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함께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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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알렉산더 페인 '바튼 아카데미'
서먹한 이들이 친해지는 과정 그려
따뜻하면서도 냉철한 묘사 특징

영화 ‘바튼 아카데미’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영화 ‘바튼 아카데미’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지금껏 믿어온 신념이나 의지는 쉽게 바꿀 수 없다. 누구나 평생 내가 보고 느낀 것을 정답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타인과 대화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세상과 두꺼운 벽을 쌓아간다. 점점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되고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못한 채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1970년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사립고등학교 바튼 아카데미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폴’이 그렇다.

폴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상사는 낙제를 받은 학생의 점수를 올려주자고 폴을 회유하지만, 폴은 자신이 배운 방식과 신념을 굳히지 않는다. 올곧은 그의 모습에서 폴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바른말을 하지만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학생들에게 고대 로마 격언을 인용해 면박을 주거나 동료들과 말 섞기를 거부하고, 휴가를 몇 시간 앞두고 수업 진도를 나가는데 누가 좋아하겠는가. 모두가 그를 싫어하지만 폴은 마치 그가 세상을 따돌리는 듯 여유롭게 행동한다.

‘바튼 아카데미’는 1970년 크리스마스에서 새해로 이어지는 연휴를 맞아 학생과 교사들이 휴가를 떠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모두 들떠 있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학생 앵거스와 아들의 죽음 이후 슬픔에 빠진 급식 담당자 메리, 그리고 학생을 지도하고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남게 된 폴까지 평소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3명이 2주간 시간을 보내게 된다. 나이대도 성별도 살아온 생활도 전혀 다른 그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접점이라고는 없어 보였던 그들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가 외롭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물론 폴은 외로움마저 선택인 척 말하지만 그것이 곧 거짓임이 들통나며, 메리는 아들의 죽고 난 후 스스로를 외롭게 만드는 것으로 자신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가족의 곁에 있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힘든 앵거스까지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져 올수록 외로움은 더 커진다. 결국 학교에서의 생활을 답답해하던 앵거스가 작은 소동을 일으키면서 어색했던 폴과의 관계도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앵거스가 그토록 원하던 보스턴으로의 여행을 승낙하고 만다. 이제 영화는 눈으로 뒤덮인 바튼 아카데미를 벗어나 보스턴으로 이동한다.

폴과 앵거스는 함께 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스케이트를 타고, 박물관에 들러 현장학습을 하는 등 마치 아버지와 아들로 보인다. 또한 영화 후반부 폴과 메리, 앵거스가 체리 주빌레를 만들거나, 새해를 맞아 폭죽을 터뜨리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여느 가족의 모습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서로에게 조용히 스며들어 가는 장면들은 감동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그러나 이 영화를 단순히 가족극이나 성장영화로만 설명할 수 없다. 돈 많은 학생들이 대부분인 바튼 아카데미에 입학했지만 학비가 없어 대학에 가지 못하고 군에 입대한 메리의 아들 커티스, 폴의 논문을 표절한 부자 친구, 학교에 기부금을 준다는 이유로 낙제점수를 바꿔 달라고 당당히 요청하는 모습은 불편하지만 눈 돌릴 수 없는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은 특유의 유머를 가미하면서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한다. 따뜻하면서도 냉철한 시선으로 인물을 따라간다. 또한 영화는 70년대 감성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메사추세츠에서의 로케이션 촬영, 색감을 통해 완성된 화면의 질감, 인물들의 의상까지 70년대를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 느껴진다. 60-70년대 주로 들었던 음악도 스토리를 풍부하게 풀어내는 데 힘을 싣는다. 마지막으로 고집스러운 중년 남성 폴을 연기한 폴 지아마티의 연기는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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