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아트, 미술올림픽에서 빛났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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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비엔날레 20일 개막
한국작가 역대 최대 규모 참가
본전시 비롯해 한국 11개 전시
세계에 한국 미술 존재감 뚜렷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구정아 작가 작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구정아 작가 작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세계 최대 현대 미술 축제로 일명 ‘미술 올림픽’으로 불리는 베니스 비엔날레가 20일 개막했다. 11월 24일까지 7개월의 대장정을 이어갈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본 전시를 비롯해 특별전, 병행 전시, 한국관 전시에 역대 최대 규모의 한국 작가들이 참여하며 K미술의 존재감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88개국 330명의 작가 본 전시 참여

베니스비엔날레는 총 예술감독이 큐레이팅한 본 전시와 각 국가가 대표 작가를 선보이는 국가관 전시로 크게 나뉜다. 올해는 첫 남미 출신으로 선정된 아드리아노 페드로사(브라질) 예술 감독이 본 전시를 진두지휘했다. 이민자와 망명자, 성소수자와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 주목한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Stranieri Ovunque-Foreigners Everywhere)’를 전시 주제로 잡았으며 88개국 330명(팀)의 작가가 참여했다.

한국 작가로는 아르헨티나에서 오래 활동한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 중인 이강승, 그리고 현재 작고했지만, 한국의 미켈란젤로라고 불린 이쾌대 작가 (1913∼1965)와 한국화의 거장, 장우성 작가(1912∼2005)가 선택받았다.

40여 년 나무 조각 작업을 해 온 80대 김윤신 작가는 정작 한국에선 주목받지 못했으나, 이번에 페드로사 감독의 안목으로 비엔날레 본 전시에 초대받아 화제가 되고 있다. 성 소수자의 삶과 역사를 드러내는 작업을 이어온 이강승 작가는 신작 ‘무제(별자리)’를 선보였다. 양피지 그림과 금실 자수로 잊히고 사라진 이들을 애도한 설치물이다.

이쾌대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 베니스 비엔날레 제공 이쾌대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 베니스 비엔날레 제공

장우성 작가와 이쾌대 작가의 초청도 관심을 끈다. 두 작가의 작품은 식민 통치의 아픈 역사를 지닌 제3세계 출신 화가들의 초상화들을 모은 섹션에 놓였다. 장우성은 한국적 수묵화 전통을 계승해 현대화된 도시 생활을 표현한 작가이며, 이쾌대는 한복 두루마기에 서양식 페도라를 쓴 ‘자화상’과 함께 식민 지배에 대응한 그림을 그린 작가로 소개됐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모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모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모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모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구정아 작가 작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구정아 작가 작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된 구정아 작가. PKM갤러리 제공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된 구정아 작가. PKM갤러리 제공

한국관 개막식을 찾은 인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한국관 개막식을 찾은 인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한국관을 돌아보고 있는 모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한국관을 돌아보고 있는 모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향기와 기억의 향연, 한국관

29개국이 차린 국가관은 자국의 대표 작가를 소개하는 자리인 만큼 작가와 작품에 대한 자존심 경쟁이 엄청나다. 아시아권에는 한국과 일본이 국가관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은 1995년 처음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관을 설치했다.

올해 한국관은 처음으로 공동 예술 감독제를 채택했다. 이설희(덴마크 쿤스트할 오르후스 수석 큐레이터)와 야콥 파브리시우스(덴마크 아트 허브 코펜하겐 관장) 예술감독이 공동 기획했으며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주인공은 구정아 작가이다.

한국관은 ‘오도라마 시티’라는 주제로 전시를 펼쳤다.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국의 도시, 고향에 얽힌 향의 기억’에 대한 설문을 받았으며 사연을 바탕으로 향수 회사와 협업을 통해 17개의 향을 개발했다. 전시 제목인 ‘오도라마’는 향을 의미하는 ‘오도(odor)’에 드라마(drama)의 ‘라마(-rama)’를 결합한 단어로, ‘향’은 1996년 이래 구정아의 광범위한 작업 범위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테마이다.

작가는 향이 기억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어떻게 공간을 감지하고 회상하는지 탐구해 왔다. 즉, ‘오도라마 시티’는 후각과 시각의 접점을 찾아,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구정아 작가는 17개의 특별한 향과 더불어 신작 조각, 설치물을 한국관 내외부에 선보였다. 일상의 시공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구정아 특유의 감각적 설치가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 작가는 한국관 개막식에서 “시각적으로 볼거리 많은 비엔날레에서 한국관의 전시는 좀 더 사색적이고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을 구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병국 위원장은 “한국관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에게 특별한 향과 기억이 오래도록 남기는 전시가 될 것”이라며, “한국관이 우리 미술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중요한 플랫폼이 되어 왔음을 더 확신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한국관 30주년 특별전이 열리는 몰타 수도원 모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한국관 30주년 특별전이 열리는 몰타 수도원 모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한국관 30주년 특별전 ‘모든 섬은 산이다’ 전시 모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한국관 30주년 특별전 ‘모든 섬은 산이다’ 전시 모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한국관 30주년 특별전 ‘모든 섬은 산이다’ 전시 모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한국관 30주년 특별전 ‘모든 섬은 산이다’ 전시 모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한국관 30주년 특별전 ‘모든 섬은 산이다’ 전시 모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한국관 30주년 특별전 ‘모든 섬은 산이다’ 전시 모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한국관 30주년 특별전 ‘모든 섬은 산이다’ 전시 개막식 행사 모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한국관 30주년 특별전 ‘모든 섬은 산이다’ 전시 개막식 행사 모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중세 수도원에서 한국관 30주년 특별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내년 3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기획전 ‘모든 섬은 산이다’도 중세 건물인 몰타기사단 수도원에서 개막했다. 그간 한국관 대표 작가로 참여했던 36명의 작품을 모아 축적된 한국 현대미술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관의 지난 30년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아카이브 전시’로 시작해 작은 방이 밀집한 수도원의 실내와 고즈넉한 중정 그리고 탁 트인 야외 정원이 펼쳐지며 베니스의 중세와 한국 동시대의 시간이 서로 겹쳐진다. 수도원의 중정에는 서울 근교에 위치한 열두 개의 사찰에서 녹음한 범종의 소리를 담은 배영환의 ‘걱정-서울 오후 5:30’이 수도원 성당의 종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며 문화적 경계를 가로지른다.

AI 도슨트와의 대담을 통해 전시 주제를 인문학적·기술적 상상력으로 확장한 이완의 ‘커넥서스: 섬 속의 산’, 생동하는 반고체 물질로 이뤄진 김윤철의 ‘스트라타’, 사운드 경험을 공간적으로 확장한 김소라의 ‘얼어붙은 방귀의 싸늘한 냉기’, 예술적 협업자들과의 기억을 다룬 이주요의 ‘Outside the Comfort Zone’, 전통과 문명을 재해석하는 황인기와 문성식, 성낙희의 회화가 신작으로 선보인다. 이외에도 김수자, 서도호, 정연두 작가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에 선정된 이배 작가 전시 퍼포먼스 일부 모습. 조현화랑 제공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에 선정된 이배 작가 전시 퍼포먼스 일부 모습. 조현화랑 제공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에 선정된 이배 작가 전시 퍼포먼스 일부 모습. 조현화랑 제공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에 선정된 이배 작가 전시 퍼포먼스 일부 모습. 조현화랑 제공

■곳곳서 한국 작가 병행전도 열려

베니스 곳곳에서는 비엔날레 재단의 공식 승인을 받은 30건의 병행전시가 본전시와 맞물려 열리고 있다. 이 중에는 한국 작가를 소개하는 공식 연계 전시 4건도 포함됐다.

한국 추상미술의 개척자인 유영국(1916∼2002)의 첫 유럽 개인전인 '유영국:무한 세계로의 여정'과 올해 창설 30주년을 맞는 광주비엔날레의 아카이브 특별전 '마당',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여성 추상미술가 이성자(1918∼2009)의 개인전, '숯의 작가' 이배의 개인전이 공식 병행전시로 선정됐다.

한솔재단뮤지엄 산과 빌모트 파운데이션이 공동 주관하고 조현화랑이 협력 및 후원한 이배의 개인전은 숯이라는 한국적인 소재, 올해 청도에서 열린 달집태우기의 퍼포먼스와 영상을 주요 배경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서양에선 죽은 물질로 여기는 숯이 가지는 생명력, 달집태우기 행사를 통해 사람과 자연의 결합, 비움과 채움의 순환, 자연의 호흡을 보여주게 된다.

이배 작가는 출국 전 인터뷰에서 ““내가 세잔이나 모네를 이해하는 것만큼 서양에서 겸재나 추사를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전시가 동양을 이해하는 하나의 코드가 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본 전시와 공식 병행전 이외에도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중 한국 작가들의 협력 전시도 풍성하다. 고영훈·박서보·정혜련·하인두 작가의 그룹전 ‘한국 현대미술의 정수 : 손에서 정신으로의 여정’은 전후 국제미술의 영향을 자기화하는 여정 속에서 형성된 한국 현대미술만의 독특한 특성과 진화 과정을 보여준다. 부산 지역작가인 정혜련 작가의 베니스 전시에 대한 지역 미술인의 기대와 응원도 크다. 이 전시는 베니스의 비영리 문화재단인 ‘콘실리오 유럽 델아르테 파운데이션’ 공모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정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외에도 ‘매듭 페인팅’의 신성희, 실험 미술의 선구자 이승택의 전시가 열리며 다국적 작가 그룹 ‘나인드래곤헤즈’의 전시에도 3팀 15명의 한국 작가가 참여하며 한국 작가들의 활약을 만날 수 있다.


하인두 ‘혼불-빛의 회오리’. 가나문화재단 제공 하인두 ‘혼불-빛의 회오리’. 가나문화재단 제공

정혜련 ‘14를 결합하는 방식’. 가나문화재단 제공 정혜련 ‘14를 결합하는 방식’. 가나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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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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