은 전래 음악 양식을 빌은 것이다. 그러나 신하들의 반대가 심했던지 세종 당대에 두 곡은 궁중 잔치 때나 쓰였을 뿐이다. 정대업과 보태평을 종묘제례악으로 사용케 한 이는 카리스마 넘치는 세조였다. 세조는 세종의 뜻은 그대로 잇되 곡에는 다소 변화를 주어 종묘제례악으로 쓰게 했다. 1464년의 일이었다.

국가무형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인 종묘제례악은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그 장엄한 감동을 온전히 느낄 기회는 극히 드물다. 지방 사람들은 특히 더 그렇다. 부분 공연은 간혹 열렸어도 전곡 공연은 대부분 큰 국가적 행사가 있을 때 서울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 기원, 2022년 청와대 개방 축하 등을 이유로 종묘제례악이 공연됐다.

국립국악원이 사상 처음으로 종묘제례악 지방 순회공연을 갖는다고 한다. 7월 7일 대전, 7월 15일 울산, 9월 1∼2일 대구에서다. 반가운 일이기는 하나, 한편으론 씁쓸하다. 국립국악원의 종묘제례악 공연은 오래전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등 해외 무대에서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독일 베를린 등 4개 도시에서 순회공연을 치렀다. 그런데 국내 지방 순회공연은 처음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것도 어찌 된 셈인지 부산은 제외됐다. 부산에선 2014년 4월 국립국악원이 국립부산국악원에서 특별공연을 가진 적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무려 9년 전 일이다. 부산 사람들로선 서운할 수밖에 없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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