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정의는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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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실화 다룬 정지영 감독 ‘소년들’
삼례 나라슈퍼 사건 그린 영화
진실 밝히는 가상의 형사 배치
과거와 현재 긴장감 있게 교차

영화 ‘소년들’ 스틸 컷. CJ ENM 제공 영화 ‘소년들’ 스틸 컷. CJ ENM 제공

사회 부조리와 공권력 횡포. 우리가 언제든 겪을 수 있지만, 쉽게 말하지 못하는 부분을 영화로 만든 정지영 감독이 ‘소년들’로 돌아왔다. 24년 전 삼례 나라슈퍼 할머니 살인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2007년 판사 석궁 테러 사건을 소재로 한 ‘부러진 화살’과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다룬 ‘블랙머니’를 잇는 실화 3부작 중 하나다.

1999년 일어난 사건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답답함을 다루고 있기에 이 소재로 ‘소년들’을 만든 건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언론에서는 연일 예상치 못한 끔찍한 사건이 보도되고, 물가는 무섭게 올라가는 현실이다. 영화마저 진지하고 무겁다면 관객들은 어떤 선택을 할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1999년, 비 내리는 어느 밤 지방 소읍 작은 슈퍼마켓에 3인조 강도가 침입한다. 약간의 패물과 현금을 훔쳐 가는 절도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었다. 청테이프로 입이 막힌 할머니가 질식사한 살인사건이 되고, 조용했던 마을은 발칵 뒤집힌다. 그런데 흉악한 범인이 누구일지 궁금해하기도 전에 용의자들이 검거되면서 사건은 종결된다. 하지만 사건은 예사롭지 않다. 경찰이 밝힌 3인조 강도 살인자들이 아직 앳된 소년들이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 소년들이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전에 그들이 범인이라고 자백한 사건은 더 이상 사람들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이후 소년들을 용의자로 검거했던 최우성 형사는 승진하고, 이 경찰서에 베테랑 형사 황준철이 반장으로 부임한다. 바로 그날 준철은 소년들이 범인으로 종결된 사건의 진범이 있다는 수상한 전화 한 통을 받으며 재수사에 돌입한다.

수사를 시작하자마자 준철은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음을 알게 된다. 소년들이 허위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 때문임을 밝혀낸다. 준철은 진실을 알리고자 하지만, 이 사건은 무려 17년 동안 공론화되지 못한다. 권력을 등에 업은 최우성이 준철을 좌천시키면서 그의 입을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영화는 소년들과 형사 준철을 중심으로 1999년과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2016년을 긴장감 있게 오간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파헤치는 동시에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그로 인해 영화의 전반부는 수사물의 형식을 띠고 있으며 후반부는 재심 과정들을 세밀하게 풀어낸다.

자신의 실적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밝히길 두려워하는 권력, 진실이 따로 있다고 아무리 소리쳐도 소년들 말을 들어주지 않는 이웃, 권력에 힘없이 무너지는 개인들. 영화 ‘소년들’을 보고 있으면 현실이 더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기사만 검색해도 결론을 알 수 있는 실화라 새롭진 않아도 정지영 감독의 힘 있는 연출, 억지 감동이 아닌 담백한 연출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시간에 빠져들게 만든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소년들이 진실을 찾을 수 있도록 응원하고 싶어진다.

영화는 실화가 바탕이지만, 어느 정도 픽션이 존재한다. 설경구가 연기한 황준철 반장은 실제로는 없던 인물이지만,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수사했던 황상만 형사가 모티브가 됐다고 한다. 감독은 사건의 양상이 비슷하고, 사건을 풀어갈 인물이 필요하니 영화에 투입해도 괜찮겠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진실을 밝히려는 형사가 실제로는 없었지만, 다른 살인사건 현장에는 있었음이 다행스러운 건지 분노해야 할 일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아직도 이런 일들이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면 답답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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