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암컷'과 '어린 놈'이라는 정치인 자질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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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형 편집부 차장

‘암컷’ ‘어린 놈’ ‘노인’…. 요즘 정치판을 보면 떠오르는 철학자가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이다. 근대 철학자 중 니체만큼 파격적인 철학자는 없다. 니체는 가치, 관행, 규범 등 지금까지 우리가 아무런 의심 없이 믿고 따랐던 질서 체계를 의심한다. 우리를 옥죄고 있는 가치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편견의 굴레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니체는 편견의 굴레를 ‘오두막’에 비유했다. 오두막에서 벗어나야 세상 보는 눈이 넓어지고 편협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니체는 권력을 견제해야 하는 기자가 사회를 바라봐야 하는 방향을 제시한다.

기자와 마찬가지로 정치인이 오두막에서 나와 넓은 세상의 얘기를 귀담아 듣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고 갈등과 충돌을 줄여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야 하는 건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만의 오두막에 갇혀 있으면 애초부터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일부 정치인들은 그들의 역할을 잘 모르는 모양이다. 우리가 만든 가치나 질서는 변하는데 그들은 자신의 오두막보다 더 어둡고 깜깜한 동굴에 머물며 귀와 눈을 틀어 막고 있다. 그런 사람을 비아냥거리는 ‘첨단’ 단어가 ‘꼰대’이다.

꼰대 정치인이라고 하면 으레 보수 정당이 떠올라야 하는데 요즘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한국 민주화와 사회 변화에 기여했던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생) 중심의 진보 성향 정치인이 비난의 중심에 서 있다. ‘암컷’ 발언의 최강욱 전 의원과 그런 말을 듣고도 웃고만 있는 더불어민주당 일부 현역들, 한동훈 법무부장관에게 “어린 놈”이라고 윽박지른 송영길 전 대표, 선거철만 되면 노인 비하를 서슴지 않는 주요 인사들. 이들의 말은 성별과 나이에 있어 구시대적 가치 기준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최 전 의원이 내뱉은 ‘암컷이 나와서 설친다’는 발언은 그가 조선시대 국회의원이었는가 의심하게 한다. 여성의 지위 자체가 달라진 지금, 유물이 된 가치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또 송 전 대표가 한 장관에게 던진 “이런 건방진 놈이 어디 있나. 어린 놈이 선배를 능멸한다”는 고함은 ’나이가 어리면 당연히 어른보다 약하고 지식도 짧고 무조건 깍듯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오두막에 사로잡혀 있는 것과 다름 없다. 한 장관과 비슷한 40~50대가 전세계 IT산업을 주도하는 것을 송 전 대표는 알까? 일부는 또 늙었다고 비하했다. 19년 전에는 “60~70대는 투표 안 하고 집에서 쉬셔도 된다” 같은 말이 정치권에서 쏟아졌다. 노인이라면 당연히 나이가 많아 어리숙할 것이라는 편견에 빠져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요즘 60~70대는 ’청년‘으로 불린다.

말에는 그들이 생각하는 모양이 담겨 있다. 한때 진보로 불리며 새로운 변화를 원했던 86세대 정치인의 모습이 기성 정치인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정치인들이 사회 구성원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정치를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요즘 정치판을 보며 혐오감과 실망감을 느꼈을 시민들의 모습이 상상된다. 자신의 정치 생명을 위해 편견의 굴레에 갇힌 정치인을 보니 실망스럽지 못해 안쓰럽다. 요즘 니체가 무척 그립다.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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