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저격 영상·비방 글… 죽음까지 내몬 ‘사이버불링’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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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표예림 씨 2차 가해 호소 후 극단 선택
유튜버 “근거 없다” 폄훼·악성 댓글 영향
사실관계 미확인 익명 글 ‘불처벌 인식’ 확산
피해자 즉각 항의·대응 어려워 처벌 한계
전문가 “가볍게 생각 집단 폭력 인지 못 해”
행위에 대한 책임 교육·대책 법안 필요

고 표예림(27) 씨는 초중고 12년간 겪었던 학교폭력 피해를 고발해 숨어있던 학폭 피해자들에게 용기와 위안을 줬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글로리’의 현실판 주인공이라는 수식어는 그래서 붙게 됐다. 고발 이후에도 학폭 피해자들과 연대해 방 안에 갇혀있던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자처했다. 그러나 표 씨가 유명해지자 표 씨의 학폭 피해를 ‘근거 없다’라며 폄훼하는 주장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퍼져나갔고 악플도 늘어났다. 표 씨 같은 사건 피해자를 향한 온라인 2차 가해를 둘러싼 논란이 잦아지자 대책 마련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죽음으로 내몬 2차 가해

표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에는 표 씨를 향한 저격 영상이나 악성 댓글 등 ‘2차 가해’가 큰 영향을 미쳤다. 표 씨는 지난 10일 한 유튜버에게서 인신공격을 당하고 있다고 호소하는 영상을 마지막으로 올렸다. 표 씨는 해당 영상에서 한 유튜버로부터 스토킹을 당하고 있고, 그의 학교폭력 이야기가 거짓으로 매도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유튜버는 표 씨의 스토킹 피해 주장이 거짓이란 취지의 영상과 함께 표 씨를 비방하는 영상을 올렸다. 명예훼손, 모욕, 스토킹 등의 혐의로 경찰서에 여러 건의 고소장을 표 씨와 서로 제출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표 씨는 지속적으로 괴로움을 토로했다.

표 씨를 향한 불특정 다수의 악성 댓글도 끊이질 않았다. 익명성을 기반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표 씨에 대해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이런 류의 모습이 싫어서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든다' '(후원을 왜 받느냐)어금니 아빠, 윤지오 생각나네' 등 2차 가해성 글이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급증하는 ‘사이버불링’

사건 피해자를 향한 온라인 2차 가해와 괴롭힘(사이버불링)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지적돼왔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건수는 2019년 1만 6633건에서 2020년 1만 9388건, 2021년 2만 8988건으로 급증했다. 피해자들은 주로 여성이나 소수자, 언론에 노출된 유명인 등이다. 유튜브, 인터넷 커뮤니티 등 온라인 생활 공간의 확장, 익명성을 이용한 혐오표현의 증가 등이 원인으로 파악된다. 온라인 세계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질수록 사이버 폭력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셈이다.

익명성 기반 온라인에서 게시글 작성자나 영상 업로더가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사이버명예훼손·모욕이 끊이질 않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황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이 되지 않은 '저격 영상'이나 온라인 게시글은 퍼지는 속도가 빠르지만 곧바로 처벌이 어렵다.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들은 해당 게시글이나 영상에 대해 곧바로 항의하거나 대응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사실과 다른 내용이 퍼져도 이를 감내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특히 사건 피해자나 참사 희생자들이 미디어 앞에 나서 발언을 이어가면 이들에 대한 '저격 영상'이나 '신상털기' 등 도를 넘은 비난과 비방이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미투 피해자가 나서 문제를 제기하면 이에 대한 인식 공격이 이뤄지거나 참사 희생자들이 목소리를 내면 이들에 대한 2차 가해가 행해져 문제가 돼왔다.

전문가들은 온라인 2차 가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김수아 교수는 "온라인에서 행해지는 2차 가해는 집단성을 띠는데 행하는 사람들은 이를 가벼운 행위라고 생각하고 집단 폭력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며 "이에 대해 시민들이 인식할 수 있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는 교육과 법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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