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벼락 내걸린 공장 매매 현수막조차 빛바랜 지 오래 [무너지는 부산 산단]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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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기계 멈춘 녹산 국가산단

고금리·고물가에 제조업 급락세
인력 못 구해 일감 늘어도 역부족
경영 혁신 언감생심 생존도 급급
매매·임대 문의조차 거의 사라져
15년 밥집도 못 견디고 최근 폐업

국가산단인 부산 강서구 녹산산단의 가동률이 74.1%로 전국 국가산단 평균 84.1%보다 10%P나 낮게 나타났다. 24일 부산 강서구 녹산산업단지의 한 공장 외벽에 매매와 임대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정종회 기자 jjh@ 국가산단인 부산 강서구 녹산산단의 가동률이 74.1%로 전국 국가산단 평균 84.1%보다 10%P나 낮게 나타났다. 24일 부산 강서구 녹산산업단지의 한 공장 외벽에 매매와 임대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정종회 기자 jjh@

24일 오전 부산 강서구 녹산국가산업단지 7번 신호등 안쪽 골목으로 들어서니 공장이 줄지어 있었다. 하지만 공장 여러 곳은 굳게 문이 닫혀 있었고 기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 일대 전봇대 3개 중 1개 꼴로 공장 매매·임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마저도 시간이 오래 지나 글자가 흐렸다. 한 공장 직원은 문이 닫힌 공장을 가리키며 “조선기자재 업체가 있었는데 지금은 나가고 냉동창고로 쓰이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산단의 침체는 지역 경기에도 여파를 미쳤다. 녹산산단에서 15년 동안 운영되던 국밥집은 지난해 문을 닫았다. 입점 업체가 없어 자재 임시 보관 창고로 사용되면서 썰렁한 분위기를 더했다. 공인중개사 김동진(65) 씨는 “몇 년 전과 비교해 봐도 녹산산단 부지나 공장 매매 임대 문의가 절반 이상으로 줄었다. 점심시간이나 퇴근시간대 유동인구도 확 줄었고 침체에서 나아질 기미가 없다”고 전했다.

동남권 대표 산단인 부산 강서구 녹산국가산단의 침체가 길어지고 있다. 연구·개발할 고급인력은 수급이 어렵고 고물가, 고금리 탓에 기업 자체적으로 혁신을 꾀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산단을 나가려는 기업은 있어도 입주하려는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산단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지원과 정책이 없다면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산업단지공단 국가산업단지 산업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녹산산단 가동률은 74.1%에 불과하다. 녹산산단 입주기업 총 1521개 중 644개가 조선기자재와 기계 생산 업체로 가장 많았고, △비제조 181개 △운송장비 147개 △석유화학 143개 순이었다. 대부분 조선업 및 자동차, 공장기계 등 울산·경남 선도기업들의 납품업체로 녹산산단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녹산산단 입주기업들은 수치보다 체감경기가 더 차갑다고 입을 모은다. 연구·개발할 고급인력들은 수급이 전혀 안 되고, 2015~2016년 조선업 불황부터 현재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구조적 문제까지 겪으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이 똬리를 틀었다. 생산 역량을 늘리거나 경영 혁신을 꾀하는 것도 주저할 수밖에 없다. 부산 경제를 떠받쳤던 녹산산단 기업들은 생존하지 못하거나 생산 역량을 축소한 채로 겨우 유지하고 있다.

선박용 크레인 전문회사 오리엔탈정공은 직원만 120명 규모로 산단 조성 초기부터 자리를 지킨 터줏대감이다. 조선업 경기가 나아지면서 일감은 늘었지만 정작 연구를 진행할 고급 인력과 시설이 부족해 일을 감당하기 역부족이라고 설명한다. 자체적으로 기계 제작마저 어려운 경우도 발생해 경남 김해에 있는 업체에 외주를 맡기기도 한다.

오리엔탈정공 박세철 회장은 “회사 인근 대부분이 조선기자재 업체였는데 조선업 불황을 견디다 몇 년 전 사라졌고 여전히 공장은 비어 있다”며 “15년 전 녹산산단 전성기 때와 실적을 비교하면 지금은 절반 수준이고 고급 인력은 녹산산단으로 오려고 하지 않는다. 기업들이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위기를 해결하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산단 내 섬유의복 업체도 상황은 비슷했다. 녹산패션칼라사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조합 소속 업체가 25곳 정도 되는데 1곳은 파산 신청에 들어갔고 2~3곳은 경영에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녹산산단 침체는 부동산 거래에서도 확인된다. 가덕신공항과 지하철역 신설 등 호재가 있지만 공장 부지 거래는 6개월 동안 없고 임대 문의도 눈에 띄게 줄었다. 매매를 포기하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운영을 중단한 채 공장만 소유한 기업도 적지 않다. 폐업하거나 외부로 나가려는 기업은 있지만 들어오려는 곳은 없다는 게 부동산업계 설명이다.

부산연구원 이상엽 경제동향분석센터장은 “지자체와 기업, 학교가 적극적으로 협력해 고급 인력을 양성하고 자본을 이끌어야 한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스마트공장 지원과 함께 지역에 정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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