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의 플러그인] 서울 메가시티와 자가당착의 시대
논설위원
총선 앞두고 불쑥 나온 서울 확장안
여야 모두 내부적인 이율배반 빠져
민주당, 반대 여론에도 지도부 침묵
수도권 눈치에 지방 소홀 태도 발목
국힘, 동남권 무산 땐 나 몰라라 방기
서울 추진엔 지역 출신이 되레 총대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불쑥 내던진 경기도 김포시의 서울시 편입 추진을 놓고 목하 전국이 요란하다. 여야는 총선의 정략적 잇속 계산에 분주하고, 다른 대도시들은 이참에 ‘서울 메가시티’에 편승해 곁불이라도 조금 쬘 수 있을지 눈치를 보는 모습이다.
야권의 지적처럼 여당 대표가 국토 대개혁의 큰 틀에서 서울 메가시티 방안을 내놓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여기에 적극적으로 찬성 또는 반대 의견을 밝히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단박에 전국 이슈가 된 것은 그 대상이 다름 아닌 서울이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같은 이슈가 제기됐다면 그냥 변방의 북소리로 묻혔을 것이다.
수도권과 양립하는 대칭축이자 지역 생존의 차원에서 추진한 동남권 메가시티가 무화되는 과정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던 부울경으로선 새삼 수도권의 공고한 위상에 입맛이 쓸 수밖에 없다. 기실 일이 이렇게 흘러가는 데는 우리나라 거대 양당의 자가당착적인 행태가 크게 한몫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여당이 총선을 염두에 두고 불붙인 서울 메가시티 방안에 대해 아직도 당 차원의 찬반 언급이 없다. 이낙연 전 대표가 최근 “서울 메가시티 구상은 국가를 가분수로 만드는 도박”이라며 “균형발전이라는 국가 목표를 흔들고 있다”라고 비판했고, 같은 당의 김두관 의원도 “서울 확장에 균형발전으로 맞서야 한다”며 이재명 대표에게 분명한 반대 입장을 요구했다. 국가균형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볼 때 시대 역행적인 행태라고 분명하게 못 박은 것이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묵묵부답이다.
사실 이 대표는 경기도지사 선거를 한 해 앞둔 2017년 남경필 당시 지사의 ‘경기도 포기’ 주장에 대해 “지방자치 분권 시대에 역행하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정치적으로 실현 불가능하고 효과도 없다”라며 일축했다. 서울 메가시티에 분명하게 반대한다고 밝힌 것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지금은 가타부타 말이 없다.
어떻게 보면 민주당은 겉으로는 균형발전을 당의 기본 가치라고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에 줄곧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요즘에는 막바지 단계에 이른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위한 법 개정에 팔을 걷어붙이고 반대하는 모습에서 그 좌고우면하는 속내를 엿볼 수 있다. 부울경이 고대하는 우주항공청 특별법 처리 역시 이를 뻔히 알면서도 서울과 수도권 눈치를 보느라 계속 어깃장을 놓는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부터 국토균형발전을 추구해 왔다고 하면서도 각론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 오면 오히려 주춤거리기 일쑤였다. 이런 어정쩡한 태도가 여당의 서울 메가시티 밀어붙이기에도 불구하고 당 차원의 명확한 입장조차 못 내놓는 자가당착의 늪에 빠지게 했다고 여겨진다.
국민의힘 역시 자가당착의 늪에 빠진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명실상부한 메가시티가 실현됐다면, 그 첫 지역은 당연히 부울경이여야 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올해 1월 1일 출범해 지방분권과 국토균형발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국민의힘 출신 부울경 지자체장들이 취임하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대안으로 ‘경제동맹’을 제시했지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 이상은 아니었다.
당시 부울경 메가시티가 좌초될 위기에 처하자, 지역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국민의힘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을 강력히 촉구했다. 어떻게 해서든 메가시티의 불씨만은 살려놔야 한다는 절박감의 발로였다. 그러나 국민의힘 중앙당 차원의 조율과 개입 노력은 끝내 없었다. 오히려 사실상 이를 방기했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서울 메가시티 방안이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부울경 메가시티도 다시 추진하겠다고 한다. 더구나 서울 메가시티 구상을 처음 천명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구성된 당내 특별위원회 위원장도 모두 부울경 출신이다. 정말 아이러니하다고 해야 할지,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할지 어지러울 지경이다. 결국 메가시티도 서울이 먼저 시작해야만 다른 지역도 겨우 곁다리로 논의에 끼일 수 있다는 씁쓸한 사실만 재확인하게 됐다. 자가당착도 이쯤 되면 거의 고질이 됐다고 해야 할 판이다.
현재로서는 서울 메가시티 구상이 어떻게 결판날지 알 수 없다. 주민은 물론이고 이해관계가 걸린 지자체만 한둘이 아니다. 지금처럼 말만 요란하다가 총선 뒤 유야무야 될 공산도 충분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정치권의 자가당착적인 행태는 더욱 노골적으로 되풀이되리라는 점이다. 아직도 우리 정치권은 국민을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 느꼈기 때문이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