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일기] '공교육 첨병'이 '문제 매매꾼' 된 세상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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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 사회부 기자

11일 감사원이 공개한 현직 교원과 사교육 업체의 ‘문제 거래’ 실태(부산일보 3월 12일 자 11면 보도)는 무너져가는 한국 공교육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매년 수십조 원이 흘러드는 사교육 시장의 물줄기가 허술해진 공교육의 둑을 무너뜨렸다. 공교육 영역에서 보호돼야 할, 공정해야 할 시험 문항이 사교육 시장에 팔려나간 것은 이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 됐다.

감사원이 밝힌 교사와 사교육 업체의 문항 거래는 심각했다. 한 현직 고교 교사는 수능·수능 모의평가 검토위원 경력을 내세워 사교육 업체에 모의고사 문항 수천 개를 넘겼다. 해당 교사는 개인의 일탈을 넘어 교원 8명을 포섭해 문항 공급조직도 만들었다. 그 대가는 6억 6000만 원이었다.

사교육 업체와의 뒷거래 사실을 숨긴 교사도 있었다. 한 교사는 학원 강사에게 고난도 문제를 넘기고 수억 원을 챙겼다. 해당 교사는 수능 모의평가 출제위원으로 뽑히자, 사교육 업체와의 뒷거래 사실을 숨겼다. 또 다른 교사는 배우자가 운영하는 출판사에 자신이 만든 수능 모의고사 문제를 넘겨 수억 원을 벌어들였다.

‘공교육의 첨병’이어야 할 이들 교사들은 ‘문제 매매꾼’이 됐다. 이들은 자신의 역할은 내려놓은 채 돈이 넘쳐나는 사교육 시장을 선택했다. 그 선택 과정에 자신의 존재 이유인 학생은 안중에 없었다. 학생들은 그들이 탐욕 속에 사교육 시장에 풀어 놓은 문제를 얻으러 사교육 시장에 또 한 번 내몰렸다.

분명 이번 사건은 일부 교사들의 불법적인 일탈이다. 하지만 교육계에 던진 파장은 적지 않다. 공교육 붕괴의 전조일 수 있다. 대다수의 교사들은 이들의 엇나간 결정에 개탄한다. 한 현직 고교 교장은 “소문으로 떠돌던 것이 사실이 돼 비참하다”고 했다. 한 현직 교사는 “학생들의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질까 두렵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사교육에 점령 당한 공교육의 현실에 안타까워했다.

교육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다. 입시 비리에 가담한 교원의 징계 시효를 늘리기로 했다. 징계 수위도 강화한다. 이는 근본 대책이 아니다. 학생들이 사교육 시장에 내몰린 공교육의 현실은 물론 그 틈바구니에서 기득권 세력이 된 교사의 현실을 짚어야 한다. 교육부와 교사들은 공교육이 왜 존재하는지, 공교육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학생을 중심에 두고 찬찬히 되짚어야 한다. 제대로 된 진단 없이 ‘공교육을 지키겠다’는 구호는 공염불일 뿐이다.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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