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시기 아시아는 왜 전쟁과 폭력으로 물들었나?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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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1945-1990/폴 토머스 체임벌린

내전·해방전쟁·대리전으로 지속
45년간 민간인 사망자 2000만 명
미국·소련·중국 지정학적 경쟁 등 원인
장기 평화는 유럽과 북미에 국한

1964년 캄보디아 국경선 인근에서 작정 중인 베트남공화국군 특수부대. 이데아 제공 1964년 캄보디아 국경선 인근에서 작정 중인 베트남공화국군 특수부대. 이데아 제공

<아시아 1945-1990>은 아시아 탈식민화 과정에서 생겨난 전쟁과 폭력의 기원과 궤적을 세밀하게 그린 책이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장기 평화’가 유럽과 북아메리카에만 국한되었을 뿐, 동일한 시기 아시아에서는 내전, 해방전쟁, 초강대국들의 대리전 등으로 참혹한 ‘열전’이 지속되었음을 방대한 연구를 통해 증명한다.

아시아에서는 냉전 시기인 1945년부터 1990년 사이에 여러 전쟁으로 그 상당수가 민간인인 20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음을 면치 못하는 대규모 참극이 빚어졌다. 이 수치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45년 동안 매일 약 12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국가 간이나 인종·종교 간의 극단적인 폭력적 충돌 속에 사망했음을 의미한다. 냉전 시기 아시아에서 일어난 전쟁 희생자 숫자는 중국 내전 250만 명, 한국 전쟁 300만 명, 프랑스-인도차이나 전쟁 29만 명, 베트남 전쟁 400만 명, 캄보디아 제노사이드 167만 명, 인도네시아 공산당 학살 50만 명, 방글라데시 해방전쟁 100만 명,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100만 명, 이란-이라크 전쟁 68만 명, 레바논 전쟁 15만 명 등이다.

저자는 냉전 시기 제3세계에서 벌어진 충돌들이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보다 아시아에서 압도적으로 진행됐음을 밝힌다. 그 충돌들이 소련 및 중국의 국경지대인 남부 아시아 주변 지역을 따라 일정 시기별로 크게 세 개의 전선을 형성하며 그 성격을 달리해 왔음을 강조한다.

1986년 3월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이 소련군에 파괴된 마을로 들어오고 있다. 이데아 제공 1986년 3월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이 소련군에 파괴된 마을로 들어오고 있다. 이데아 제공

첫 번째 전선(1945년~1954년)은 동아시아에서 대두한 공산주의 공세를 다룬다. 5년간의 내전을 통해 1949년 중국 공산당의 혁명이 성공하자 포스트식민주의 세계의 혁명 전사들은 크게 고무됐다. 두 강대국 미국과 소련을 긴장시켰으며 아시아에 눈을 돌리게 했다. 한국과 인도차이나에서 각각 ‘대리전’과 ‘해방전쟁’이 발발하면서 유럽을 동서로 분할하던 냉전의 지도가 새롭게 수정되었다. 미국은 ‘공산주의 팽창’의 봉쇄 전략을 위해 서둘러 자국의 군대를 전개했으며, 소련은 ‘자본주의 포위’를 깨뜨리려 들었다. 두 나라 모두 힘과 영향력을 포스트식민주의 사회들에 투입함으로써 그들의 전신인 제국의 발자국을 뒤따랐다. 이로써 아시아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첫 지정학적 충돌의 격전지가 되었다.

두 번째 전선(1964년~1979년)은 북베트남 공산주의자들과 미국의 후원을 받는 남베트남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면서 형성되었다. 북베트남의 하노이가 전면에 나서자 공산주의 세계의 패권을 둘러싸고 소련과 중국 사이의 경쟁과 균열은 더욱더 커졌다. 미국·소련·중국 사이의 3자 투쟁은 인도네시아 공산당에 대한 대학살이 벌어지는 데 일조했다. 중국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여 소련을 견제하려던 미국은 ‘중국 중재자’ 파키스탄의 방글라데시 침공을 돕거나 방조했다. 파키스탄은 인도와의 전쟁도 불사했으며, 미국은 노골적으로 인도를 못마땅해했다.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서 허우적댔던 미국은 베트남의 영향력을 막기 위해 중국을 끌어들여 캄보디아의 끔찍한 독재자인 폴 포트를 돕게 했다. 이는 결국 ‘킬링필드’로 악명 높은 크메르 루주(붉은 크메르)의 민간인 대학살로 이어졌다. 한때는 강력한 후원자였지만, 더 이상 하노이를 통제할 수 없던 중국은 베트남에 의해 폴 포트가 축출되자 베트남을 공격했다. 미국의 공산주의 봉쇄에 맞선 소위 ‘제3세계 공산주의 프로젝트’는 이렇듯 갈가리 찢겼다. 두 번째 전선에서도 결국, 미국·소련·중국의 지정학적 경쟁 때문에 민간인들만 무참히 희생되거나 학살되었다.

세 번째 전선(1975년~1990년)은 레바논과 이란, 아프가니스탄에서 성립했다. 저자는 레바논 내전, 이란 혁명,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의 면밀히 살펴 어떤 국내적·국제적 요인이 다시 수백만 명의 죽음을 초래하는 새로운 폭력의 물결을 야기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세 번째 전선의 이 충돌들은 자본주의 근대화와 사회주의 근대화가 약속한 미래를 모두 철저히 거부하는 ‘대종파 반란’이다. 이 반란을 주도한 새로운 세대의 전사들은 자신의 지지자들을 동원하기 위해 이제 이념이 아니라 인종적·종교적 정체성을 전면에 내걸었다. 미국과 소련은 혁명세력의 이 근본적인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여전히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이념적 동서 갈등의 틀 안에서 상황을 바라봄으로써 폭력의 불길을 더욱 부채질했다. 게다가 이러한 초강대국들의 구태의연한 정세 파악은 냉전 종결 이후에도 지구적 차원에서 지속적인 평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새로운 종류의 정치·군사적 갈등과 인도주의적 위기 속에서 대량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토대를 놓았을 뿐이다.

저자는 세 전선의 역사적 분석을 통해 아시아의 투사들이 초강대국의 단순한 앞잡이가 아니었으며, 초강대국의 정치적 이념을 방어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 싸웠다는 점도 강조한다. 초강대국의 대리전으로만 단순히 해석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냉전 시기 아시아 지역의 여러 전쟁에 대한 구조적 이해를 거시적 안목에서 깔끔하게 제시하는 방대한 저작이다. 폴 토머스 체임벌린 지음/김남섭 옮김/이데아/968쪽/5만 5000원.


아시아 1945-1990 아시아 1945-1990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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