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난무하는 신당 바람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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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 열풍, 정치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

여당 이준석 야권 금태섭 등 거론
민주당 비명계 일부도 추진 소문
진보계열에선 선거연합정당 구상
우후죽순 양상에 어지러울 정도

정치 낭인들 자리다툼 전락 우려
과감한 도전으로 개혁 견인하길
갈등·분열 정치 종식이 시대정신
다양성 보장하는 선거제도 돼야

내년 총선을 겨냥한 신당 추진 움직임이 거세다. 다음 달 27일까지 신당을 구체화하겠다고 선언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연합뉴스 내년 총선을 겨냥한 신당 추진 움직임이 거세다. 다음 달 27일까지 신당을 구체화하겠다고 선언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연합뉴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신당 추진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다. 이 대표는 다음 달 27일까지는 신당의 윤곽을 구체화할 것이라고 밝혀 놓은 바다. 국민의힘에선 유승민 전 의원에 대해서도 신당 가능성이 점쳐진다. 야권에선 금태섭 전 의원이 늦어도 다음 달 초까지 신당 창당을 예고했다. 양향자 의원은 지난 8월 이미 한국의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신당을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정의당 일부와 녹색당 등 진보 계열 쪽에선 선거연합정당을 구상 중이고, 특히 용해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개혁연합 신당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신당도 심심찮게 거론된다. 친이낙연계 민주당 원외조직의 신당이 만들어진다는 소문도 있다. 말 그대로 우후죽순이라 어지러울 정도다.

■극히 드문 성공 사례

신당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한국 정치사에서 숱한 신당들이 명멸했지만 성공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14대 총선에서 31석을 가져간 통일국민당, 15대 총선에서 50석을 확보한 자유민주연합, 20대 총선에서 38석을 차지한 국민의당이 있을 뿐이다.

통일국민당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2년 창당했고, 자유민주연합은 1995년 민주자유당에서 떨어져 나와 고(故) 김종필 전 국무총리 주도 아래 만들어진 당이었다. 국민의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과 호남 정치인들이 손잡고 창당했다. 정리하자면, 세 당의 성공은 거물급의 대표 주자, 충청이든 호남이든 탄탄한 지역 기반, 막대한 자금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신당 추진 세력들에게선 그런 요소들을 찾기 어렵다. 우선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나 유승민 전 의원은 여당에서 비주류다. 두 사람에 대해서는 국민의힘 내부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결과 신당으로 도피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런 평가는 야권의 금태섭 전 의원이나 양향자 의원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양 의원의 경우 과거 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냈을 정도로 민주당과 인연이 깊지만,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국면에서 당론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다 갈라섰다. 민주당 원내부대표를 맡았던 금태섭 전 의원도 줄곧 민주당 지도부와 각을 세우다 탈당했다. 송영길, 추미애, 조국 등의 신당설은 명예회복 내지는 복권의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겐 적어도 현재로선 민심을 사로잡을 카리스마가 없다. 과거 대권주자 반열에 있던 정주영이나 김종필, 안철수 같은 무게감을 느끼기 힘들다. 그렇다 보니 창당에 필요한 세력 형성조차 어려워 보인다. 지역 기반이 확고한 것도 아니며, 창당 과정이나 선거 때 들어갈 막대한 자금을 동원할 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지난 6일 ‘선거연합 신당추진 비상대책위원회’에 전권을 위임하고 사퇴한 이정미(가운데) 전 정의당 대표. 연합뉴스 지난 6일 ‘선거연합 신당추진 비상대책위원회’에 전권을 위임하고 사퇴한 이정미(가운데) 전 정의당 대표. 연합뉴스

■폄하? 그럼에도 기대!

이러한 이유들로 신당이 태동하기는 어려우며, 창당하더라도 총선에서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는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이라며 신당 추진 움직임을 폄하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신당이 정치 현실에서 갖는 파괴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속내에는 신당 출현이 자신들에게 타격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국민의힘은 지지 기반인 보수표가 갈라질 것을, 민주당은 비명계의 탈당으로 인한 당 분열을 우려한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신당에 거는 국민적 기대다. 근래 여러 여론조사를 간추려보면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국민이 열에 서너 명 꼴이다.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는 사람들도 대개는 속으로 현실 정치에 환멸을 느낀다. 거대 양당 체제에 대한 실망이 워낙 커서, 확실한 대체재만 있다면 언제든 바꾸고 싶어 한다. 이때의 대체재는 참신하고 능력 있는 신당이 될 수 있다. 국민들은 이왕에 출범할 신당이라면 그 신당이 낡은 정치를 타파하고 새로운 비전의 정치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정치개혁 추동해야

그러나 그 누구가 신당을 만들든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을 반영하지 못하면 신당은 설사 출범하더라도 종국엔 말짱 도루묵이다. 기존 정당들과 차별화된 목표와 가치를 제시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뚜렷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선동이나 바람몰이가 아니라 대안 세력으로서 강단 있는 비전을 보여줄 때 비로소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당 바람을 틈타 정치적 이득을 노리는 야합에 그친다면 얼마 못 가 소멸할 뿐이다.

역대 총선을 앞두고 나타났던 신당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부동산 시장의 떴다방처럼 잠깐 반짝하다 흔적 없이 사라졌다. 말이 신당이지 실은 정치낭인들의 이합집산이었거나, 제법 규모를 갖추었다고는 해도 기존 정당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통일국민당과 자유민주연합, 국민의당이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으나 결국 단명했던 게 좋은 예다.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은 다름 아닌 정치개혁이다. 요컨대, 신당이 성공하려면 과감한 도전으로 정치개혁을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정치 현실에 비춰 지나치게 순진하고 허황한 기대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우후죽순 나타나는 신당들 속에서 옥석을 가릴 능력은 충분히 갖고 있다.

■선거제 퇴행 안 돼

신당에 대한 이런 기대도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바뀌면 만사휴의다. 지난 21대 총선부터 시행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지금 문제다. 연동형은 특정 당이 지역구 당선자를 못 내더라도 정당득표율만큼의 의석수를 비례대표로 채워준다. 준연동형은 채워주는 비례대표 숫자를 일정 부분 제한한다. 거대 정당의 의석 독점을 막고 소수 정당의 원내 진출을 돕자는 취지다. 여야가 이미 소선거구제를 확정한 마당이라 신당을 비롯한 소수정당이 원내에 진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뿐이다. 현행 준연동형에서는 최소정당득표율(3%)만 달성하면 원내 의석 배출이 가능하다.

연동형의 부작용은 위성정당이다. 21대 총선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위성정당을 만들어 전체 비례의석 47석 중 36석을 차지했다. 일종의 편법이자 표심 왜곡이었다. 국민의힘은 과거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다. 병립형은 정당득표율만큼 비례의석을 배분하기 때문에 위성정당을 만들 이유가 없다는 명분에서다. 이는 결국 거대 정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승자독식 구조를 깨뜨리지 말자는 것이다. 표 계산을 하는 민주당도 병립형 쪽으로 살짝 기우는 모양새다.

신당 창립 문턱을 낮추면서 위성정당을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래서 나온다. 민주당 이탄희 의원 등이 준연동형을 유지하는 대신 별도의 위성정당방지법을 제정하자는 게 그 하나다. 이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정치개혁의 우선 과제는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를 종식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신당처럼 소수라도 다양하고 참신한 세력이 제도권 정치에 진입해야 한다. 선거제도가 퇴행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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