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이재명 대표 피습… '증오·확증편향 정치' 멈추는 계기 되길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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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일 오전 부산 강서구 가덕신공항 부지를 둘러본 뒤 왼쪽 목 부위 피습을 당해 바닥에 누워 있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일 오전 부산 강서구 가덕신공항 부지를 둘러본 뒤 왼쪽 목 부위 피습을 당해 바닥에 누워 있다.연합뉴스

한국 정치가 아프다. 1월 2일 부산 가덕도 대항전망대를 방문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으로 불과 3개월 앞둔 4·10 총선 일정이 비틀어지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가덕도는 조선시대 일본 왜군과 대척하는 최전방 군사기지였다. 한반도에서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봉수대의 출발점이 가덕도 연대봉이었다. ‘말기암’ 증세에 이른 한국 정치의 위기를 알리는 봉화가 새해 벽두 가덕도에서 오른 것이다.

특히,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평범한 일반인인 60대 김 모 씨가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진술하면서 더욱 충격적이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폭력과 협박이 아니라, 투표로 해결하는 시스템이다. 한국 민주주의 성지인 부산에서 그런 불미스러운 정치 테러가 벌어졌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증오와 혐오에 맞서기 위한 국가적인 지혜가 절실하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2006년 5월 20일 오후 서울 신촌에서 유세도중 지 모 씨에게 피습당한 뒤 상처 부위를 감싸고 있다. 연합뉴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2006년 5월 20일 오후 서울 신촌에서 유세도중 지 모 씨에게 피습당한 뒤 상처 부위를 감싸고 있다. 연합뉴스

■조직에서 개인 정치 테러로

광복 직후인 1945년 12월 우파 정치인 송진우, 1947년 중도좌파 여운형 암살 사건이 일어났다. 여운형은 해방 후 2년 동안 무려 10차례나 피습됐다. 같은 해 12월엔 한국민주당 장덕수, 1949년 6월엔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가 저격당해 숨졌다. 1969년에는 김영삼 신민당 원내총무 승용차 초산 테러 사건, 1973년에는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 주도로 김대중 납치 사건이 일어났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7년 4월엔 안기부가 배후 조종한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테러인 ‘용팔이 사건’이 있었다. 과거 대부분의 정치 테러는 국가 권력이나 반대파에 의한 조직적인 범죄 위주였다.

2000년대 들어서는 개인의 정치 테러가 일상화되고 있다. 2006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지방선거 지원 유세 도중 괴한에게 공격당해 얼굴에 60바늘을 꿰매는 봉합 수술까지 받았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2022년 서울 선거운동 과정에서 70대 유튜버로부터 쇠망치로 머리를 가격당했다.

물론, 정치인에 대한 테러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은 46명의 대통령 중 4명이 암살되고, 6명에 대한 테러 공격이 있었다. 일본도 최근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하여 근현대사에서 많은 정치인이 폭력과 암살로 희생되었다. 다만, 이번 이 대표에 대한 테러 공격은 너무도 평범한 일반인이 명백한 살인 의도를 가지고 저지른 정치 테러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해외 언론에서 본 이재명 피습과 한국 정치사회

이 대표 피습 사건에 대해 해외 언론들은 ‘정치의 극심한 양극화 현상’을 원인으로 설명하고 있다. 미국 공영라디오방송 NPR은 “아시아의 주요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경고 신호”라면서 “한국이 극단적인 시각을 가진 소외된 외톨이들에 의한 범죄가 증가하고 있고,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초당적 협력이 실종되면서 분노의 정치가 확산된 탓”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CNN 방송은 “한국 정치는 최근 몇 년 동안 보수와 진보 진영 간 극심한 양극화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갈수록 양극화되는 한국 정치 분위기에서 4월 총선이 다가오면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과 이 대표 지지자들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물론 사상 초유의 의사당 점령 사태가 발생한 미국, 극단적인 정치 세력이 잇따라 집권에 성공하는 유럽, 중동 등에서도 정치 양극화가 심각하지만, 이들마저도 한국의 정치 상황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보고 있다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극단주의 정치 심화시킨 확증편향

해외 언론에서도 지적한 한국 사회의 확증편향 심화 현상은 ‘무조건 내 편은 옳고, 네 편은 틀렸다’로 귀결된다. 확증편향(원래 갖고 있던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경향)은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유사한 정보만 취득하고 그 외는 무시하는 현상에 대한 심리학적 용어다. 이런 편향성은 의사 결정 시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수집하는 단계부터 나타난다. 사실 여부는 상관이 없는 상황이다. ‘자기 생각에 대한 강한 확신’ ‘타인에 대한 부정’ ‘부족주의와 흑백논리’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임석준 교수는 “정치 분야에서 개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시각과 일치하는 특정 견해의 미디어를 시청하면 알고리즘이 이와 유사한 정보를 계속 보내주기 때문에 확증편향 현상이 더욱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임 교수는 “일반인인 피의자 김 씨를 테러리스트로 키운 것은 정치 유튜브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자기와 견해가 맞지 않은 정치인은 제거 대상으로 생각하는 확증편향 현상이 극렬하게 드러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부산 방문 일정 중 흉기에 피습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일 서울 용산구 노들섬 헬기장에서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 방문 일정 중 흉기에 피습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일 서울 용산구 노들섬 헬기장에서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유튜브·SNS가 확증편향 부추겨

이 대표를 피습한 피의자 김 씨의 경우 ‘평소 정치 유튜브를 크게 틀고, 즐겨 봤으며 정치권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을 쏟아냈다’는 주변인 증언이 나올 정도로 유튜브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몇 편의 동영상을 클릭하면 내부 알고리즘으로 비슷한 내용의 콘텐츠만 자동으로 추천하면서 확증편향의 부작용을 심화시킨다. 가짜뉴스도 이를 기반으로 더욱 퍼진다. 내 입맛에 맞는 영상만 골라서 보게 되면서 정치성향은 더욱 한쪽으로 쏠리게 된다.

사건 이후에도 일부 유튜버는 허위정보를 발산하거나, 선동적으로 콘텐츠를 만들면서 확증편향을 심화시키고 있다. 10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한 유튜버는 ‘이 대표가 칼에 찔린 것이 아닌, 나무젓가락이나 나무칼 등에 찔린 것. 자작극’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밴드 하나 붙이면 치료 완료’ ‘재판을 미루려는 이재명의 꼼수’라며 상대 진영을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일삼고 있다. 반대편에서도 “윤석열과 김건희가 사주해 벌어진 일” “악마들이 의료진을 매수할지 모르니 우리가 지켜야 한다” “테러를 의도적으로 방조했다” 등등 가짜뉴스가 유튜브를 통해 퍼지고 있다.


■증오 조장하는 정치권과 언론

이런 상황에도 진영 논리에 매몰된 정치권은 오히려 사태를 키우는 모양새다. 이경 전 민주당 부대변인은 자신의 SNS에 “대통령이 민생은 뒷전이고 카르텔, 이념 운운하며 국민 분열을 극대화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 아닌가”라고 한 것도 대표적이다. 피폐해진 한국의 정치가 확증편향을 키울 불쏘시개만 찾아 발언 수위를 연일 높이고 있고, 이는 결국 정치 테러에 자양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상대 진영은 무조건 타도의 대상으로 여긴다.

21대 국회는 유튜브 콘텐츠 규제 관련 법안이 10개나 발의됐지만 정쟁에 파묻혀 논의조차 진행하지 못했다. ‘초당적 협력과 협치 상실’이라는 지적처럼 정치권은 통합과 갈등 해소보다는 권력 쟁취 목적으로 확증편향만 부채질하는 셈이다. 그래서 정치 테러는 ‘증오와 분노의 정치를 양산한 정치권이 원죄’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게 나오는 이유다.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차재권 교수는 “원론적으로 극단적인 진영 대립의 정치가 결국 이런 불상사로 귀결되었다”면서 “정치인들이 정치 혐오를 양산하는 원인을 제공했고, 옐로 저널리즘으로 특징되는 일부 언론의 부정적인 역할도 무시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2023년 3월 7일 서울 신촌 유플렉스 앞 광장에서 선거운동을 하다 유튜버 A(70) 씨로부터 가격을 당했다. 한복에 검은색 벙거지 차림의 A씨가 송 대표에게 달려와 송 대표의 머리를 망치로 여러 차례 내리쳤다. 사진은 현장에서 제압당한 A씨.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2023년 3월 7일 서울 신촌 유플렉스 앞 광장에서 선거운동을 하다 유튜버 A(70) 씨로부터 가격을 당했다. 한복에 검은색 벙거지 차림의 A씨가 송 대표에게 달려와 송 대표의 머리를 망치로 여러 차례 내리쳤다. 사진은 현장에서 제압당한 A씨. 연합뉴스

■확증편향이 극단 사회 부채질

잘못된 정보와 신념이 SNS를 타고 전파되면서 사회 불안과 균열을 확대한다. 한국사회 및 성격심리학회는 ‘2024년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사회심리 현상’으로 확증편향을 선정했다고 4일 밝혔다. 이러한 확증편향은 사회적 불안과 갈등을 심화시키고, 결국 이 대표 피습과 같은 평범하지만 고립된 개인에 의한 정치 테러 등 극단적인 행위가 나타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동의대 신문방송학과 원숙경 박사는 “사회가 정치적으로 양극화될수록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미디어 콘텐츠를 중심으로 응축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번과 유사한 테러와 사회적 분열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원 박사는 “이 대표 테러 사건을 조명하기 이전에 가짜뉴스의 급속한 확산은 다른 형태의 테러”라고 덧붙였다.


부산 방문 도중 습격당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입원 중인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주변에 경찰이 배치돼 있다. 연합뉴스 부산 방문 도중 습격당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입원 중인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주변에 경찰이 배치돼 있다. 연합뉴스

■국내 분열 목적의 외부 테러도 우려

4·10 총선 등 극렬한 국내 정치 대립은 자칫 외부 세력이 개입할 위험성을 한층 키울 수 있다. 상존하는 위험은 ‘2024년 전쟁 위기론’을 불 지피고 있는 북한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남한 사회 내부의 균열을 목적으로 ‘내부 정치 테러’를 가장한 ‘공작 테러’를 저지를 위험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2017년 말레이시아 국제공항에서 북한 김일성의 손자이자 김정일의 장손,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의 독극물 테러 사건이 국내에서 발생하지 못하리라는 보장도 없는 상황이다. 당시 북한은 ‘한국 정부가 북한 국민을 테러한 사건’이라고 주장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북한이 총선 국면에서 정교하게 설계해 실행한 ‘공작 테러’를 국내 정치 테러로 전가할 경우 한국 사회 내부에 극심한 분열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 북한의 남파 간첩이 독약앰플을 소지하거나, 해외에서 한국 외교관이나 선교사가 독극물에 의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것도 이런 우려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전망 및 대책은

4월 10일 총선을 앞두고 선거전이 과열되면 진영 간 극단적인 대립은 더욱 첨예해질 수밖에 없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무슨 일이 벌어질지 매우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무엇보다 정치권이 앞장서서 풍토를 바꿔야 한다. 갈등과 혐오로 팬덤 정치를 지향하면, 결국 스스로도 증오 메커니즘에 함몰되기 때문이다. 동아대 임석준 교수는 “총선이 시작되는 시점에 터진 정치 테러는 여야 정치권이 서로를 증오하는 정치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필요성을 제기했다”면서 “타협과 상생의 정치가 간절하다”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서 이번 사태를 극단적 정치 문화를 중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일침이다.

동의대 원숙경 박사는 “객관적 판단보다는 정치적 신념을 앞세워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군중의 심리를 이용한 SNS와 미디어의 ‘클릭 장사’도 이번 기회에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해 벽두 가덕도에서 올린 ‘한국 정치가 아프다’라는 봉화가 대한민국 사회에 경각심을 줄지, 아니면 국가 분열이라는 국난으로 전락할지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국가와 사회 전체에 달려 있다. 분명한 사실은 화합과 상생이란 국가적 과제를 구성원 모두가 외면할 경우 그 후폭풍은 온전히 국민 모두가 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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