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블록체인, 지자체 간 본격 경쟁 불붙었다
류홍열 비댁스 대표·변호사
박형준 부산시장은 지난 9월 부산 디지털자산거래소에 대한 청사진을 발표했다. ‘블록체인 시티 부산’을 비전으로 2026년까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최첨단 도시 생태계를 조성하고 핵심 인프라인 부산 디지털자산거래소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부산 디지털자산거래소에서는 원자재, 귀금속, 지적 재산권, 탄소배출권, 토큰 증권 등 거의 모든 자산이 거래 대상이 된다. 나아가, 부산 블록체인 산업 발전을 지원하는 민간 펀드를 조성하고, 블록체인 기술기업들의 연합체인 ‘부산 블록체인 얼라이언스’도 출범한다. 부산에는 ‘노인과 바다’만이 있다는 자조와 우려가 있던 중에 부산시가 그야말로 야심 찬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블록체인 인프라 사업을 영위하는 필자도 부산시의 계획을 열렬히 응원하는 바이다.
‘블록체인 시티 부산’ 비전 불구
타 지자체와 차별화 쉽지 않아
시 계획 속도전으로 추진해야
대규모 펀드 조성해 지분 투자
전국 스타트업 부산 정착시켜야
디지털신분증 기술도 접목을
그러나 박형준 시장의 출사표가 목표를 달성할지 우려가 적지 않다. 블록체인을 핵심 산업으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힌 전국의 지자체들은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지자체는 서울, 인천, 대구가 있다. 이들 광역시들은 지자체장이 공교롭게도 모두 여당 소속이다. 오세훈, 홍준표 시장은 대선 후보급 인물들이고, 인천의 유정복 시장 역시 박형준 시장에 전혀 밀리지 않는 경력을 갖추고 있다. 부산시장이 여당 소속이라는 점만으로 중앙정부 지원과 같은 혜택을 독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각 지자체의 정책과 비교해서도 부산시의 분발이 필요해 보인다. 먼저, 서울시는 2018년 이미 ‘블록체인 도시 서울 추진 계획’을 발표했고, 중장기 계획으로 10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유망 기업 유치, 인재 양성, 블록체인 접목 사업도 추진한다. 대구시는 블록체인을 미래 핵심 3대 산업으로 선정해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블록체인 기술 확보를 위해 2023년 자체 예산 78억 원을 마련했다. 대구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공고한 ‘지역 블록체인 기술혁신지원센터’ 구축 사업에 부산시와 더불어 최종 선정됐다. 인천시는 유정복 인천시장의 공약에 따라 ‘블록체인 허브 도시’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디지털산업진흥청 및 디지털자산거래소 유치, 블록체인 칼리지 개설, 블록체인 기술 실증 통합플랫폼 구축을 추진한다. 최근에는 인천블록체인 허브센터 개소, 인천블록체인산업협회 설립, 블록체인 육성을 위한 인천성장펀드 조성을 연이어 진행했다.
부산시가 디지털자산거래소 설립과 더불어 추진하려는 계획이 다른 지자체와 비교해 차별점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블록체인특구로 지정된 지 수년이 흘렀지만 오히려 다른 지자체의 추격에 부산의 지위가 위태로워 보일 정도다. 이렇게 경쟁이 치열해지고 차별점을 찾기 어려울 때에는 결국 속도전이다. 부산시가 발표한 계획을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신속히 진행시켜야 한다. 경쟁 지자체보다 더 큰 규모의 펀드를 조기에 조성해 전국에 있는 블록체인 기업에 투자하고 부산에 정착시켜야 한다. 지분 투자는 피를 섞는 것에 비유될 정도로 강력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 대부분인 블록체인 기업에게 전형적인 세제 혜택은 별 도움이 되지도 않고 매력적이지도 않다. 그리고 경제 상황과 업계 변화에 민감한 벤처 캐피털 투자자들의 동향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도 있다. 경기침체에 규제 불확실성이 더해져 블록체인 분야의 벤처 캐피털 투자가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관심은 코인·토큰 프로젝트나 사용자 대면 애플리케이션에서 블록체인 인프라로 옮겨 갔다. 올해에는 블록체인 인프라 중심으로 투자가 이뤄졌다고 한다.
아울러, 디지털신분증이라 불리는 DID(Decentralized Identity) 기술을 앞으로 설립될 부산 디지털자산거래소와 접목해 DID를 보유한 사람은 별도 인증 없이 거래소 서비스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인프라 서비스를 검토해 볼 만 하다. 부산시가 발급하는 DID를 통해 신원 확인이 완료된 사람에게는 그와 연동되는 고유한 디지털 지갑을 생성·부여하여 DID에 더해 부산 디지털상품 거래소 활용까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DID는 공공 및 민간 영역에서 관심이 커지면서 활성화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부산시의 거래소 사업에 공공성을 더 높여 줄 수도 있다. 종래의 관점에서 정책을 구상하고 산업을 진흥할 것이 아니라, 앞서 움직이는 민간 분야의 변화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부산시는 디지털자산거래소라는 거대 인프라 구축에 팔을 걷고 나선 마당에 블록체인 인프라 사업에 집중해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정책의 활로를 찾고 차별화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