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윤 대통령은 왜 제주에 가지 않았을까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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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3 사건 희생자 추념식 불참 논란
우리 현대사에 대한 인식 수준 짐작케 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열린 제75주년 제주 4·3 사건 희생자 추념식에 불참한 것을 두고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국외순방 준비 등으로 바빴다고 하는데, 지난 1일 대구까지 가서 프로야구 개막전 시구를 하고 서문시장을 방문한 윤 대통령이고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의 말마따나 4·3이 격이 낮은 기념일이라 가볍게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 대통령으로서 수만 명이 희생된 국민적 상처를 보듬어 주는 게 옳지 않나 하는 점에서 윤 대통령의 이날 불참은 대단히 아쉬운 것이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3일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3일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시작비(今是昨非)?

윤 대통령은 2022년 당선자 신분일 때는 4·3 추념식에 참석했다. 그 자리서 윤 대통령은 “유가족과 도민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윤석열 정부는 정말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지금이 옳고 그때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걸까. 여하튼 불과 1년이 지난 사이 너무도 다른 모습을 보여 당혹스러울 정도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근래 윤 대통령은 대일 굴욕 외교 논란, 주 최대 69시간 근무제 갈등 등으로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윤 대통령에게 우호적으로 비쳤던 2030 세대가 겨우 10%대 지지율로 등을 돌리는 양상을 보이자 대통령실이 초비상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다급해진 윤 대통령이 정치적 외연을 확장하기보다 강성 보수 세력에 더 매달리고 있고, 그 결과가 4·3 추념식 불참으로 연결됐다는 풀이다. 일리가 있는 분석이나, 이에 대해서는 좀 더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022년 4월 3일 당시 당선인 신분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희생자 추념식에 입장하고 있다. 부산일보DB 2022년 4월 3일 당시 당선인 신분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희생자 추념식에 입장하고 있다. 부산일보DB

■자유는 곧 반공?

윤 대통령은 당선 후 줄곧 자유 또는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해 왔다. 2022년 9월 20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도 “자유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자유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며 자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가 말하는 자유는 무엇일까.

서구에서 자유 또는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권리를 억압하는 봉건적 질서에 대한 저항 이념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그것이 냉전시기 미국에선 소련에 대항하는, 반공의 개념과 뒤섞여 버렸다. 해방 후 미군정 아래에 있었던 한국에서도 반공을 의미하는 자유 개념은 강제됐고, 6·25 전쟁 이후 그런 인식은 더욱 고착화됐다.

거칠게 간추려 언급했지만, 자유 또는 자유민주주의의 성격과 개념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다양하고 복잡한 논의가 있었다. 윤 대통령이 그에 대한 고민을 얼마나 치열하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행보를 보면 ‘자유=반공’이라는 등식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아 보인다. 윤 대통령이 북한·중국과 척을 지고 미국·일본과의 동맹을 주창하는 것도 그런 배경에서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


■극우의 그림자?

반공을 전제한 자유 또는 자유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강성 보수, 나아가 극우와 만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이상하게도 이들이 자유민주주의자임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극기 집회를 주도했던 서울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그렇다. 전 목사는 극우 정당으로 분류되는 자유통일당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런 전 목사가 요즘 집권여당 국민의힘을 흔들고 있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전광훈 목사가 우파 천하를 통일했다”고 추켜세우고, 같은 당 소속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를 비판하고, 전 목사는 홍 시장을 막말로 비난하고, 김기현 대표는 홍 시장을 질책하는, 기묘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전 목사는 심지어 “공천 다 잘라 버리라”며 국민의힘에 대놓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래도 국민의힘 지도부는 속만 끓일 뿐 별다른 대응을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 안팎에선 전 목사가 상당수 당원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내년 총선 공천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이들 극우는 4·3은 공산 세력의 무장봉기로 촉발된 사건이라며 의미를 깎아내리고 이념적인 색깔을 덧씌운다. 올해 4·3 추념식에는 서북청년단이라는 이름을 내세운 단체가 나타나 파란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서북청년단은 4·3 당시 양민 학살에 앞장섰던, 한국 현대사에서 극우의 상징으로 기억되는 단체다. ‘제주 4·3민주항쟁 진상조사보고서’는 이들의 치떨리는 잔혹함을 생생히 증언한다. 그런데 같은 이름의 단체가, 그것도 4·3 추념식 현장에 나타났으니 이 얼마나 참담한 일인가.


제주 4·3 희생자 추념일인 지난 3일 제주 4·3평화공원 앞에서 서북청년단이 집회를 시도하자 경찰이 격리하고 있다. 제주도사진기자회 제주 4·3 희생자 추념일인 지난 3일 제주 4·3평화공원 앞에서 서북청년단이 집회를 시도하자 경찰이 격리하고 있다. 제주도사진기자회

■어쩌면 당연한 수순?

윤 대통령이라고 해서 이런 극우 세력과 전혀 무관하다고는 볼 수 없을 테다. 그는 국민의힘 ‘1호 당원’이다. 기실 윤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이들과 궤를 같이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2021년 대선 당시 윤 대통령의 선대위는 노재승 씨를 대변인에 임명해 논란을 일으켰다. 노 씨는 백범 김구를 살인자라고 비하하고 반일은 정신병이라 주장하는 등 극우 성향이 짙은 인물이었다. 그런가 하면,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 신지호 전 자유주의연대 대표가 윤석열 대선 경선 캠프 총괄부실장을 맡기도 했다. 대표적인 뉴라이트 인사로 꼽히는 그는 현재 윤석열 정부에서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윤 대통령은 2022년 9월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 초대 위원장에 이배용 전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을 임명해 교육계의 반발을 샀다. 이 위원장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친일·독재를 미화했다는 비판이 제기된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을 주도했다. 같은 해 12월 윤 대통령은 4·3 사건을 “공산주의 폭동”이라고 폄훼한 김광동 씨를 유족들의 반발에도 아랑곳 않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에 임명했다.

이런 일련의 사실을 보면, 윤 대통령이 이번 4·3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당연해 보인다. 여하튼 이번 4·3 추념식 불참 논란을 통해 우리 현대사를 보는 윤 대통령의 인식 수준과 관점을 제대로 짐작할 수 있게 됐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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