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해사법원은 부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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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세진 대표변호사 부산변호사회 해사법원추진 특별위원장

국내 해사사건 외국에 의존해 해결
연 4000억 원 소송비 해외로 유출
해양 분쟁 전문 처리 법원 신설 시급
국회 계류 중 관련 법안 통과시켜야
대표 해양도시 부산이 설치 최적지

지난 5일 부산에서 열린 ‘국제해사법 콘퍼런스’에서 주요 참석자들이 해사법원 부산 설립을 촉구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지난 5일 부산에서 열린 ‘국제해사법 콘퍼런스’에서 주요 참석자들이 해사법원 부산 설립을 촉구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제75조(분쟁의 해결) 본 계약으로부터 발생되는 모든 분쟁은 런던 해상중재인협회 규칙에 따라 런던에서 중재로 해결한다.’ 이는 국내 선사와 국내 선박 건조 회사 사이에 체결되는 선박건조계약에 일반적으로 명시되는 분쟁 해결에 관한 조항이다. 세계 제일의 조선 능력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조선업체들이 계약의 당사자가 된 경우에도 선박 제조와 관련한 대부분의 법적 분쟁은 영국이나 싱가포르, 중국을 해결지로 정하고 있다. 국내에는 해양 관련 분쟁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해사법원이 없기 때문이다.


해사법원의 부재는 국내 법원 해사사건 담당 재판부의 전문성 부족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사건 처리의 지연, 재판의 신뢰성 부족으로 귀결돼 결국 해사사건을 전문 법원이 있는 다른 나라에서 처리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국내 기업 간 분쟁조차 해외에서 해결하다 보니 우리나라가 영국 등 해외 소재 로펌에 지불하는 법률 서비스 비용만 연간 4000억 원이나 된다.

이 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국내에 해사법원이 하루빨리 설치되어야 한다. 한국은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 세계 1위이며, 세계 2위 환적항이자 세계 7위 컨테이너 항만인 부산항을 보유한 해양강국이다. 하지만 이러한 몸집에 걸맞는 해양지식 산업의 발전은 이루지 못하고 있다. 해양지식 산업 발전의 문을 열어줄 열쇠가 바로 해사법원 신설이다.

대법원이 2020년 9월 사법행정자문회의를 통해 해사법원 설립에 동의하는 의견을 밝힌 바 있어 다행스럽다. 윤석열 대통령도 2022년 대선 당시 해사법원 설치를 약속하였고, 현재 21대 국회에 각각 부산, 서울, 인천, 세종을 해사법원의 설립지로 하는 법안들이 발의되어 있다. 부산 설립안의 경우 안병길 의원(국민의힘)과 박재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각각 발의해 부산은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이 해사법원 설치는 대통령과 대법원, 국회의원들의 동의가 있었으나, 설치 지역에 대해서는 다른 목소리가 나오다 보니 지역 간 갈등과 정쟁의 문제로 비화되어 몇 년째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더욱 답답한 것은 해사법원 신설 문제는 결국 법원조직법 등 법률을 개정해야 되는 입법 사항인데, 여야 간 극심한 정쟁으로 이 문제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어 발의된 각 법안들이 곧 자동 폐기될 처지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연간 4000억 원의 법률 서비스 비용이 해외로 유출되는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특히 1984년부터 해사법원을 설립하여 운용하기 시작한 중국과의 해사 법률 분야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해사법원 설치 문제는 지역 간의 이익 조정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해사법원은 단순히 해사사건을 전문으로 처리하는 법원 정도의 의미만 가진 것이 아니다. 해사법원을 통해 선박금융, 선박보험, 선박중개업 등 고부가가치 해양지식 산업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해사법원 설치는 대한민국의 해양산업 경쟁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중요한 국가적 과제이다. 그리고 해사법원 설치는 해양지식 산업의 일자리 창출 효과도 매우 클 것으로 보이는 만큼 산업과 인력의 수도권 집중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정책의 하나로 활용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70% 이상의 해양산업 관련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고, 해양 관련 대학과 연구기관, 아태해사중재센터, 한국해양진흥공사 등 다양한 해양기관들이 몰려 있는 부산이 해사법원 설립의 최적지라고 하겠다. 게다가 부산은 글로벌 메가 허브 항만인 부산항이 있는 세계적인 해양도시인 데다 해양 실무 자격과 능력을 보유한 법조 인력이 많아 해사법원 설치 지역으로 제격이다.

우리나라의 해양산업 발전을 위해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해사법원 설치 지역을 반드시 부산으로 ‘선택’하여 대한민국 해양산업의 도약을 위해 부산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부산을 중심으로 울산과 경남까지 함께 뭉쳐 정치권에 조속한 입법을 촉구해야 한다. “해사법원은 부산으로”를 외치고 있는 부산·울산·경남 지역 변호사들의 목소리만으로는 국회에 소리가 잘 전달되지 않는 듯하다. 부울경 주민들의 단합된 목소리가 모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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