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동창 도둑 몰아 2억 뜯고… 그 어머니도 죽음 내몰아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법원, 20대에 징역 6년 선고
지갑 만진 친구에 신고 협박
모친 신용카드까지 받아 써
거액 빚 시달리다 사망 ‘비극’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 청사. 부산일보DB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 청사. 부산일보DB

A(27) 씨는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대학 동창 B 씨에게 자신이 일했던 부산의 한 술집을 소개했다. 어느 날 B 씨는 자신이 일하게 된 술집에 놀러 온 A 씨가 갖고 있던 예쁜 지갑을 보게 됐다. 지갑이 궁금했던 B 씨는 A 씨가 자리를 비운 사이 지갑을 만졌다. 동창 사이에서 무심코 한 이 행동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자기 지갑을 살펴본 장면을 목격한 A 씨는 이를 빌미로 협박하기 시작했다. 2021년 2월 2일 A 씨는 “도둑질한 모습이 CCTV에 다 찍혔고 100만 원짜리 지갑인데 찢어졌다”며 “지갑 변상 명목으로 돈을 주면 경찰에 신고 안 하고, 민·형사 고소도 하지 않겠다”며 B 씨를 협박했다. 실제로 B 씨는 절도를 하지 않았지만, 분쟁에 휘말리기 싫어하는 심성을 가진 탓에 A 씨에게 93만 원을 계좌이체했다.

이후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일정한 직업이 없어 돈이 부족했던 A 씨는 1년 8개월이 지난 2022년 10월 19일 다시 B 씨에게 연락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한 술 더 떠 “카운터에서 돈을 훔친 장면이 CCTV에 찍혀 있어 도둑질하고 손해 끼친 걸 내가 메꿔야 한다”며 “절도 벌금이 1000만 원인데 절반인 500만 원을 주지 않으면 민·형사 고소를 준비하겠다”고 협박했다.

두 번째 협박으로 세 차례에 걸쳐 약 1000만 원을 받은 A 씨의 범행은 더욱 대담해졌다. A 씨는 자기 모친이 이번 사건으로 변호사를 선임해 손해배상 청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를 무마하기 위해 배상을 해달라며 220만 원을 뜯었다. 심지어 “술집 사장이 B 씨 때문에 가게를 팔았는데 B 씨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니 나한테 돈을 주면 무마해 보겠다”며 1700만 원을 받기도 했다.

이후 B 씨는 직장이 생겼지만, 허위 차용증까지 쓴 탓에 A 씨에게 빚까지 지면서 돈을 계속 전달했다. A 씨의 마수는 B 씨의 모친에게까지 뻗어나갔다. A 씨는 B 씨의 모친 C(52) 씨의 신용카드를 받아 자신의 카드처럼 14차례에 걸쳐 약 500만 원을 사용했다.

이렇게 약 2년 동안 A 씨가 모녀에게 뜯은 돈은 총 34차례 걸쳐 2억 96만 원이었다. A 씨는 이 돈을 생활비로 쓰거나 호감을 느낀 남성에게 명품을 선물하는 데 탕진했다.

A 씨의 범행은 날이 갈수록 악랄해졌다. 모녀가 연락을 받지 않자 집에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문을 두드렸다. 집 문 앞에 ‘돈을 갚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며 허위 사실을 적은 메모를 붙이기도 했다. A 씨는 ‘딸은 취미도 특기도 도벽이고 엄마도 거지’라는 글을 SNS에 공개 게시한 듯 사진을 찍어 C 씨의 휴대전화로 전송하기도 했다.

참다 못한 모녀는 결국 A 씨를 고소했다. 약 1년 동안 도피 생활을 이어가던 A 씨는 결국 경찰에게 잡혔다. 부산지검 서부지청은 A 씨를 공갈, 강요, 명예훼손, 협박, 주거침입,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6개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C 씨는 A 씨 악행의 결말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이 사건으로 모녀가 진 빚만 1억 6500만 원에 달하게 되자 괴로워하던 C 씨는 지난해 8월 자택에서 숨진 채 딸 B 씨에게 발견됐다. B 씨 측 변호인은 법정에서 B 씨의 정신적인 고통이 매우 크기 때문에 직접적인 연락 금지를 강력하게 희망한다고 밝혔다.

부산지법 서부지원 형사2단독 백광균 판사는 지난 24일 A 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하며 범행을 엄하게 질책했다. 백 판사는 “B 씨의 고운 심성 탓에 대학 동창인 A 씨의 지갑을 잠시 만져보았을 뿐 절도 혐의가 없는데도 장기간 위협에 굴복하며 노예처럼 지냈다”며 “피해자들은 사랑스러운 가정을 일궈 행복한 하루하루를 지내오다가 오로지 A 씨의 악행 때문에 막대한 재산과 둘도 없는 생명까지 잃어 돌이키지 못할 피해를 보았다”고 밝혔다.

이어 “사건의 핵심인 공갈죄만 봐도 범행의 경위 등 더 나쁜 사안을 떠올릴 수 없으리 만치 참혹하고 비극적이고 돈을 더 잘 뜯어내려고 저질러온 강요죄, 스토킹 범죄 등까지 더해본다면 최악 중 최악으로 평가하는 데 아무 손색이 없다”며 “피해자들이 그동안 시간과 돈, 목숨은 되돌려받지 못하고 어쩌면 10년, 20년이 지나도 막대한 빚을 못 갚을지도 모른다. A 씨는 피해자들의 크나큰 고통을 뼈저리게 깨닫도록 조치해야 마땅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