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도 문 여는 소아과 찾아 김해서 영도까지 왔어요”
원도심 달빛어린이병원 가 보니
야간·주말에도 치료하는 소아과
부산서 네 번째로 영도서도 운영
문 열기 전 가도 2시간 대기 예사
타 병원 문 닫는 시간 환자 더 몰려
의료 공백 메우기엔 의료진 태부족
지난 21일 오후 2시. 부산 영도구 영선동의 ‘아이서울병원’ 진료층에 들어서자 입구에서부터 사방으로 달려나가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 웃음소리 사이로 우는 소리가 섞여 들려오고, 안내 스피커에서 나오는 “다음 순번 대기해 달라”는 방송이 연신 귓전을 울린다.
입구 쪽 접수창구부터 안쪽 진료실까지 어린이 행사장을 방불케 할 만큼 수많은 사람이 북적인다. ‘노랑방’ ‘파랑방’이라는 이름이 붙은 진료실 앞에는 수십 명의 대기줄이 늘어섰다. 진료 순번을 알려주는 모니터 화면에는 접수시간에 따라 진료 순번이 매겨진 아이들의 이름이 빽빽하다.
3세 아이와 함께 병원을 찾은 30대 엄마는 “애매한 시간에 병원에 도착해 오전에 진료를 받지 못하고 오후까지 대기했다”면서 “지난주에는 오전 9시 이전에 도착했는데 접수부터 대기 진료까지 꼬박 2시간이 걸렸다. 말로만 듣던 ‘소아과 오픈런’ 대란을 직접 겪어보니 몸도 마음도 지친다”고 토로했다.
소아과 의료 공백 지역으로 꼽히는 부산의 서부산·원도심 지역에 ‘달빛어린이병원’이 들어서자 급격한 환자 쏠림이 나타나고 있다. 달빛어린이병원은 평일 야간이나 주말, 공휴일 등 의료 공백 시간에 소아 경증 환자를 진료하는 병원을 말한다. 영도구 아이서울병원은 이달부터 달빛어린이병원을 운영했는데, 주말·공휴일 운영시간을 늘려 오후 6시까지 운영하기로 했다. 토·일요일 오후에도 진료를 시작하자 강서구 명지동, 사하구 다대동, 사상구 엄궁동, 경남 김해시 등지에서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병원에 따르면 접수부터 진료까지 최소 30분에서 1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사람이 몰리는 주말의 경우 대기 시간은 더 길어진다. 아이서울병원 이창연 원장은 “주말 오전에만 의사 2명이 아동 환자 200여 명을 받는다. 10시 30분이면 오전 접수가 마감돼 환자가 수십 명씩 밀리기 일쑤”라며 “주말 오후에도 약 140명 이상의 환자를 봐야 하는데, 환자 수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여 앞으로가 더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2021년부터 달빛어린이병원으로 운영되는 연제구 아이사랑병원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곳은 주말과 공휴일에도 오후 10시까지 문을 여는데, 오전보다 오후에 병원을 찾는 내원객이 1.5~2배 정도 더 많다. 아이사랑병원 고진희 원장은 “주말 오전 환자가 60~80명 정도라면 다른 병원이 문을 닫는 오후에는 130명을 넘어가기도 한다”며 “현재는 의사·간호사를 구하기 어려워 입원실과 병동을 다 가동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부산에서 운영되는 달빛어린이병원은 겨우 4곳이다. 이마저도 지난달까지 3곳으로 운영되다 이달 한 곳이 늘어났다. 부산시는 달빛어린이병원을 2025년까지 5곳으로 늘릴 계획이지만 확충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서부산권역에 한 곳을 더 늘리기 위해 노력하지만 선뜻 동참 의사를 밝히는 병원이 없는 상태다.
야간·휴일에 진료를 하려면 인력을 추가로 채용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모집하는 것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도 운영비 일부를 지원하지만, 달빛어린이병원을 운영할 만큼 충분한 유인 요소가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창연 원장은 “달빛어린이병원을 운영하려면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검사실, 원무과 직원 등 추가 인력 채용과 연장 근로 등이 불가피하다. 인근 약국 근무 시간도 문제여서 고려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며 “병원 인근 약국에서는 ‘달빛어린이병원을 하지 말아 달라’며 농담 섞인 호소까지 할 정도”라고 말했다.
시는 내년에 서부산권 달빛어린이병원 한 곳을 더 운영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시 보건위생과 관계자는 “보건복지부도 달빛어린이병원 1곳당 지원 금액을 획기적으로 늘린다고 밝힌 바 있다. 아직 세부적인 지침은 내려오지 않았으나, 정부 지원이 보다 확대되면 현재보다는 병원을 설득하는 게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달빛어린이병원뿐 아니라 일반 소아청소년과 병의원에서도 ‘소아과 오픈런’ 현상은 일상이 됐다. 의료계에서는 이 같은 필수 의료 수급 불균형 현상이 쉽게 풀리지 않는 숙제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코로나19 엔데믹 시대에 접어들어 예전에 비해 소아과 환자가 늘었지만, 코로나19 기간 동안 소아과 의사가 거센 구조조정을 맞아 ‘소아과 오픈런’ 사태는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부산의 한 병원에서 근무 중인 한 소아과 전문의는 “초저출산 시대에 진입한 데다 ‘이대목동병원’의 신생아 사망 탓에 의료진이 구속된 사건을 계기로 소아과 기피 현상까지 심해졌다. 또한 코로나가 터진 2~3년간 소아청소년 호흡기 질환자가 기존보다 70~80% 정도 줄어들었다”며 “악조건이 이어지다 보니 소아과 구조조정의 시계가 급속히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