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인도네시아 수도 이전, 세종시를 따라 한다니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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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균형발전 위한 결정 韓 기업 기회
미완성 그친 행정수도 플랜 서둘러야

현재 인도네시아의 수도는 최대 도시인 자카르타다. 인도네시아가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인 보르네오섬 누산타라로 수도 이전을 추진 중이서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2045년까지 40조 원을 투입하는 초대형 프로젝트.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3월에 '원팀코리아 수주지원단'을 이끌고 직접 다녀올 정도로 국내 기업들도 관심이 많다. 누산타라는 우리에게 '기회의 땅'인 것이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수도 이전 과정을 살필수록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많아, 우리 스스로의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차기 수도로 내정된 보르네오섬의 누산타라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대통령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차기 수도로 내정된 보르네오섬의 누산타라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대통령실

■ 인도네시아는 천도(遷都) 준비 중

인도네시아 의회는 지난해 1월 수도를 자카르타에서 보르네오섬 이스트 칼리만탄으로 옮기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새 수도의 이름은 '누산타라'로 지어졌다. 자바어로 여러 섬이 모인 군도(群島)란 뜻이다. 자카르타는 인구 1000만이 넘는 거대 도시이자 세계 최고 수준의 인구 밀집도와 대기오염으로 악명 높다. 1만 7000여 섬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 총인구의 56%는 전체 면적의 7%에 불과한 자바섬에 몰려 있다. 게다가 자바섬에 위치한 자카르타는 홍수나 지진을 자주 겪고 있다. 지반 침하 속도가 빨라 2050년쯤 물에 잠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인도네시아의 수도 이전이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시작됐고, 특히 누산타라가 세종시를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도 이전을 관장하는 바수키 하디물조노 공공사업주택부 장관은 "균형발전이나 스마트도시 콘셉트를 한국 세종시에서 배우고 있다"고 밝혔다. 누산타라 도시 전체 면적은 세종시(465㎢)보다 5.5배 크지만, 공공기관과 대통령궁이 모여 있는 핵심 구역 면적은 66㎢로 세종시(73㎢)와 비슷하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대통령궁과 국회·대법원·중앙 부처들을 2045년까지 신수도로 옮기고, 자카르타에는 경제수도 역할을 맡긴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과거 우리의 수도 이전 계획과 매우 흡사하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인도네시아 정부 요청으로 누산타라에 한국의 첫 사업인 상수도 정비시설을 짓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공공기관과 대통령궁 인근에 1000채가 넘는 규모의 공무원 주택 건설 사업을 수주했다. 현대자동차는 수천 개의 섬을 연결하는 교통망이 필요한 인도네시아의 미래항공모빌리티(AAM) 사업을 노리고 있다. 누산타라의 세종시 벤치마킹은 우리 기업에 유리한 대목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내부에서는 수도 이전이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졸속 추진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수도 이전 반대론자들은 한국의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사례를 현지에 소개하면서 신수도법을 헌법재판소에 제소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7년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었던 임시 행정수도 건설 구상을 밝혔다. 부산일보DB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7년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었던 임시 행정수도 건설 구상을 밝혔다. 부산일보DB


■ 박정희가 피살되지 않았다면

1960년대 이래 역대 정권마다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되풀이됐다. 1971년 7대 대선에서 김대중 신민당 대선후보가 수도권 과밀화 문제 해결을 위해 행정수도를 대전으로 옮기겠다고 공약한 게 시작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렸다. 1977년 박 전 대통령은 충격적인 임시 행정수도 건설 구상을 밝혔다. 서울은 1960년 244만 명에서 1970년 543만 명으로 10년 만에 인구가 배 이상 증가했다. 서울 인구가 1000만에 육박하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별 게 아니지만 당시로서도 인구 과밀화가 커다란 고민이었다. 게다가 1970년대 중반은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 등이 잇따라 공산화하며 국제적으로 긴장이 높아지던 시절이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도 서울이 전방에 있으니 고민이었다. 군사분계선에 수도가 너무 가까워 안보적으로 매우 취약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2차 대전 당시 파리를 나치 독일에 점령당하자 프랑스가 꼼짝 없이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사례를 들면서 걱정했다고 한다.

정부는 1979년 5월 충남 연기군 장기면 일대에 임시 행정수도를 15년에 걸쳐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임시 행정수도란 통일이 될 때까지의 수도라는 의미다. 수도권 대학 이전 계획을 포함해 어떤 제약 조건에도 구애받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백지계획(白紙計劃)'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해 10월 박 전 대통령이 피살당하면서 백지계획 자체가 전면 백지화됐다. 그 뒤 전두환 정부는 1985년에 정부 기능을 대전에 분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노태우 정부도 대전을 제2수도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1998년에 정부대전청사가 개청했다.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2002년 9월 30일 신행정수도 건설 공약을 발표했다. 부산일보DB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2002년 9월 30일 신행정수도 건설 공약을 발표했다. 부산일보DB

■ 관습헌법에 막힌 수도 세종

박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계획을 꺼내 다시 밀어붙인 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당시 민주당 내부에서도 서울과 수도권 표를 잃을 위험이 높다면서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노 후보는 대통령 선거는 승패도 중요하지만 국가 발전에 꼭 필요한 의제를 국민에게 제출하는 기회라면서 주변을 설득했다. 선거 국면이 본격화된 2002년 9월 신행정수도 건설 공약이 발표됐다.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을 발의해 이 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하지만 2004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라는 암초를 만나 이 법은 좌초하고 만다. 헌법재판소는 <경국대전> 이래의 관습을 이유로 서울이 아닌 곳에 행정수도를 만드는 것은 위헌이라고 했다. 결국 새로운 법을 만들어 세종시가 행정중심복합도시로서 계승되었다. 청와대와 국회를 비롯한 중요 행정과 입법 기능은 서울에 여전히 남게 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꿈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숙제로 넘어왔다. 문 후보는 2017년 대통령 선거를 치르며 "세종시를 실질적 대한민국 행정수도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21대 총선에서 압승한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여름부터 재차 추진에 나서는 듯 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사실상 물 건너 가고 말았다.


미완의 행정수도인 세종시의 정부세종청사 전경. 부산일보DB 미완의 행정수도인 세종시의 정부세종청사 전경. 부산일보DB

■ 윤석열 정부, 행정수도 완성해야

인도네시아가 수도 이전을 하면서 세종시를 벤치마킹한다니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 계면쩍은 게 사실이다. 1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보기에는 미완성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수도권 집중화로 생기는 문제는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지방소멸, 출생률 감소, 부동산 가격 폭등, 입시와 취업난 등 우리 사회 대부분의 문제가 수도권 집중에서 비롯되고 있다. '지옥철'로 불리는 김포골드라인 문제는 버스를 증편해도 해결이 안 된다. 여기에 수도권 광역급행철도를 신설하면 더 많은 역세권 아파트가 들어서고, 더 많은 신규 인구가 유입되어, 다시 지옥철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경기도 김포시 김포골드라인 고촌역에서 승객들이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 김포시 김포골드라인 고촌역에서 승객들이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박근혜, 노무현,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이재명….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하거나 찬성한 대통령과 정치인들이다.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없다. 휴전선에서 서울까지 거리는 50km도 안 된다. 북한의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대통령과 국회 등 최우선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는 헌법기관은 후방에 있어야 유리하다. 돌이켜 보면 수도 이전은 역사적으로 세계 어디서나 기득권과의 싸움이었다. 2004년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조치법에 위헌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관들 같은 사람들이 있다. 수도를 이전하면 부동산이나 기득권에서 손해가 커서 반대하는, 서울과 수도권에 거주하는 세력이다. 행정수도의 완성이 우리 사회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어도 진정한 출발점은 될 것이라고 본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목표는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다. 국회의사당과 대통령실 이전은 윤 대통령이 약속한 사안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가 진정한 행정수도를 완성해 주길 기대한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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