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아름답게 '지는' 벚꽃처럼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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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과 함께 시작한 22대 총선 레이스
묻지마식 폭로·소송 남발로 후유증 우려
민생 바닥에 비수도권은 벼랑 끝에 몰려
낙선자들, 새 시대 위해 겸허히 승복해야

올봄 뒤늦은 개화에 벌써 ‘벚꽃 엔딩’이다. 다행히 지난 주말 벚꽃 여행 막차를 탔다. 가족과 찾은 경북 구미시 금오산과 김천시 연화지에는 만개한 벚꽃과 인증샷을 찍으려는 상춘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가다 서다 반복하는 거북이걸음에도 지난한 일상을 위로하는 듯한 생기에 기분이 썩 괜찮았다. 소음처럼 들릴 법한 노점상의 ‘손님 몰이’와 총선을 앞둔 여야 후보의 확성기 유세도 이날은 구수했다.

해와 벚꽃은 질 때가 더 아름답다고 했다. 주말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우수수 낙화했다. 출근길 강한 봄바람과 함께 흩날리는 ‘벚꽃비’는 봄날의 피날레를 장식하듯 장관이었다.

봄기운 속 시작한 제22대 총선 레이스도 벚꽃 엔딩과 함께 막을 내렸다. 앞서 공천과 본 선거 과정 모두 화창한 봄날이 무색하게 혼탁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전투구가 잇따랐고, 공약도 직전 대선과 지방선거의 것을 재탕하거나 현실성 없는 것을 남발했다. 벚꽃이 ‘설렘 지수’를 끌어올렸다면, 구태를 되풀이한 총선은 ‘싫증 지수’를 높였다. 그런데도 국민은 32년 만에 최고 투표율로 다시 한번 새 정치에 기대를 걸었다.

어찌 됐든 민주주의의 축제인 선거가 끝이 났다. 벚꽃 엔딩처럼 아름답게 ‘지는’ 총선 엔딩이 가능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여론조사 때부터 워낙 접전지가 많았고, 상대 후보를 겨냥한 폭로전과 고소·고발이 난무했던 터라 총선 후유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미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된 지난해 12월 12일부터 지난달 26일까지 검찰과 경찰이 적발한 선거 사범만 각각 474명, 895명에 달한다. 허위 사실 공표·흑색선전 사범이 이례적으로 40%대를 넘길 정도로 유언비어가 판친 셈이다. 사전투표 때도 조작, 부정선거 음모론이 또다시 제기되며 ‘피곤한 결말’을 예고했다. 최근 가짜뉴스 등으로 인해 자신의 기존 신념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확증 편향’도 심해져 유튜버나 일반 시민까지 시끄러운 결말을 부추기는 꼴이다.

지난 제21대 총선의 경우 대전의 낙선자들이 ‘4·15 국회의원 선거 실태 조사단’을 구성하는가 하면 한 낙선자는 중앙선관위 위원장을 선거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당시에도 사전투표 조작, 부정선거 등을 이유로 126건의 소송이 제기됐지만, 모두 법원에서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물론 터무니없는 결과에 승복할 수는 없지만, 묻지마식 고소·고발이 남발되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더 우려스러운 건 당내 후폭풍이다. 낙선자 스스로를 돌아보기보다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도부에 전가하며 격랑을 겪는 일이 매번 반복됐다. 이번 경선도 ‘비명(비이재명)·비윤(비윤석열) 횡사’ 등의 논란으로 계파 갈등이 컸던 만큼, 총선 직후 당내 주도권 싸움이 본격화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민생과 민심을 제쳐두고 말이다.

승자의 손을 들어주는 아름다운 퇴장은 위기의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고금리·고물가 장기화로 ‘먹거리 양극화’가 빚어질 정도로 체감 경기가 바닥이다. 최근 소득 하위 20%의 경우 가격이 고공행진 하는 신선 식품 대신 값싼 가공식품을 찾으면서 엥겔지수가 하락하는 역설적인 현상도 나타났다. 엥겔지수는 전체 소비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으로, 통상 낮을수록 식비 이외 지출이 많아 가계에 여유가 생긴 것으로 해석된다.

모두가 알다시피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 상황은 더 심각하다. 제2의 도시 타이틀이 부끄럽게 부산은 청년 인구 이탈 가속화, 저출산 쇼크 등으로 ‘노인과 바다’ 도시라는 오명을 쓴 지 오래다. 그나마 ‘해양 수도’라는 명목 아래 항만·해양·수산업이 고도화하며 체면치레한다. 자연스럽게 수도권과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산업은행 이전, 부울경 메가시티·특별연합 구축과 같은 부산의 초대형 이슈가 정쟁으로 밀릴 때, 수도권은 지난달 말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A를 완공해 ‘30분대 출퇴근’ 시대를 자축했다. 최근 인천에서는 3기 신도시가 착공했고, 경기도 용인시에서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가 속도를 내며 수도권 일극체제가 견고해지는 모습이다.

박탈감에 빠진 이 시대에 맞서 제22대 국회가 곧 출범한다. 당선자들은 제 자리 지키기에 급급해 공약을 외면하는 모습을 더는 보이지 않길 바란다. 낙선자들도 그들이 하루빨리 민생과 지역 현안 해결에 집중하도록 패배의 아픔을 머금고 한발 물러서야 한다. 벼랑 끝에 몰린 지역을 살리기 위해 적절한 견제뿐 아니라 필요하다면 초당적 협력도 불사해야 할 때다. 시민은 선거 과정에서 본 낙선자들의 열정과 진정성을 쉽게 잊지 않는다. 아름다운 벚꽃 엔딩은 끝이 아닌 다음 개화를 위한 또 다른 시작임을 알아야 한다.

이승훈 해양수산부장 lee88@busan.com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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