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니어쇼어링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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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혁 부산항만공사 국제물류지원부장

10여 년 전 니어쇼어링(Near-shoring)이란 말을 처음 들어본 듯하다. 니어쇼어링이란 생산 기지를 소비지 근거리 또는 소비지 인접국으로 옮기는 것을 뜻한다. 즉 미국으로 수출하는 상품을 먼 중국이 아닌 멕시코와 같은 인근 국가에서 생산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많은 공산품이 부산항을 거쳐 북미, 유럽 등으로 환적되는데 만약 니어쇼어링이 심화되어 탈중국 현상이 일어난다면 이는 부산항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수년 전부터 니어쇼어링의 추세를 파악하기 위해 많은 자료를 뒤져봤으나 마땅히 니어쇼어링 현상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를 찾지 못했다. 최근 미중 무역 갈등에 더해 글로벌 물류 대란까지 겪자 니어쇼어링이 심화될 것이라는 주장이 많아졌다. 부산항 환적 수요가 실제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어 또 한 번 인터넷을 검색해 봤지만, 이번에도 역시 니어쇼어링을 보여 주는 데이터는 찾을 수 없었다.

미국 등 소비국 주변에 생산 기지 이전

중국 수출품 부산항 환적 감소 우려돼

낮은 운임에 운송 거리는 예상 밖 증가

공장 이전,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 가능

그러던 중에 약 2주 전 부산항만공사가 주최한 국제콘퍼런스에서 한 연사가 이례적 주장을 했다. 니어쇼어링 현상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어디에도 없으며, 오히려 그 반대 현상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컨테이너로 수출입되는 화물의 가격에 비해 현재의 컨테이너 해상 운송 비용은 미미한 수준이다. 글로벌 제조 기업들은 여전히 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 등 기존의 생산 기지에서 생산을 이어가고, 앞으로도 그럴 확률이 높다고 했다. 아주 극히 일부의 니어쇼어링 사례를 일반화해서는 안되며, 나아가 니어쇼어링 발생 시 수혜를 입을 수 있는 특정 국가들의 정치적인 희망 사항이 마치 사실인 양 호도되고 있다고도 했다.

조금 놀라운 주장이기도 했지만 내심 반갑기도 했다. 니어쇼어링 현상은 장거리 해상 운송 수요 감소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생산 기지가 집적된 중국의 생산 물량 감소를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부산항으로서는 중국발 환적 물량이 감소할 수 있는 악재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전문가 주장을 180도 뒤엎는 주장이기에 대단히 신선하기도 했지만 그 연사의 솔직함이 오히려 더 놀라웠다. 일반적인 통념으로 자리잡은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공개적인 자리에서 반박하는 것은 대다수 전문가가 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사는 논리정연하고 자신감 있게 본인의 의견을 개진했다.

상기 주장의 강력한 근거는 최근 덴마크 해운조사분석기관에서 발표한 자료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북미 지역 수입 컨테이너 화물 1TEU당 평균 해상 운송 거리는 약 1만 2000㎞로 지난 5년 간 계속 증가했다. 반면 전체 북미 수입 컨테이너 물량 중에서 북미 역내 항로 운송 물량 비중은 5년 연속 감소했다. 즉 니어쇼어링 현상으로 중국에서 생산되어 북미로 수입되던 화물이 인접 국가인 멕시코 생산으로 전환됐다면 장거리 해상 운송 거리는 줄어들고 근거리 역내 운송 비중은 늘어났겠지만 반대의 데이터가 나온 것이다.

데이터를 보면서 필자는 ‘세계의 공장’으로서의 중국의 지위는 생각보다 오랫동안 유지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세청 자료를 역산해서 보면 부산항을 통해 연간 수출입되는 컨테이너 화물 1TEU 속 평균 화물 가격은 대략 6000만 원이다. 그리고 이 컨테이너 화물을 태평양을 건너 북미까지 보내는 해상 운임은 최근 시세로 150만~200만 원 정도다. 즉 아시아에서 생산된 제품이 태평양을 건너는 비용은 컨테이너 속 화물 가격의 평균 약 2%에 불과하다.

최신 유행하는 나이키 운동화로 컨테이너를 가득 채운다면 그 가격이 소매가 기준 최대 5억 원에 달하고 이 경우에는 해상 운임이 컨테이너 속 화물 가격의 0.3%도 차지하지 않는다. 기계 설비는 10억~20억 원을 호가하니 화물 가격이 고가라면 해상 운임은 비용 측면에서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결국 일반 제조업에 있어서 생산 기지로서의 최우선 고려 대상은 저렴한 노동력과 해당 지역의 제조 생태계 조성 여부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 이 부분에서 중국을 대체할 만한 나라는 많지 않다. 미중 갈등이 변수가 될 수 있겠으나, 현재 미국의 입장을 보더라도 최첨단 장비가 아닌 일반 제조업의 중국 생산에 대해서는 큰 제재를 하지 않고 있다.

1956년 4월 컨테이너로 최초 운송을 시도했던 미국의 말콤 맥린이 컨테이너 시범 운송 후 기존 대비 운송 및 하역 비용이 97% 감소했다고 했다. 글로벌 아웃소싱 생산을 가능하게 해 준 건 바로 컨테이너로 인해 해상 운송비가 말도 안되는 수준으로 저렴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저렴함 때문에 니어쇼어링은 아주 제한적이거나 혹은 훨씬 더디게 진행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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