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 “‘공원 같은 건축’ 계속 하고 싶어”
프리츠커 받은 건축가 부산 강연
“건축은 거대한 볼륨 가진 물체
주변 환경 녹아들 수 있게 설계”
“이기대 많은 가능성 가진 장소”
이누지마 섬 프로젝트 소개도
‘건축계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받은 일본 여성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가 부산에서 작품 세계를 알리는 강연을 열었다. 세계 곳곳에서 도시의 상징이 된 건축물을 만든 과정과 그 의미에 대해 청중에게 설명했다. 부산시가 추진하는 ‘이기대 예술공원’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문화공간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대한건축학회 부울경지회는 지난 20일 오전 부산시청 1층 대강당에서 세지마 가즈요 초청 강연을 주최했다. ‘건축과 환경’이 주제인 강연에는 건축계 관계자와 학생 등이 참석했고, 미술관·대학·학습 센터 등을 설계하며 중시한 철학과 배경 등을 설명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1995년 니시자와 류에와 건축사무소 SANAA를 설립한 세지마 가즈요는 세계적인 건축가로 꼽힌다. 두 사람은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며 2010년 건축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SANAA는 유리, 금속, 자갈 등 매끄러운 재료를 활용해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는 작품을 만들어왔다.
세지마 가즈요는 부산시가 공개한 ‘이기대 예술공원’ 추진 계획을 먼저 언급했다. 부산시는 강연 직전 이기대에 ‘부산 오륙도 아트센터’ ‘바닷가 숲 갤러리’ ‘이기대 국제 아트센터’ 등을 세우는 가안을 발표했고, 박형준 시장은 세지마 가즈요와 예술공원 조성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마이크를 잡은 세지마 가즈요는 “사진으로 본 이기대는 매우 아름다운 공간”이라며 “다양한 건축물이 들어설 수 있고, 많은 가능성을 가진 장소”라 평가했다. 그는 “박형준 시장이 아시아를 대표하는 예술·문화 공간으로 만들길 원한다고 말했다”며 “부산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장소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세지마 가즈요는 건축사무소를 35년간 경영하면서 ‘건축과 환경’이라는 테마를 계속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건축은 거대한 볼륨을 가진 물체이기에 주변 환경에 녹아들 수 있는 설계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며 “오늘 강연으로 학생과 건축 관계자 여러분이 많은 생각을 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알메르 극장과 문화 센터, 일본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미국 오하이오 톨레도 미술관에 대한 설명으로 본격적인 강연이 시작됐다. 그는 “도심에 지은 21세기 미술관은 창이 없는 공간을 만들어 외부 나무 등 자연경관을 그대로 즐길 수 있도록 설계했다”며 “유리를 활용한 톨레도 미술관은 반투명 효과로 공간을 입체적으로 연결하려 했고, 유리에 반사되는 모습으로 또 다른 풍경을 만들 수 있었다”고 밝혔다.
스위스 로잔에 만든 롤렉스 러닝 센터는 연결성을 중시했다고 밝혔다. 큰 지붕 아래 다양한 공간을 둔 이 건물에 학생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는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을 만들도록 지붕에 구멍을 뚫었다”며 “다양한 방향에서 건물에 진입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밝혔다.
부산 이기대를 언급하며 2008년부터 시작한 이누지마 섬 프로젝트도 설명했다. 그는 “작은 섬에 미술관을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받아 시작한 프로젝트”라며 “많은 건물이 주변 풍경과 어우러지는 갤러리로 바뀌면서 마을 전체가 새로운 공간으로 태어났다”고 밝혔다. 그는 “경계선 밖 풍경까지 즐길 수 있도록 갤러리 안에 거울을 둔 곳도 있다”며 “고령화된 마을이라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개방성 있는 집이 만들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세지마 가즈요는 미국 코네티컷 그레이스 팜, 이탈리아 밀라노 보코니 대학 등도 인근 자연, 공원과 어우러지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중국, 일본 등에서 진행하는 신규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도 이어졌다.
작품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청중은 그의 작업 방식과 건축 목표 등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세지마 가즈요는 “작은 모형으로 시작해 장소에 맞는 건축물일지 생각을 거듭하며 큰 모형을 만든다”며 “다양한 모습이 존재할 수 있는 ‘공원 같은 건축’을 계속 하고 싶다”고 답했다.
대표작인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에 대해서는 “약 20년 전 처음 완성됐을 때는 갑갑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면서도 “이후 부드러운 쪽으로 바뀌고 있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주에 21세기 미술관에 다녀왔는데 나무가 커져 있었고, 또 다른 풍경이 건물을 다시 만든 느낌이었다”며 “갤러리와 미술관 사이 네트워크가 강화된 모습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부산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세지마 가즈요는 “비행기에서 부산을 내려봤을 때 고층 아파트가 쭉 이어진 모습이 인상 깊었다”며 “나쁜 의미가 아니라 고층 건물과 그사이에 보이는 길 등에서 부산의 모습을 느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너무 크게 짓는 건 아니지 않나”라며 “새로운 건축물과 풍경을 만들어 가는 게 부산다움에 가까워지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