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인류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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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상 기후변화에너지대안센터 대표

독서아카데미 ‘기후위기와 문학’
인류세 시대 문학예술의 처지 토론
생태주의적 존재 돌아보는 자리
이제 인간에게 반격 가하는 자연
기후위기 시대 존재방식 일깨워

정영선 소설가(오른쪽)가 도서출판 산지니가 마련한 독서 아카데미 ‘기후위기와 문학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산지니 제공 정영선 소설가(오른쪽)가 도서출판 산지니가 마련한 독서 아카데미 ‘기후위기와 문학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산지니 제공

한국의 시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김춘수의 시 ‘꽃’은 지독한 인간 중심의 근대주의적 오만으로 재해석되었다. “너에게는 내가 불러 주기 전에도 충실한 너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1만 2000년 인간종의 영속은 유별한 인간의 특이한 능력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안정되고 변화가 예측되는 기후 특성에서 연유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현존 지구의 지질학적 연대기를 인간과 자연이 서로 평화스러운 관계에 있다는 뜻을 가진 ‘홀로세(Holocene)’라고 부르고 있다. 2000년 화학자 파울 크루첸과 유진 스토머가 제안한 학설로서, 새로운 지질시대의 개념으로 ‘인류세(Anthropocene)’를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인간의 활동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운석 충돌과 같은 힘을 가진 것으로, 홀로세라는 지질학적 시대 구분은 이제 끝낼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난 6월 중순부터 10월까지 도서출판 산지니에서 총 15회에 걸쳐 열린 독서아카데미 ‘기후위기와 문학의 대화’는 이러한 인류세 시대에 대응하는 문학예술의 처지를 담담히 진술하고 토론하는 귀한 자리였다. 독자로서 또는 생태시민으로서 또는 게으르고 둔감한 환경운동가에게도 이러한 기후위기 시대 문학적 상상력의 연찬은 생태주의적 존재의 연원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흔하지 않은 기회이기도 하였다.

앞머리 독회의 주제 도서는 클라이브 해밀턴의 〈인류세〉로 강의와 토론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기후시대적 대응으로서 인류는 이제 지구 행성에 대한 권리의 행사보다는 지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인간 중심주의’의 요청으로서 인간 스스로가 자연의 거대한 힘들에 필적할 만한 지질시대 즉 인류세에 도래했기 때문에 비인간을 포함한 전체 행성의 미래가 이제 의식적인 힘의 결정에 달렸다고 보는 것이다.

인도 작가 아미타브 고시의 〈대혼란의 시대〉에서는 기후 변화는 그간 인간이 저질러 온 모든 행동이 집약된 종착역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이를 추동해 온 근대의 정치이념인 ‘자유주의’는 실패한 것이 된다. 그는 문제의 해법으로서 종교적 지도력과 시민행동이 기후위기 시대의 주요한 힘이 될 수도 있다고 보았다.

프로젝트의 중심이랄 수 있는 작품 읽기는 아직은 드물지만 기후위기를 주요한 주제와 배경으로 한 시와 소설이 추천되고 우리 지역의 작가들이 참여한 작품에 대한 소개와 평가가 이어진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정광모의 소설 〈토스쿠〉였다. 도저한 물질의 파도에 표류하는 생명 파괴의 현대 문명 속에 ‘자아’를 찾아 고투하는 인간 군상을 그리고 있는 듯하였다. 인물들은 돌아오는 안개 속의 바다에서 ‘플라스틱 바다’라고 불러야 마땅한 곳에서 길을 잃는다. 갈 길을 잃어버린 작품 속의 인물들을 통해 인류세를 맞고 있는 인간의 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여 너무나 감감하였다.

작가 정영선의 평설로 진행된 김초엽 소설가의 〈지구 끝의 온실〉은 일종의 SF소설로서 기후위기 시대를 극복하는 것은 결코 과학기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생존에 대한 간절한 연대라는 것을 대재앙 이후 살아남는 과정을 통해 그리고 있었다.

시인 최정란의 해설로 가졌던 시(詩)의 독해는 나희덕 시인의 산문집 〈문명의 바깥으로〉를 통해 백무산 시인, 고 허수경 시인, 김혜순 시인을 불러내어 생명과 평화를 넓게 읽는다. 특히 김혜순은 ‘피어라 돼지’라는 시에서 2011년 구제역 파동으로 300만 마리의 돼지들이 생매장되는 과정을 통해 그것이 곧 죽임의 구덩이에 빠진 인간들임을 보여 주는 듯하였다.

“인간 세계의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던 자연이 현실적으로 인간 세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은 더 이상 폭력을 당하는 객체가 아니라 인간에게 반격을 가하는 주체가 된 것이다.” 이것이 인류세에 근원적인 인간 현상의 문제의식으로 떠오르면서 그렇다면 다시 기후위기 시대 인간 세계의 존재방식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어찌해야 하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무겁고 그리고 깊게 묻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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