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4칸 시사만화엔 풍자를, 4칸 시엔 웃음을 담지요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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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태 시사만화가

데뷔 51년 '시사만화계의 전설'
'용팔이 사건' 땐 테러 당하기도
최근 한국시사만화가회장 선임
올해 '4칸 시' 시화집 출간 계획

안기태 화백이 부산 해운대구 자택 작업실에서 시사만화가로 걸어온 길을 이야기하고 있다. 안기태 화백이 부산 해운대구 자택 작업실에서 시사만화가로 걸어온 길을 이야기하고 있다.

집 안에 들어서자 종이 냄새가 가득했다. 작업실 책장에는 시사만화·만평·카툰 그림이 빽빽하게 꽂혀 있다. 식탁 의자 하나는 종이신문 더미가 차지했고, 신문 기사를 오려내는 합판 스크랩 받침대는 너덜너덜했다.

1973년 데뷔한 ‘시사만화계의 전설’ 안기태(82) 화백의 자택에는 이같이 50년 그림 세월이 쌓여 있었다. 안 화백은 〈부산일보〉와 국제신문에 각각 ‘어리벙씨’와 ‘피라미’를 총 30년간 연재했고,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사만화의 핵심은 비판과 풍자다. 따라서 시사만화가가 갖춰야 할 것은 그림 실력뿐 아니라 폭넓은 지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감각과 제대로 된 가치관이다. 안 화백은 자신을 ‘인생 대학’ 출신이라고 표현했다. “마산 중·고교를 졸업했어요. 천상병 시인이 선배이고 이상개 시인이 동기입니다. 서울의 한 대학에 합격했지만 장학금 제도가 갑자기 없어졌어요. 어려웠던 집안 형편 때문에 진학을 포기했어요. 10년 넘게 철사 공장, 연탄 공장, 건어물 가게 등을 돌면서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다 밑거름이 됐습니다.”

시사만화는 국제신문 박인성 화백의 시보 일을 하면서 접하게 됐다. 박 화백이 갑자기 그만두게 되면서 당시 편집국장의 권유로 시사만화 연재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1980년 11월 군부독재 정권의 언론인 강제 해직 사태 때 저도 해직됐어요. 해직자 중 시사만화가는 제가 유일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복권한 안 화백은 1981년부터 10년간 〈부산일보〉에 ‘어리벙씨’를 연재했다. 1988년 폭력배들이 통일민주당 창당대회를 방해했던 일명 ‘용팔이 사건’ 때는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만화를 그리고 나서 몇 번 협박 전화가 오더라고요. 어느 날 퇴근 후 동료들과 술 한잔하고 돌아가는 길에 집 앞에서 피습당했습니다. 머리와 옆구리를 맞아 갈비뼈가 부러졌어요. 한 달간 입원해 있었는데, 병원으로도 협박 전화가 오고 당시 딸이 중학생이었는데 집으로도 협박 전화가 오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서 퇴원하고 집에서 만화를 그렸어요. 회사에서 차를 보내면 만화를 들려 보내고, 석 달간 그랬어요.”

현재 일간지 1곳, 주간지 2곳, 월간지 1곳에 시사만화와 만평을 연재하고 있는 안 화백은 신문사 마감 시간에 맞춰 일과를 보낸다. “종이신문 12개 받아 봅니다. 오전 내내 신문 읽고 스크랩하고요, 인터넷 신문도 봅니다. 오후 2시부터 아이디어를 연구해서 오후 5시 30분에 마감합니다. 틈틈이 시간이 나면 카툰과 4칸 시를 그려요.”

‘쑤욱/쑥이 나왔다/씨익/봄이 웃는다.’ ‘늙어가면/뭣이 중헌디?/늙어가면/멋이 중헌디!’ ‘오늘이 제삿날이라고/자손들아 슬퍼 마라/저세상에서 나는 오늘/생일상 받고 있다.’

안 화백이 5년 전부터 쓰고 있는 4칸 시 작품들이다. “4칸짜리 시사만화는 기승전결이거든요. 그 형식에 맞춰서 코믹한 시를 쓰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사람들이 알기 쉬운 재미있는 시를 써보자 했어요. 시도 쓰고 글씨도 쓰고 그림도 그려요.”

4칸 시 작품들을 직접 제작한 액자에 담아, 지난해 연말에는 ‘시(詩)도 아닌 것이’ 개인전을 열었다. 올해 시화집 출간도 예정돼 있다. “저는 시장을 좋아합니다. 전에는 국제시장에 많이 갔고요. 요즘엔 부전시장에 갑니다. 시장을 한 바퀴 돌면 7000걸음쯤 돼요. 사람 사는 거 보면서 시상을 떠올립니다.”

안 화백은 ‘독도를 지킨 부산 어부’ 안용복 장군에 대한 애정이 크다. 2013년 학습만화 〈안용복 장군님, 고맙습니다〉를 펴냈다. “처음에는 안용복 기념사업회에서 부탁을 해왔어요. 사실 저도 잘 몰랐는데 관심을 가져 보니 대단한 일을 했어요. 형편이 된다면 다시 연구해서 제대로 그리고 싶습니다.”

부산예술대 겸임교수, 부산카툰작가클럽 회장, 영남언론미술기자회 회장 등을 지낸 안 화백은 최근 한국시사만화가회 회장에 선임돼 시사만화계를 이끌고 있다. 한 컷짜리 풍자만화 카툰도 꾸준히 작업 중이다.

“시사만화를 싣는 신문도 줄고 있고, 시사만화가도 점점 줄고 있어요. 체력이 되는 한 계속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시사만화가 중 최고령인데, 기네스북에 도전해 볼까 생각도 합니다. 하하.”

글·사진=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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