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화해의 핑퐁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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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진 스포츠부 차장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한창이다. 취재 중인 걸 알고리즘이 어떻게 알았는지, 유튜브 추천영상에 ‘이색 탁구 대결’ 같은 콘텐츠가 뜬다. 라켓 대신 냄비뚜껑, 국자를 들고 겨루는 경기를 방송에선 ‘이색·묘기 탁구’로 묘사했지만, 기자에겐 익숙한 장면이다. 학창 시절, 책상을 붙여 큰 테이블 만들고 가운데엔 교과서를 세워 네트로 삼는다. 필통을 라켓 삼아 ‘톡 탁 톡 탁’. 소리를 들은 친구들이 몰려들고, 작은 경기는 어느새 반 전체가 참가하는 리그전으로 바뀐다. 교실과 운동장을 오가며 놀거리가 많았던 그때, 굳이 어설픈 판을 벌일 정도로 ‘탁구’는 친숙한 스포츠였다.

스포츠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은 없어도 몸소 깨달은 장점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연습한 만큼 성과가 나온다. 개개인의 운동 능력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들인 시간만큼 실력이 향상된다. 성실함, 땀방울의 가치를 가르치는 데 이만한 교육자료가 또 있을까. 둘째, 건강한 승부욕. 대부분의 스포츠 규칙이 승패를 가리는 방식이다 보니 상대와의 경쟁은 필연이다. 그래도 공은 둥글고, 출발선은 같다. 셋째, 반칙은 나쁘다는 원칙이다. 규칙을 지키는 이들을 바보 취급하는 세상에서, 그나마 ‘반칙→처벌’의 원리가 작동하는 세계가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뭇 일이 그러하듯 스포츠도 부작용이 있다. 들인 노력과 달리 운 때문에 패배를 맛보기도 하고, 승부욕이 지나쳐 다툼이 생길 때도 있다. 심판이 공정하지 못하면 억울한 판정이 난무한다. 바꿔 생각하면, 선을 넘지 않도록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니 이 또한 장점이 아닐까. 실로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모든 학생들이 스포츠 종목 하나씩은 익히도록 학교체육을 강조한다.

때마침 부산에서 국내 최초로 세계탁구선수권이 열리고 있으니 우리에게도 절호의 기회다. ‘아침 체인지’ 정책으로 학생들에게 운동을 유도하는 김에, 지역 특화 스포츠로 탁구를 가르치는 건 어떨까. 유남규·현정화 같은 부산 출신 탁구 레전드, 1991년 지바 선수권 남북단일팀 금메달의 영광 등 역사 공부는 덤이다. 어린이·어른 할 것 없이 시민들 한 명 한 명의 가슴마다 자부심 피어오른다면, 탁구를 매개로 부산이 글로벌 도시가 되는 꿈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일 테다.

탁구 인기가 중동에서도 상당했던 모양이다. 지난 카타르 아시안컵에 출전한 태극전사들이 탁구를 즐겼다 하니, 일단 호텔마다 탁구대가 있다는 게 부럽다. 아무리 탁구가 좋아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 시절, 수업 종이 울렸는데도 계속 ‘책상 탁구’를 쳤더라면 카타르 도하의 ‘핑퐁 사태’보다 더 참혹한 상황이 벌어졌으리라. 혹여 사이가 틀어진 이가 있다면 탁구 복식을 추천한다. 둘이 한 팀이 되어 한 번씩 번갈아 치는 복식은 혼자만 잘해봐야 소용없다. 이번 부산세계탁구선수권처럼 앞뒤 선수끼리 믿음이 중요한 5단식 3선승제의 ‘단체전’도 묘미가 있다. 다음 달 북중미 월드컵 예선을 앞둔 태극전사들. 손흥민과 이강인의 몸싸움을 야기한 ‘탁구 게이트’로 흔들렸던 팀워크를, 소집 첫날 이번엔 캡틴 손흥민의 지휘 아래 탁구로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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