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질질’ 끄는 선거법 재판, 신속하게 끝내야

최세헌 기자 corni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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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헌 사회부장

지난해 6월 지방선거 후 선거사범
광역·기초단체장·교육감 36명 기소

1심 6개월·2심 3개월·3심 3개월
선거법 규정에도 대부분 기한 넘겨

‘사법 리스크’로 현안 추진에 차질
늑장 재판 피해는 오롯이 시민 몫

지난 8일 부산 교육계에서는 다소 충격적인 판결이 있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하윤수 부산시교육감이 1심에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700만 원을 선고받은 것. 하 교육감은 공식 선거기간 전 사조직을 설립해 선거운동을 벌였고 선거공보물에 허위학력을 기재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 교육감은 판결이 선고된 후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굳은 표정으로 법원을 빠져 나갔다. 이후 대변인실을 통해 “즉각 항소해 실망스러운 재판 결과를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지역 교육계의 우려를 감안한 듯 “지금까지 추진했던 교육정책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교육계와 법조계는 하 교육감의 1심 형량으로 봤을 때 2심, 3심에서 당선무효형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7월 부산시교육감으로 취임한 이후 1년여 동안 학력 신장을 중심으로 야심차게 진행해왔던 하 교육감의 정책들은 추진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말들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특히 하 교육감이 2심·3심으로 확정 판결을 받기까지는 1년 정도가 더 소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이 지난해 6월 지방선거와 관련해 재판에 넘긴 1448명 중 당선자는 총 134명이다. 이 가운데 광역자치단체장 2명, 기초자치단체장 32명, 교육감 2명 등 36명의 기관장이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공직선거법은 100만 원 이상 벌금형 등이 확정될 경우 당선을 무효로 하고 있다.

부산의 경우 하 교육감외에 기초단체장은 오태원 북구청장이 지난 5월 1심에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았다. 오 북구청장은 즉각 항소했다.

경남의 경우 홍남표 창원시장이 ‘후보 매수’ 혐의로 기소돼 1심이 현재 진행 중이다. 지난달 말 공판에서는 재판 중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119에 실려나가는 소동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시작된 선거법 위반 1심 재판 선고가 언제일지 기약할 수조차 없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김부영 경남 창녕군수는 첫 공판을 앞두고 지난 1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숨진 김 군수는 “결백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경남 구인모 거창군수는 지난해 12월 1심에서 벌금 70만 원을 선고받았고, 김영길 울산 중구청장은 지난 5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오영훈 제주지사의 경우 다음 달 25일까지 증인 신문이 진행됨에 따라 1심 선고는 자연스럽게 11월 이후로 늦어질 전망이다. 박남서 경북 영주시장은 지난달 31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징역 3년이 구형됐고, 서태원 가평군수, 우승희 영암군수, 이병노 담양군수, 박강수 마포구청장, 이태훈 달서구청장 등도 여전히 1심 재판 중이다.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는 기관장은 상식적으로 오롯이 시정, 도정 등 일에 전념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본인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 기관의 내부 분위기는 어쩔 수 없이 어수선해지고, 기관장의 장악력도 떨어진다. 지역 현안의 속도감 있는 추진은 차질을 빚는다. 당선무효형이라도 나오면 행정 공백을 초래하고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은 물건너갈 수밖에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피해는 시민의 몫이다.

결국 안정감 있는 행정을 위해서는 선거법 위반 재판이 속도를 내야한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270조는 선거법 위반 사범의 재판을 다른 재판에 우선해 신속하게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판결 선고기간도 1심을 공소제기일로부터 6개월, 2심과 3심은 앞선 판결 선고일로부터 3개월 이내로 정하고 있다. 해당 조항에는 ‘반드시’ 기간 내에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년 안에 판결을 조속히 마무리 짓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를 강제할 제재 방안은 마련돼 있지 않다.

이렇다보니, 대부분의 재판은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의 선거법 위반 사범의 기소가 지난해 11월 말에 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1심 선고는 모두 지난 5월 30일 이전에 끝내야 한다. 2심의 경우도 지난달 말에는 선고가 나와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법원 측은 신속한 심리를 위해 노력한다고 하지만 코로나19 등으로 재판 진행에 차질이 발생함에 따라 전체적으로 기간을 준수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선거법 선고기한 규정은 유명무실화되고 재판은 지연되면서 ‘늑장 재판’이라는 사법 불신마저 초래된다. 사법부의 일이라고 방관해서는 안 된다. 피해는 국민의 몫이니, 입법부와 행정부가 다 같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판사 인력을 충원하든 제재 방안을 마련하든 신속한 재판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최세헌 기자 corni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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