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 칼럼] 지방 중심주의가 필요하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논설실장

중앙집권적 통치 오랜 세월 이어져
국민 사이에 서울 중심적 사고 만연
수도권 우선주의로 일극체제 심화
비수도권 소멸 위기 나날이 가속화
양쪽 ‘인구 절벽’ 탓 공멸 우려 고조
지역균형발전 촉진해 미래 밝혀야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고향으로 내려갔어요.”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다. 출연자들은 서울 토박이든 지방 출신이든 예사로 이렇게 표현한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는 공통적인 언어 습관인 만큼 귀에 거슬리지도 않는다. 비수도권 지역 사람의 일상 대화 역시 TV 화면 속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명색이 국내 제2 대도시이자 글로벌 해양·관광 도시인 부산 시민조차 “서울 올라간다”거나 “부산 내려온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이 같은 관용어 사용은 1392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2년 뒤 한양, 지금의 서울을 도읍지로 정한 이후부터 이곳에서 펼쳐진 중앙집권적 통치가 낳은 말버릇이다. 600여 년간 서울을 우러러본 가치관이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격언이 숭상될 정도로 숙명적인 민족 유전자로 체화된 까닭일 테다.

한국학의 거장으로 꼽힌 고 김열규(1932~2013) 서강대 명예교수는 사회에 만연한 ‘상경하향’(上京下鄕) 관념을 질타한 바 있다. 왕조시대도 아닌데, 지역민까지 서울만 높은 중심지로 생각해 고약한 지역 차별성을 보인다는 게다. 자신이 살아가는 고장과 부모가 계신 고향을 낮은 변방이 아니라 서울보다 높은 곳, 중심으로 여기는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서울 간다” “부산 간다” “부모님 댁에 올라간다”고 말하며 서울 위주 사고방식을 버리라는 주문이었다.

그럼에도 서울 중심주의는 완화되기는커녕 인근 인천과 경기를 포함한 수도권 제일주의로 확산해 이 지역 일극체제를 가속화해 왔다. 2020년을 기해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 땅에 살기 시작해 매년 그 비중이 증가 추세임을 보여주는 통계는 수도권 일극화의 단적인 예다. 이를 부추기는 과도한 수도권 집중화는 지난해 매출 기준 국내 1000대 기업 중 수도권 업체가 75%인 749개사에 달하는 데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 상장기업의 72%, 근로자와 벤처기업의 각각 60%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편중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수도권이 경제 외에도 정치, 사회, 문화, 의료 등 전 분야에 걸쳐 모든 걸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비대해지는 과정에서 지방 멸시 풍조까지 생겨나 문제다. 오죽하면 경기도 농촌 주민마저 부산을 ‘촌’으로 취급할까. 수도권 사람이 더욱 열악한 지방 중소도시를 여행할 때 교통·편의 시설이 엉망이라고 불평하기 일쑤란다. 그래놓고도 정작 비수도권의 인프라 구축과 정주환경 개선을 위한 정부 지원을 촉구하는 호소를 외면하는 일이 흔하다. 심지어 “시골에 무슨 필요가 있느냐”며 싸늘하게 군다. 정말로 뇌꼴스럽고 이율배반적인 태도다.

비수도권은 수도권 중심주의와 수도권 일극체제가 공고해질수록 황폐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역 경기 침체로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는 청년층 유출과 인구 감소 탓에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가파른 인구 고령화 때문에 노동력을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하지 않으면 경제를 지탱하기 힘든 농어촌의 경우 공동화가 심해 소멸 위기에 빠진 곳이 속출하는 실정이다.

내년 4·10 총선을 앞둔, 현행 인구수 기준 소선거구 제도도 벼랑 끝에 내몰린 비수도권의 암담한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수도권에는 1개 기초자치시가 인구 폭증에 힘입어 2~4개 선거구로 나뉜 데가 많다. 반면 비수도권은 인구가 급감하는 바람에 지역 정서와 특성이 다른 3~6개 시·군이 1개 선거구로 묶여 서울보다 훨씬 넓은 곳이 늘어나는 추세다. 당선자의 출신지가 아닌 다른 시·군 주민은 대변자가 없어 더더욱 소외된다는 불만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 심화는 역사의 후퇴와 사회 분열을 부르는 수도권·지방 간 갈등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한때 사회문제가 된 영호남 갈등이 옅어진 대신 수도권·지방 간 지역갈등이 깊어지는 형국이라 해소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더욱이 수도권·비수도권 간 불균형 현상은 국가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인구 절벽’의 주범이다. 아이 낳을 젊은 층이 태부족한 게 비수도권의 엄연한 현실이다. 수도권에는 취업난과 부담스러운 집값, 고물가에 짓눌려 연애·결혼·출산에 엄두를 못 내는 3포세대가 숱하다. 이들 중 취직, 내 집 마련, 취미, 희망, 인간관계 등 더 많은 것을 포기하는 N포세대가 늘고 있다. 지난해 기준 한국 합계출산율이 0.78명, 서울 0.59명에 불과해 국가소멸 위기론이 불거진 이유다.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수도권 과밀화의 폐해를 없애고 비수도권에 활기를 불어넣어 공멸을 피할 수 있는 지역균형발전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 국민 인식에 지방 중심주의, 비수도권 우선주의가 요구된다. 진정한 지방시대를 열려면 재정분권 확립 등 실효적인 정책 마련과 적극적 실천이 중요해서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