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지구가 불타고 있다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대형 산불 10년 평균 1.4건, 지난해 11건 급증
이산화탄소 배출…다시 기후변화 심화 악순환
계획·예방 예산 늘리고 소방 장비도 첨단화해야


11일 오전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난 불이 확산되는 가운데 해변가 리조트 인근에 불길이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오전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난 불이 확산되는 가운데 해변가 리조트 인근에 불길이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이 봄철 산불로 몸살이다. 11일 오전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에서 발생한 산불은 축구장 530개 면적에 해당하는 397㏊와 주택, 펜션 등 건물 100채를 태웠다. 강원도 유형문화재인 조선시대 정자 방해정 일부가 불타고 상영전과 인월사가 전소되는 등 문화재 피해도 발생했다. 2005년 강원도 양양의 천년고찰 낙산사를 집어삼켰던 산불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강릉 산불이 확산되고 있던 12일에는 경남 양산 원동에서도 산불이 발생하는 등 전국 곳곳에서 산불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산불이 갈수록 잦아지고 대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불 급증, 갈수록 규모도 대형화

산림청에 따르면 올해 3월까지 국내 산불 발생은 376건으로 이미 지난해의 절반에 육박했다. 4월 들어서는 2일 하루에만 33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하루 발생 건수로 역대 세 번째다. 1위는 2002년 4월 5일 63건, 2위는 2000년 4월 5일 50건으로 모두 2000년대 이후다. 산불 증가세는 최근 몇 년 사이 두드러진다. 지난해 전국에서 740건이 발생해 전년(349건) 대비 배 이상 늘었다. 규모도 대형화 추세다. 100㏊ 이상 대형 산불은 최근 10년 평균이 1.4건인데 2021년 2건, 2022년 11건으로 급증했다. 2018년 산불 피해 면적은 894㏊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2만 4782㏊의 산림이 잿더미로 변했다. 지난해 3월 4일 발생한 경북 울진 산불은 213시간 43분 지속돼 역대 최장 시간을 기록했고 5~6월 경남 밀양 산불은 이례적인 여름철 대형 산불이었다. 산림청은 최근 산불이 급증하며 계절을 가리지 않고 연중화, 대형화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지난해 5월 31일 오후 경남 밀양시 부북면 춘화리에서 발생한 산불 현장. 산림 당국이 헬기로 불길을 끄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5월 31일 오후 경남 밀양시 부북면 춘화리에서 발생한 산불 현장. 산림 당국이 헬기로 불길을 끄고 있다. 연합뉴스

∎기후변화의 역습

올봄 잦은 산불은 예년에 비해 따뜻하고 건조한 날씨가 지속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3월 전국 평균기온은 9.4도로 평년보다 3.3도 높아 기상관측망을 전국으로 확대한 1973년 이래 가장 높았다. 부산 역시 지난달 평균기온이 12.3도로 평년보다 3도 이상 높았다. 봄꽃이 빨리 피고 진 것도 이 때문이다. 기상청 계절관측자료를 보면 올해 벚꽃 개화는 부산이 3월 19일로 역대 가장 빨랐고 서울도 3월 25일로 역대 두 번째 이른 개화였다. 매화, 개나리 등 봄꽃들이 개화 시기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한꺼번에 피었다 지는 이례적 풍경을 연출했다. 그 와중에 산에는 불꽃이 만발했다. 고온에다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전국의 산들이 불쏘시개로 변했다. 올해 3월까지 전국 평균강수량이 85.2㎜였는데 연평균강수량(120.6㎜)에 크게 못 미쳤다. 게다가 강풍마저 동반해 대형 산불을 부추겼다. 강원도 양양과 간성 사이 동해안 강풍을 이르는 ‘양간지풍’이 맹위를 떨치는 것도 강원도 대형 산불의 주요 원인이다. 결국 최근의 산불 대형화 이면에는 기후변화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기온이 1.5도 오르면 산불이 발생할 가능성을 나타내는 산불기상지수가 8.6% 상승한다.



2020년 7월 2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트웨인에서 ‘딕시’란 이름의 대형 산불이 맹렬한 기세로 산림을 태우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7월 2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트웨인에서 ‘딕시’란 이름의 대형 산불이 맹렬한 기세로 산림을 태우고 있다. 연합뉴스

∎지구촌 곳곳 대형 산불로 몸살

기후변화로 인한 대형 산불은 전 지구적 현상이다. 2019년 9월부터 2020년 2월까지 호주에서는 무려 6개월간 지속된 사상 최악의 산불로 호주 전체 산림 면적의 약 14%가 불탔다. 2020년 캘리포니아에서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 발생했으며 2021년에도 반복돼 대형 산불이 연례행사가 되고 있다. 같은 시기 터키, 그리스, 스페인 등 유럽에서도 대형 산불이 이어졌다. 2022년 남미와 중남미 지역에서는 극심한 가뭄과 함께 역대급 산불을 겪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이 같은 지구촌의 대형 산불은 다시 기후변화를 가속화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기후 악순환을 불러온다. 산불 자체로 막대한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주요 탄소흡수원인 산림도 파괴하기 때문이다. 산림과학원에 따르면 2022년 울진 산불로 131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중형차 220만 대가 부산에서 서울로 이동할 때 배출되는 규모와 맞먹는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연구진은 지난달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에 2019~2020년 호주 산불로 지구 오존층의 3~5%가 파괴됐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지난달 31일 오전 울산테크노일반산업단지 인근 야산에서 울산소방본부가 ‘대형 산불 재난 대응 긴급구조종합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울산시 제공 지난달 31일 오전 울산테크노일반산업단지 인근 야산에서 울산소방본부가 ‘대형 산불 재난 대응 긴급구조종합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울산시 제공

∎대형 산불 대응체계 갖춰야

유엔환경계획(UNEP)은 지난해 2월 내놓은 세계 산불 보고서에서 “기후와 토지 사용의 변화로 산불은 더욱 빈번해지고 강도도 세질 것”이라며 “전체 산불 가운데 대형 산불의 비중이 2030년 14%, 2050년 30%, 2100년 50%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때문에 각국이 기후변화에 대응해 대형 산불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권고했다. 전문가들은 우선 대형 산불로 번지고 나면 피해가 막대하기 때문에 현재 진화 위주로 돼 있는 산불 대책을 계획과 예방 위주로 전환하고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번 강릉 산불의 경우도 ‘양간지풍’으로 부러진 나뭇가지가 전신주를 절단하면서 발화됐는데 대형 산불로 이어질 수 있는 발화원 차단 등의 대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각종 산불 대응 장비도 다양화, 첨단화해야 한다. 강릉 산불에서 보듯 강풍으로 노후한 소방헬기를 사용하지도 못했다. 초대형 산악 진입 소방차와 초대형 헬기, 야간 진화 헬기, 드론 등 장비 고도화가 필요하다. 또 산림청의 소나무 위주 인공조림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도 많다. 솔방울과 송진이 화약고 역할을 하는 소나무 위주의 산림이 산불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다. 활엽수 비중을 높이고 수목의 밀도도 조정하는 등 과학적 숲 가꾸기 대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산불이 국가적 재앙으로 커지기 전에 체계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강윤경 논설위원 강윤경 논설위원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