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관점에서 일본 전국시대를 읽다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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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떻게 난세의 승자가 되었는가 / 아베 류타로

대항해시대 속 전국시대 재조명
수많은 '이에야스' 관련 서적 중
짧고도 흥미진진한 전개 '강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떻게 난세의 승자가 되었는가> 표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떻게 난세의 승자가 되었는가> 표지.

버텨야 할 게 많은 시절이다. 높은 대출이자를 버티고, 높은 물가를 버텨야 한다. 버티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법한 인물 중 하나가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 회장도 이에야스에게서 인내를 배웠다고 했다. 울지 않는 두견새를 대하는 일본 전국시대 3대 영웅의 이야기(실제 일화라기보다는 후세에 지어낸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듯 하다) 중 많은 이가 주목하는 것 또한 이에야스의 부분이다. 오다 노부나가의 경우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버리고(殺してしまえ),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어떻게든 울게 만들지만(鳴かせてみせよう), 이에야스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鳴くまで待とう).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떻게 난세의 승자가 되었는가>는 마침 인내가 필요하던 차에 눈에 들어온 이에야스에 관한 책이다. 거기에 더해 책에 눈길이 끌린 또 하나의 이유는 저자가 최근 일본 문학계의 차세대 선두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역사소설가, 아베 류타로라는 점이다. 2020년부터 이에야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연작소설 <이에야스>를 집필했고, 현재 해당 시리즈의 8권까지 출간됐다. 출판사의 서평에 따르면, 이 책은 ‘이에야스의 생애를 추적하는 아베의 긴 여정 중 잠시 쉬었다 가기 위해 태어난 쉼표’라고 했다. 어떤 이에겐 글쓰기만큼 어려운 게 없다는데, 어떤 이에겐 책 한 권 쓰는 것이 그저 쉬어가는 과정이라니. 부럽다. 어쨌든 소설 집필과 별개로 이에야스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더하고 싶었는지 궁금했다.

얼마나 쉽게 쓴 책인지는 몰라도, 일단 독자의 입장에선 쉽게 읽힌다. 무엇보다 일본의 전국시대를 세계사 흐름과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일본의 전국시대 지도를 세계로 확장하면, 당시 유럽에선 대항해시대가 한창이었다. 스페인·포르투갈로 대표되는 제국들이 대서양으로 인도양으로 신대륙을 찾아나서던 시기다. 이에야스가 태어난 해(양력 기준 1543년)는 포르투갈이 일본 다네가시마에 철포(화승총)를 들고 온 해이기도 하다.

포르투갈은 철포 판매에 적극적이었다. 철포라는 것이 그것만 달랑 판매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다. 철포 구매자는 화약의 원료인 초석과 탄알의 원료인 납을 계속 구입해야 한다. 마치 프린터를 산 사람이 A4용지와 잉크를 계속 구매해야 하는 것과 같다. 게다가 당시 일본은 전국시대였다. 이만한 판매처가 또 어디 있을까. 천하통일의 기반을 닦은 노부나가는 철포라는 신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노부나가는 초석의 100%, 납의 75% 가량을 해외에서 수입했다. 결국 제국의 이해(利害)를 잘 이해(理解)하고 이를 이용함으로써 전국을 재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국시대를 대항해시대와 연결해 바라보는 점은 신선하다. 다만 그 관점과 이에야스를 재조명하겠다는 책의 또다른 의도가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논다. 대항해시대의 관점에서 전국시대를 논하지만, 정작 당시 정세를 이용한 이는 앞서 말했듯 노부나가 쪽이지 이에야스와는 거리가 멀다. 서로 다른 주제의 두 책을 하나로 엮어놓은 느낌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초상화. 위키미디어 제공 도쿠가와 이에야스 초상화. 위키미디어 제공

사실 이에야스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당연히 야마오카 소이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가장 우선 권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대망>이라는 제목으로 더욱 유명한 책이다. 방대한 분량이 다소 부담스럽다면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그린 만화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일본에서도 야마오카 원작의 내용은 물론 작가의 사상까지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수많은 이에야스 관련 서적 중 이 책이 가지는 경쟁력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212페이지라는 얇은 분량으로 일본 전국시대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과정이 끝까지 흥미진진하다는 점은 이 책이 지닌 최고의 강점이다. 아베 류타로 지음/고선윤 옮김/페이퍼로드/212쪽/1만 78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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