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괴물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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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괴물’은 슬프고도 무서운 영화다. 아이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혹은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몰랐다’는 말로 용서받을 수 있을까? 아니 실은 영원히 모른 채 끝나버릴 것만 같기에 더 무섭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진 않았는지, 내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진 않았는지,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을 끝끝내 돌아보게 만드는 이 영화는, 결국 나도 누군가에게 괴물이었음을 실토하게 만든다.

영화 ‘괴물’은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와 건물을 집어삼킨 불길을 보여주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때 무언가를 빙빙 돌리며 걷던 한 아이가 멀찍이 떨어져서 무심히 화재 현장을 바라본다. 모든 것을 불태우는 화재는 모두를 소란스럽게 만들지만, 왠지 아이는 홀로 태연해 보인다. 그리고 곧 알게 된다. 걷잡을 수 없는 이 화재가 누군가의 일상을 불태우는 동시에 하나의 사건 속으로 진입시키는 장치임을 말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괴물'

엄마, 선생님, 아이 시선으로

하나의 사건 다르게 풀어내

'누가 진짜 괴물인가' 질문 던져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 ‘미나토’를 키우는 ‘사오리’는 아들이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다. 그러던 어느 날 미나토의 몸에 생긴 상처를 발견한 사오리는 그 상처가 담임 선생 ‘호리’의 폭력으로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오리는 곧장 학교로 가 항의를 해보지만 교장은 소름 끼치도록 무표정한 얼굴로 기계적인 사과만 반복하고, 담임 호리는 억울한 누명이라고 항변할 뿐 문제를 해결하려 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이후 엄마의 노력으로 호리는 학교에서 해고되고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앞선 화재 장면을 한 번 더 보여주며, 화재가 있던 날 호리가 연인과 집으로 향하고 있었고, 그때 반 아이들을 만났으며, 바로 그 날부터 일상에 균열이 일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호리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앞서 사오리가 보고 들은 것과 전혀 다르다. 그리고 정말 호리가 미나토에게 폭력을 가했는지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처럼 영화는 세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엄마의 시선과 선생의 시선에 이어서 아이들의 세계, 아이들이 감추고 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프닝에서 화재 현장을 바라보던 아이는 ‘요리’였다. 놀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가 있는 집. 집도 학교도 요리를 보호하지 못한다. 그런 요리를 이해하고 위로를 건네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미나토다. 숲속 막다른 길에 멈춰선 오래된 기차를 아지트 삼아 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비로소 웃는다. 그리고 아이들이 그토록 되뇌었던 “괴물은 누구게?”의 정체를 알게 되는 순간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무너지고 만다.

바로 여기서 영화 속 인물들이 조금씩은 괴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를 고통으로 밀어 넣는 엄마, 소문을 진실인 양 내뱉는 사람들, 제 안위를 위해 연인을 버리는 여자,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들, 폭력을 저지르는 아버지.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해를 끼쳤음을 그들을 통해 확인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괴물의 얼굴을 지녔다고 생각했던 학교 교장이다. 학교를 지키기 위해 손녀의 죽음까지 이용하던 교장은 미나토의 고통을 이해하고 위로를 건네는 유일한 존재로 등장한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적당히 거리를 두며 어떤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연출을 선보인다. 결정과 선택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 뒤로 아이들이 숲속을 자유롭게 달린다. 유독 반짝거리는 이 엔딩은 보는 이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허나 확실한 건 아이들이 웃고 있지만, 괴물들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우리는 웃을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슬프고도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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