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는 글’ 공보물 외면… ‘보이는 글’에 갇힌 풀뿌리 민주주의 [‘선거 불편’ 이제 그만]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 뒷전 밀린 시각장애인 권리

유권자 위한 점자형 공보물 제작
광역·기초의원 의무사항 아니야
제작 비용 전액 보전도 무용지물
부산 출마자 열 명 중 아홉이 무시
장애인 단체 “의무화 등 대책 필요”

6·3 지방선거 시각장애인용 투표안내문. 6·3 지방선거 시각장애인용 투표안내문.

6·3 지방선거에 출마한 부산 지역 시·군·구의원 후보 중 시각장애인용 점자형 공보물을 제작한 후보는 전체 후보 중 11%에 그치는 것으로 집계됐다. 시민들의 삶과 밀접한 풀뿌리 의회 의원을 뽑는 때에도 시각장애인들은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장애인들의 참정권 보장을 위한 더욱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2일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3일 열리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부산 광역시의원괴 구·군의원 후보자 중 시각장애인용 점자형 공보물을 제작한 후보자는 44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후보자는 353명으로 점자형 공보물 제출률은 12.5%에 그쳤다. 시의원 후보자의 경우 전체 93명 중 17명(18.3%), 구·군의원은 후보자 260명 중 27명(10.4%)만 제출했다. 점자형 공보물은 후보자의 병역·전과 등 인적 사항과 정책·공약 등을 시각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점역화된 문서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부산 지역 시각 장애인 유권자 수는 1만 70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점자 공보물을 제출한 후보자가 적은 것은 이번 지방선거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2022년 치러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부산 시·군·구의원 후보자 328명 가운데 37명(11.3%)만 점자 공보물을 제작해 선관위에 제출했다.

광역·기초 의회 출마자 중 점자형 공보물을 제출하는 후보자가 소수에 그치면서 시각장애인 유권자들은 후보자의 정책과 공약은 물론 이름조차 알지 못한 채 투표장에 가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부산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 소속인 김진 감사는 “후보자가 누구인지, 어떤 공약이 있는지도 모른 채 투표해야 하다 보니 그냥 기권할까 싶은 생각도 든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 감사가 살고 있는 부산 동구에는 시의원 후보 2명(제2선거구), 구의원 후보 5명(나선거구)이 출마했다. 하지만 이들 후보 중 점자형 공보물을 제작한 후보는 시의원 1명, 구의원 1명 총 2명뿐이다. 그는 “시의원이나 구의원은 방송에 나오는 경우도 드물기 때문에 점자형 공보물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부 광역·기초의원 후보자들이 점자형 공보물을 제작하고 있지만, 현행법상 제약은 여전한 상황이다. 점자형 공보물은 글자를 풀어 표기하는 점자 기호의 특성상 일반 공보물보다 훨씬 많은 면수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행 공직선거법은 점자형 면수는 일반 공보물의 2배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점자형 공보물의 경우 일반 활자보다 3~4배 가량 공간을 차지해 일부 후보들은 공약 내용을 빼야하는 경우도 있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월 점자형 공보물의 면수 제한을 완전히 폐지하라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권고했다.

점자형 공보물 제작이 법적 의무가 아닌 것 역시 후보자들의 참여가 저조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대통령 △국회의원 △광역자치단체장 △시·도 교육감 △기초자치단체장 후보들은 점자형 공보물 제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부산시선관위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부산시장 △부산시교육감 △구청장·군수에 출마한 후보 45명은 모두 점자형 공보물을 제출했다.

점자형 공보물 제작에 대한 후보자들의 정보 역시 부족한 상황이다. 점자형 공보물은 제작에 후보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없다. 후보자가 사비로 부산점자도서관 등 기관에 제작을 의뢰하면 사후에 정부나 각 지자체가 후보자 예외 없이 전액 보전해주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후보는 이런 사실을 모르거나, 바쁘다는 등의 이유로 점자형 공보물 제작을 외면하고 있다. 부산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입후보 설명회 등에서 점자형 공보물 제작과 관련된 사항을 충분히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 단체 등에서는 점자형 공보물 전면 의무화 등 법률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부산점자도서관 관계자는 “선거에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 정보 격차가 발생하는 게 현실”이라며 “점자형 공보물 제작 확대나 USB 저장 매체를 활용한 음성 파일 제공 의무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끝-

글·사진=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