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우리도 '막'차보자 [골 때리는 기자]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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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총괄부 기자

부산 여성 풋살팀의 경기 장면. 부산일보DB 부산 여성 풋살팀의 경기 장면. 부산일보DB

“보통 남성보다 여성이 배우는 속도가 더 빠릅니다.”

태어나서 20대 후반에 처음 공을 차 봤다.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고, 주변에 공을 차는 친구도 없으니 본격적으로 레슨을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에 두려움을 느끼는 여성을 북돋아 주려는 ‘빈말’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여러 코치들이 공통적으로 해주는 말이 있었다. ‘여성이 배우기만 하면 남성보다 빠르게 실력이 는다’는 것이다. 남성은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과 공을 차거나, 축구 영상 등을 참고하는 탓에 체계적인 수업을 받지 않는다. 반면, 여성은 백지상태에서 축구를 처음 접하고 배워 잘못된 습관이 없기 때문이란다.

안타깝게도 ‘여성들은 배우면 잘 찬다’는 이 말이 나와 다른 이들을 옥죄기도 했다. 공을 찬 지 얼마 되지 않았을무렵, 비교적 체력 소모를 적게 하면서도 재미있게 공을 찰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혼성 풋살팀에 들어간 적이 있다. 혼성팀은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공을 잘 전달해 주고 쉽게 득점의 맛을 보면서 여성들이 쉽게 축구에 재미를 붙이게 되는 매력이 있다. 거기서 만난 한 회원은 남성들이 여성들에 비해 잘할 수밖에 없는 비결로 ‘막 찬다’라는 조언을 건넨 적이 있다. 남성들은 축구 영상을 보며 따라 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선수 움직임을 모방해보기도 한다. 연습하는 장소도 다양하다. 어릴 때부터 학교 운동장, 복도, 주차장 등 가리지 않는다. 반면, 나는 배우지 않으면 절대로 공은 찰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 나의 ‘뚝딱’대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연습장에서만 훈련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주눅 들지 않고 ‘막’ 차기 시작했다. 사는 곳 주변에 있는 초등학교에 공을 가지고 연습을 하러 간 적이 있다. 다 큰 성인 여성이 리프팅(공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연속해서 차올리는 기술) 하나를 성공하지 못하고 발을 내밀기만 하면 공이 뻥뻥 날아가 버리니, 초등학생들에게는 좋은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여성 혼자서 공을 차고 있으니 신기해서 보는 시선, ‘잘하나 어디 보자’는 시선들이 나를 스쳐갔다. 공놀이를 즐기게 된 순간은 내가 ‘개발’임을 인정한 그때부터였다. 부끄러운 순간들을 이겨내고 리프팅 1개를 성공하는 순간, ‘행복 축구’가 시작됐다.

우리도 축구를 처음 접하는 남자아이들처럼 공을 차 보자. 공 하나를 사서 집에서도 해보고, 근처 공원에서도 해보자. 축구 경기를 보다 멋있어 보이는 움직임이 있으면 무작정 따라 해보자. 물론 체계적인 수업을 받지 말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공에 대한 흥미없이는 실력 향상도 없다. 공 하나만 있으면 몇 시간이고 땀을 뻘뻘 흘리며 즐거워하던, 어린 시절 목격하기만 했던 남자 친구들의 모습을 자신에게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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