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문과침공’, 당분간은 참으라고?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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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수능 문·이과 과목 표준점수 격차 더 벌어져
이과 수험생 절반 “문과 계열 교차지원 의사 있다”
교육부 “2028학년도 입시 때부터 선택과목 폐지”
“3년간 문과 수험생 피해는 방치” 비난 여론 거세 



수능이 치러진 지난 11월 16일 부산 동래구 사직여고에서 한 학부모가 꽃다발을 들고 자녀가 시험장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부산일보DB 수능이 치러진 지난 11월 16일 부산 동래구 사직여고에서 한 학부모가 꽃다발을 들고 자녀가 시험장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부산일보DB

■더 심해진 문·이과 격차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역시 이른바 ‘문과침공’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더 심해졌다. 문과침공은 이과 과목을 공부한 수험생들이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얻고 문과 계열 학과에 지원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수능이 문·이과 통합형(말이 통합형이지 실제론 선택과목을 둔 불완전 통합형이다)으로 치러진 2021년부터 특히 더 두드러졌다.

문과침공의 원인은 선택과목 사이 난이도 조정 실패다. 문과 수험생이 주로 고르는 수학 과목은 ‘확률과 통계’다. 이과 수험생은 미적분·기하를 대부분 선택한다. 그런데 ‘확률과 통계’와 미적분·기하 사이 난이도 조정이 제대로 안 될 경우 원점수가 같아도 표준점수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통상 더 어렵다고 판단되는 미적분·기하에 점수를 더 얹어 환산하기 때문이다. ‘확률과 통계’를 고른 A 수험생과 미적분·기하를 고른 B 수험생 모두 한 문제도 안 틀려도 표준점수에서 B 수험생이 더 높게 나오는 이유다. 그 차이가 2021년에는 1점, 2022년엔 5점이었는데, 올해에는 무려 11점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 합격을 위해 소수점까지 다투는 형편에서 11점은 어마어마한 차이다. 실제로 올해 수능에서 수학 1등급은 이과 수험생이 97%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이과 수험생들이 문과 계열로 지원한다면, 처음부터 11점을 깎이고 들어가는 문과 학생들로서는 패닉 상태에 빠질 법도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올해 문과침공이 사상 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서울 종로학원에 따르면 이과 수험생 중 절반은 대학의 인문사회 계열 학과에 지원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정 모르는 주장들

“문과 수험생들도 미적분을 공부해서 시험을 치르면 되지 않냐”는 사람도 있다. 물정 모르는 소리다. 2015년부터 고등학교에서 문·이과 구분을 없애기는 했다. 형식적으로는 문과를 지망해도 미적분을 공부할 수는 있지만 학교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문과나 이과로 진로를 정한 다음에는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이 사실상 한정된다. 문과 학생이 이과 과목을 공부하려면 결국은 사설 학원 등에서 따로 공부해야 돼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여하튼 억울하면 문과 수험생도 이과 계열 학과에 지원하라고? 역시 물정 모르는 소리다. 이론적으로는 문과 수험생의 이과 계열 지원이 가능하다. 하지만 주요 대학들은 의학·이공 계열 지원 시 미적분 등 이과 과목 응시를 명시해 놓았고, 선택과목 제한을 없앤 대학이라도 이과 과목에 가산점을 주는 곳이 많다. 반면에, 인문사회 등 문과 계열 학과에 진입 장벽을 두는 대학은 거의 없다. 이런 차별적 조건 때문에 이과 수험생들이 높은 수학 표준점수를 무기 삼아 문과 계열 학과에 지원하는 문과침공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대학 황폐화 우려

문과침공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의대를 희망하나 충분한 점수를 받지 못한 수험생이 마치 보험 들듯 일단은 국문과로 진학한다? 그 수험생이 대학 생활을 잘할 리 없다. 십중팔구 재수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혹 그러지 않는다 해도, 적성에 맞지 않은 공부를 억지로 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해당 학과에 적응하지 못해 학업 성취도가 크게 떨어질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어느 대학교에서 문과 계열 학과에 들어온 이과 출신 학생들의 평균학점을 조사했더니 문과 출신 학생들의 평균학점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근래 문과 계열 학과 대학생들의 중간 이탈이 급증하고 있다. 입학만 해 놓고는 학교에 다니지 않거나, 1~2년 다니다 자퇴하는 것이다.

부작용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문학 등 문과 계열 공부를 진정으로 하고 싶은 수험생들은 문과침공으로 인해 처음부터 기회를 빼앗긴다. 잘못된 제도의 피해자가 되는 셈이다. 이런 일이 누적되면 문과 계열 학과, 특히 사회 유지의 근간이 되는 인문사회 관련 학문의 황폐화 또는 붕괴 현상이 벌어질 수 도 있다. 이게 지금 우리 대학이 처한 현실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28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 확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28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 확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장의 대책을 내놓으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지난 1월 주요 대학 입학처장 간담회에서 “수능 과목으로 입시 불리함 없게 개선 방향을 찾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올해 수능에서 보듯이 그 말은 빈말이 됐다. 원래 통합 수능은 융합형 인재를 기르자는 취지에서 2021년 수능부터 시작됐다. 학생들이 적성에 맞게끔 부담이 가지 않는 방향으로 출제한다고 약속했지만 허울에 불과했다.

문과라는 이유만으로 수능과 대입 전형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현실은 개인에도 사회에도 큰 손실이다. 어떤 식으로든 대책을 시급히 강구해야 한다. 2021·2022년 수능 때 문과침공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교육부와 대학들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기는 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움직임은 없었다. 그러다 나온 것이 지난 27일 교육부가 발표한 ‘2028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안’이다. 개편안에 따르면 올해 중학교 2학년들이 치를 2027년 수능은 선택과목 없이 공통과목만 치르게 된다. 수학도 문·이과 수험생이 같은 과목을 치른다.

수능 개편의 방향은 옳다고 하겠으나, 개편안이 시행되기까지 기존 방식대로 수능을 치러야 하는 수험생들은 어쩔 것인가. 3년 동안은 그대로 방치하겠다는 이야기 아닌가. 개편안은 현행 수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교육부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에 나왔을 테다. 그렇다면 보완책이라도 당장 내놓는 게 옳다. 수험생 절반을 애꿎은 희생양으로 만들면서까지 잘못된 정책을 유지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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