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 공존의 바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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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논설위원

전국적 물난리 여름특수 실종
오염수 우려 수산물 소비 기피

수변공원 금주구역 지정 겹악재
횟집·편의점·노래방 모두 타격

수산물 소비 활성화 명분으로
금주공원 지정 잠정 보류해야

부산 수영구 민락수변공원이 금주구역 실시로 썰렁해졌다. 연합뉴스 부산 수영구 민락수변공원이 금주구역 실시로 썰렁해졌다. 연합뉴스

“와우 여름이다!/이게 뭐야 이 여름에 방 안에만 처박혀 있어/안 되겠어 우리 그냥 이쯤에서 헤어져 버려….” 여름 하면 생각나는 노래가 그룹 쿨(COOL)의 ‘해변의 여인’이다. 일단 그룹 이름부터 시원하고, 다소 협박성 가사가 서늘한 기분까지 선사한다. 본격적인 휴가철로 접어들었지만 긴 장마와 전국적인 물난리 탓에 여름특수가 사라졌다는 안타까운 소식만 들려온다. 푸른 하늘이 반가운 요즈음이다.

국내 대표적인 피서지 부산에서 해운대해수욕장은 지난해 방문객 881만 명으로 전국 1위, 광안리해수욕장은 420만 명으로 3위를 차지했다. 올해는 개장 초이지만 광안리에 해운대보다 많은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는 흥미로운 소식이다. 이달 초 〈부산일보〉에 실린 관련 기사에서 한 관광객은 “물놀이를 하기에는 해운대가 더 좋지만 숙소 가격이 비싸 친구들과 가기에는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광안리는 좀 더 저렴한 느낌이다. 물에 들어갈 게 아니라면 광안리 카페나 술집에서 바다를 보며 즐기는 게 더 좋은 것 같다”라고 그 이유를 잘 설명했다. 초고층빌딩 엘시티와 특급호텔로 둘러싸인 해운대는 청년들이 가기에는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이처럼 광안리해수욕장은 잘나가지만 인접한 민락수변공원 일대 상인들은 요즘 죽겠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 이미 올해 초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결정 이후부터 횟집마다 손님 만나기가 힘들어졌다. 3년을 숨죽여 참았던 코로나 시절보다 장사가 더 안되어 걱정이란다. 일본 정부가 오염수 방출을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이 지경이다. 일본이 예상대로 다음 달부터 오염수 방류를 시작하고, 설마 하던 후쿠시마산 수산물까지 수입이 재개되면 그야말로 지옥문이 열리는 셈이다.

민락수변공원 금주구역 지정은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오후 6시부터 오전 1시까지 수변공원 안으로 술을 반입했다 걸리면 과태료 5만 원을 부과하는 조치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수변공원을 찾던 인파가 신기루처럼 사라진 것이다. 수변공원은 금주지도원들만 할 일 없이 돌아다니는 아까운 빈터가 되었다. 생수나 음료수병에 술을 넣어서 마시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전국에서 몰려오던 청년들은 예전 모습을 아쉬워하면서도 냉정하게 발길을 돌렸다.

특히 인접한 밀레니엄회센터 일대는 숨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다. 가장 바빠야 할 저녁 시간에도 너무 한산해서 미안할 지경이었다. 횟집 상인들은 팔지 못해 매일 죽어 나가는 고기를 보며 한탄했다. 포장마차, 편의점, 노래방, 해장국집까지 손님이 끊겼다고 한다. 한 해 90만 명이 찾는 ‘핫플’이 하루아침에 유령 광장이 된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금주’라는 취지에는 공감하더라도, 이번 금주구역 실시 타이밍은 너무 좋지 않았다.

반면에 서울을 비롯한 타 지자체는 금주구역 시행을 그렇게 서두르지 않는 모습이다. 서울시의회는 최근 한강공원을 포함한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제한하는 ‘한강 금주’ 조례안 심사를 보류했다. 한강공원을 금주구역으로 지정하는 법적 근거 마련에 시민들의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해서다. 서울시는 음주를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맥주 한 캔 정도도 즐기지 못하느냐는 목소리도 있어서 여론의 추이를 지켜본 다음에 논의한다는 입장이다.

수영구는 이달 말부터 금요일마다 수변공원 야외무대에서 재즈밴드, 마술쇼, 스트리트 댄스와 인디밴드 등의 상설 공연을 연다고 한다. 금요일에는 그렇다고 치고, 나머지 요일에는 또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수변공원 상인들은 여름에 잠깐 벌어서 겨울을 견디고 사는 처지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수변공원도 여름 한철이었다. 부산상회 이미숙 대표가 “시간을 정해서 음주를 허용하고, 그 시간이 끝나면 상인들이 나와서 쓰레기를 치우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라고 했던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구청과 상인, 그리고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면 방법이 없는 게 아니었다. 매사에 TPO(Time, Place, Occasion)가 중요한 법이다.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때와 장소, 경우에 따른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인한 수산물 소비 위축이 너무나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위기의 수산물 소비 활성화라는 더 큰 명분을 걸고 수변공원 금주구역 지정 조치를 일시적으로 보류하면 좋겠다. 전통시장에도 소비 촉진을 명분으로 점심시간에는 주차단속을 유예하지 않는가. 수변공원을 부산의 명물로 살리고, 주민과 상인들도 같이 사는 길을 찾기 바란다. 우리에게 ‘공존의 바다’가 절실하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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