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열쇠’ 우암동 소막마을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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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수도 역사성, 서민 삶터 흔적 간직… 보존의 길 넓혀야

부산 남구 우암동 ‘소막마을 주택’이 국가등록문화재가 된 지 5년 만에 복원 작업을 끝내고 지난 6월 개관했다. 부산의 근현대 역사성과 서민들 삶터의 애환이 서린 근대 유산이다. ‘피란수도 부산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최종 등재되기 위해서는 소막마을에 대한 제대로 된 보존·관리 계획이 필요하다. 부산일보 DB 부산 남구 우암동 ‘소막마을 주택’이 국가등록문화재가 된 지 5년 만에 복원 작업을 끝내고 지난 6월 개관했다. 부산의 근현대 역사성과 서민들 삶터의 애환이 서린 근대 유산이다. ‘피란수도 부산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최종 등재되기 위해서는 소막마을에 대한 제대로 된 보존·관리 계획이 필요하다. 부산일보 DB

추석 연휴의 한가운데인 지난 9월 30일 늦은 오후. 부산 남구 우암동 소막마을에 내려앉은 가을 햇살이 고왔다. 스러질 듯 드러누운 사양(斜陽)의 향연, 동네가 온통 따스한 주황빛이었다. 포근포근, 말랑말랑, 햇살의 질감이 손에 만져질 정도다.

이곳 건물들은 높이를 자랑하지 않아서 정겹다. 사양을 받은 사람과 사물들도 깊은 그림자로 돋을새김된 저마다의 표정으로 다채롭다. 탁 트인 하늘 위로 노을이 깔리자 뛰놀던 구름들마저 감빛을 띤다. 파랑과 주홍의 황홀한 색채 대비, 대자연의 묘기 앞에 눈이 시리다.

■7부두 앞바다를 껴안은 마을

소막마을 동쪽 야트막한 언덕에 동항성당이 있다. 한국전쟁 때인 1951년 1월 천막 성당으로 시작해 피란민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던 곳이다. 성당 꼭대기에서 두 팔을 활짝 펼친 예수상이 부산항 7부두 앞바다를 한껏 품는다.

그 위쪽에 조성된 ‘우암 도시숲’으로 오른다. 아담한 공원이지만 야경 명소, 이른바 ‘핫플’로 요즘 뜨는 곳이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일품이다. 너른 하늘 아래 불빛 흐드러진 항구에서 바다를 갈라 영도로 이어지는 부산항대교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시간이 흐르자 어느덧 보름달까지 둥실 떴다. 달이 뜨지 않는 날에도 여기엔 달이 있다. 도시숲의 시그니처로 통하는 커다란 달빛 조형물이다. 포토존에 서는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소막마을을 품은 우암동은 추석 때면 문득 찾고 싶은 아름다운 동네다. 그런데 마을 뒤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모양이다. 주택 재개발 정비 사업에 따라 해당 부지는 펜스에 가려져 있는데, 곧 높다란 고층 건물이 위용을 드러낼 것이다. 가로로 낮게 드리운 일반 주택과 수직으로 치솟은 빌딩의 극단적 대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생경한 부조화는 언제나 낯설다.

■부산의 근현대를 오롯이 품다

우암동 역사를 알리는 첫 시곗바늘은 일제강점기 이전 1909년을 가리킨다. 일본은 우암포 앞에 있던 소바위를 폭파해 도로를 만들고 우암동 179번지 일대에 축사 40동을 설치했다. 여기서 검역을 마친 소들을 일본과 만주에 수출했는데 그 규모가 한 번에 1200~1400마리를 수용할 정도로 전국 최대였다고 한다.

해방 이후 이곳은 갈 곳 없는 사람들의 소중한 거처가 된다. 귀환 동포와 한국전쟁 피란민들이 몰려들어 피란민 수용소(적기수용소)로 사용됐다. 아미동 비석마을이 일본인 묘지를 삶터로 잡았다면, 우암동 소막마을은 소가 있던 막사를 거주지로 삼은 것이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소막사를 개조해 집을 지었다. 그렇게 소막마을은 현재와 비슷한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아픔과 곡절의 사연이야 필설로 다할 수 없을 터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소막마을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 일제의 수탈을 증명하는 건물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 소막사가 주거 시설로 변용된 독특한 사례라는 점, 산업화 시기 노동자들의 생활공간으로 지금껏 존속해 왔다는 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부산만이 갖고 있는 근대 유산이다.

소막마을은 2018년에 이르러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주택(소막사) 1동(연면적 399.84㎡ 규모·지상 1층)이 한국전쟁 시대의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된 것이다. 부산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피란수도 부산 유산’ 9곳 중의 하나로서, 지난 5월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도 올랐다.

사진은 아직도 소막사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거나 주거지로의 변용을 보여 주는 소막마을 주택들. 부산일보 DB 사진은 아직도 소막사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거나 주거지로의 변용을 보여 주는 소막마을 주택들. 부산일보 DB

■아쉬운 근대 유산 보존·관리

‘소막마을 주택’은 지난 6월 보수 작업을 마치고 개관했다. 하지만 소막사의 절반만 복원돼 아쉬움을 남긴다. 맞배지붕의 기묘한 반쪽짜리 형태가 그 증거다. 바로 옆 반쪽은 한전 건물로 쓰이고 있다. 1963년 소막마을이 개인에게 불하되면서 가옥들이 쪼개지고 소유권이 얽히고설킨 탓이 크다.

소막마을 주택은 국가등록문화재지만 제대로 된 보존·관리의 길은 아직 멀다. 가장 안타까운 건 피란마을의 특성인 소막사가 변형돼 피란민 임시 시설로 사용한 흔적이 제대로 보존되지 못한 점이다. 소막 주택의 경우 피란 시절이 아닌 일제강점기의 소막사 형태로 성급하게 복원됐는데 피란 유산이라는 이름에 맞지 않는다.

‘피란수도 부산 유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목표 연도는 2028년이다. 유네스코가 세계유산 선정 과정에서 가장 유심히 보는 대목은 원형의 보존 관리다. 그때까지 소막마을을 더 이상의 훼손 없이 보존하고 관리하는 일이 중요하다.

소막마을에는 여전히 옛 주거지 흔적을 간직한 주택들이 남아 있다. 피아노 건반처럼 좁은 칸으로 촘촘히 나뉜 생활공간들, 지붕 위로 솟은 환기통을 지닌 소막 주택의 일부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지금도 소막사가 주거지로 변용된 공간이 있다는 뜻이다. 폐가나 공가로 남은 이런 장소를 보존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문화재 구역 설정 방안 없을까

일단 등록문화재가 주택 1동에 그치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원형을 간직한 주택들을 더 많이 확보할 필요가 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해당 가옥을 매입해 문화재로 등록하는 게 현실적인 방법이다. 가능하다면 소막마을 일대를 문화재 구역으로 지정해서 관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아미동 비석마을과 달리 소막마을은 사유재산이라는 점이 문제가 된다. 특히 지정문화재가 아닌 등록문화재의 경우, 그 일대의 보존 구역 설정이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건축자산 진흥구역’의 활용을 제안한다. 이는 고유한 역사건축 문화를 보호하고 건축자산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옥 등 건축자산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 제도적 근거다. 이미 서울 한옥마을이 진흥구역을 설정한 사례가 있다. 부산시도 조례 개정을 통해 소막마을을 건축자산 진흥구역으로 설정하고 보존 관리를 위한 체계적 계획과 세부 지침을 마련하면 된다.

피란수도 부산 유산 중 핵심 장소는 부산항 1부두다. 최근 도서관 건립 논란에서 벗어난 데 이어 관할 중구청이 1부두 일대에 대한 등록문화재 신청 작업을 완료해 시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을 남겨 둔 상태다. 아미동 비석마을도 지구단위계획을 통해 보존·관리 절차가 착착 진행 중이다. 이제 남은 것은 소막마을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의 열쇠

피란수도 부산 유산은 근대 유산이다. 근대 유산은 수십 년에서 100년 남짓의 흔적들이다. 한번 훼손되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특히 도심의 근대 유산은 역사성을 고려해 신중한 보존·관리를 요한다.

근대 유산을 보존, 활용하는 일은 무엇보다 그 대상을 ‘기억’하는 행위다. 현재적이고 동시대적인 것도 유산의 가치일 수 있다는 뜻이다. 피란수도 부산 유산, 특히 지금도 일상생활과 연결돼 있는 소막마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그래서 필요하다. 기존의 가치에 더해 새로운 가치를 추가하고 일궈 나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세계유산으로서의 당당한 자격이다. 소막마을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최종 등재에 열쇠를 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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