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대중교통 이용하면 20분 만에 이웃센터 도착 [부산형 15분 도시 진단]
1. 싱가포르 ‘앙 모 키오’
이동수단 재배치로 ‘일상 여유 회복’
핵심 인프라는 자전거 전용 도로
2026년까지 길이 총 27km 완성
버스 정류장마다 자전거 주차장도
도시 전역 100여 개 이웃센터 운영
유치원·병원·상점 결합 복합공간
지난 1일 〈부산일보〉 취재진이 찾은 싱가포르 앙 모 키오. 마리나베이와 약 10km 떨어진 주택 밀집 지역인 이곳은 육상교통청(LTA)이 처음으로 도보와 자전거 중심 생활권 ‘워킹 앤 사이클링 타운’을 조성한 지역이다.
주요 교통시설, 학교, 공원, 식당가 등을 지나도록 설계된 자전거 전용 도로가 이곳의 핵심이다. 전동킥보드 등 액티브 모빌리티(AM·Active Mobility)도 함께 달리는 자전거 전용 도로는 오는 2026년 총 27km 길이로 완성된다. 국내에서 골칫거리 취급을 받았던 ‘공유 자전거’는 이곳에선 길거리를 무단점용하는 방해꾼이 아니었다. 정부가 액티브 모빌리티의 활성화를 위해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마련했고, 그 과정에서 대중교통과의 조화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버스정류장마다 여유공간을 활용한 자전거 주차장이 한 세트처럼 딸려 있었고, 지하철 역에는 무려 300여 대의 자전거가 주차장에 수용됐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주차장 한 켠에는 공유자전거 이용자를 위한 QR 코드가 부착돼 있었다.
정장을 입고 공유자전거를 빌리는 중년 회사원, 아이 둘과 함께 헬멧을 갖춰 쓰고 자전거를 타는 엄마, 전동 휠체어를 타고 자전거 전용도로를 오르는 어르신 등 이들의 일상엔 액티브 모빌리티가 자리잡았다. 앙 모 키오 MRT(싱가포르의 도시철도) 역 관계자는 “아침이면 MRT를 이용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역으로 오고 각자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운 뒤 MRT에 몸을 싣는다”며 “저녁에 또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흩어지는 게 이곳의 일상이다”고 설명했다.
■도보-자전거-대중교통 ‘심리스’
싱가포르의 액티브 모빌리티 인프라는 N분 도시의 과제인 ‘퍼스트·라스트 마일’ 모빌리티 구현에 단초를 제공한다. 최초 출발지에서 대중교통까지의 구간이 퍼스트 마일, 대중교통에서 최종 목적지까지의 구간이 라스트 마일이다.
싱가포르는 2019년 LTA 육상수송마스터플랜 2040을 통해 ‘20분 마을 45분 도시’ 개념을 제시했다. 도보, 자전거,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거지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센터까지 20분 만에 도착하고, 출퇴근 피크 시간대에도 목적지까지 45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도시 체계를 의미한다. 자전거에는 모터가 달린 개인이동수단도 포함되며, 이동수단 간 이용이 매끄러운 일명 ‘심리스(seamless) 연결’이 강조된다.
싱가포르는 부산과 면적은 비슷하지만, 인구는 약 200만 명을 앞서 인구밀도가 훨씬 높다. 자동차 이용을 최대한 배제하고 대중교통과 액티브 모빌리티 중심으로 구성된 도시체계를 완성시켜 높은 이동 수요를 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섬 전체에 걸친 자전거 도로(ICN·Islandwide Cycling Network)도 20분 마을 45분 도시를 가능케 하는 핵심 중 하나다. 2020년 시작된 ICN은 기존 자전거 전용도로를 싱가포르 전역에 걸쳐 2030년까지 1300km로 연장하는 작업이다. 단순히 도로 길이를 늘리는 것보다, 시민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주요 교통수단과 생활 시설과의 연결성을 최우선으로 한다.
연계 인프라 구축에도 적극적이다. 중심업무지구(CBD·Central Business District)에서도 승용차 1대를 위한 갓길 주차장을 과감하게 없애는 대신, 자전거 20대를 위한 주차 공간을 만드는 다소 파격적인 정책까지 벌인다. 민간 기업에도 샤워시설이나 개인 락커, 자전거 주차공간, 자전거 수리시설 등을 건물에 마련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일·이웃 가까이’ 일상의 질 채운다
‘N분 도시’는 도심 교통수단의 효율적인 재배치를 넘어, 공동체 회복이라는 가치로 귀결된다. 주거지 주변에서 대부분의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하면서, 일상의 질을 높이자는 것이다. 주거지 근처에 업무시설을 지어 생활권을 좁히고, 이웃이 모이는 물리적 공간을 필수적으로 만든다.
싱가포르는 도시 전역에 100여 개의 이웃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2040년까지는 마리나베이 등으로 대표되는 도심 CBD가 아닌 주롱, 우드랜드, 펑골 등 외곽지역에 업무지구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들 이웃센터와 업무시설에서도 대중교통, 액티브 모빌리티와의 매끄러운 연결이 강조된다.
2019년 조성된 오아시스 테라스는 싱가포르 펑골에 위치한 새로운 방식의 이웃센터로, 식당, 유치원, 종합병원, 상점 등이 결합된 복합공간이다. 이곳에서 만난 영국 출신 스티브(60) 씨는 “싱가포르는 모든 걸 문 앞에 둔다. 내집 문을 나서면 모든 시설이 있고, 그 시설들은 주변 산책로나 대중교통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며 “어딜 가든 차를 이용해 움직여야 했던 영국 생활과 달리, 이곳에선 더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LTA 측은 “2040년까지 도심 외곽에 새로운 허브를 조성하면, 집 근처 일자리는 더 많아지고 출퇴근 평균 시간은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다”며 “더불어 액티브 모빌리티 네트워크도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글·사진=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