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원대 터치한 엔화… “환 차익 보자” 수요 급증
미국·유럽 등 주요 국 긴축에도
일본 나홀로 완화 정책 고수
19일 장중 한때 897원 고시
엔화 예금 잔액 16% ‘껑충’
엔화 가치가 급락하는 가운데 19일 원·엔 환율이 장중 한때 800원대에 진입했다. 원·엔 환율이 800원대를 기록한 것은 지난 2015년 이후 8년 만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세계 각국의 통화 긴축에도 일본은행이 나홀로 완화 정책을 이어가는 만큼 원·엔 환율이 더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이날 오전 8시 23분 기준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897.49원으로 고시됐다. 이는 지난 2015년 6월 25일 이후 처음으로 800원대에 진입한 것이다. 원·엔 환율은 800원대를 터치한 뒤 개장 이후 소폭 올라 900원대로 올라섰다. 이후 이날 오후 3시 30분 기준 905.21원을 기록했다.
엔화 가치가 떨어진 것은 미국·유럽 등 주요국에서는 긴축을 이어가고 있지만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완화정책을 고수 중이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은 지난 16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일본은행 단기금리를 마이너스(-0.1%) 상태로 동결하고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금리를 0% 수준으로 유지했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연구원은 “일본은행은 여전히 수요 측면의 물가 압력이 높지 않고 글로벌 경제의 회복이 지연될 것으로 판단했다”며 “완화 기조가 좀처럼 긴축으로 선회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원화의 상대적 강세도 원·엔 환율에 하락 압력을 더하고 있다. 원화는 반도체 시장 회복 기대감에 힘입어 한국 주식시장으로 외국인 순매수 흐름이 나타나면서 최근 한 달 강세를 나타냈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강하게 상승하면서 반도체 주식들이 최근 다 같이 랠리를 펼쳤다”며 “그 과정에서 외국인들이 한국 반도체 주식을 많이 사면서 원화 강세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원·엔이 단기적으로 더 떨어질 수 있다며 단기 저점으로 100엔당 890원 선을 제시했다. 서정훈 하나은행 자금시장영업부 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 100엔당 890원 선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백석현 연구원도 “더 떨어질 수 있겠지만 현 수준이면 저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며 “890원 선 아래까지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고 내다봤다.
특히 올해 하반기에 원·엔이 다시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올해 하반기 미국 10년물 금리가 하락하고,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가 축소된다면 그 수요는 줄어들 것”이라며 “3~4분기에는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편 엔화 가치가 8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지며 환차익 등을 고려한 엔화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4대 시중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지난달 말 6978억 5900만 엔에서 이달 15일 현재 8109억 7400만 엔으로 16%(1131억 1400만 엔·약 1조 243억 원) 급증했다.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