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라인 탈취와 닛산 야반도주, 일본 리스크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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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이 2019년 4월 보석으로 풀려나 도쿄 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이 2019년 4월 보석으로 풀려나 도쿄 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닛산(日産) 부활 영웅의 영화 같은 탈주극

“남편이 해낸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2019년 일본에서 기소된 뒤 출국 금지 상태에서 탈출한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의 부인이 밝힌 심경이다. 곤 전 회장은 미 특수부대 출신 준비팀의 도움을 받아 대형 음향 장비 상자에 숨어서 집을 빠져나온 뒤 개인 전용기를 타고 극적으로 일본을 탈출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이다. 곤 전 회장도 탈출 직후 “18년간 일본에서 살았는데 일본이 이렇게 잔인무도하고 불공정하고 감정도 없는 곳이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고 토로했다.

곤 전 회장은 2조 1000억 엔(약 22조 원)의 부채 탓에 빈사 상태에 허덕이던 닛산자동차를 되살린 일본의 국가적 영웅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연봉을 축소 신고해 세금을 탈루하고 회사 자금을 유용한 혐의로 지난 2018년 11월 일본 검찰에 전격 체포된 이후 네 차례나 구속되는 등 한순간에 몰락했다. 당시 닛산을 인수한 르노의 대주주이자 곤 회장의 모국인 프랑스 정부가 두 회사의 완전한 통합을 추진하자 일본 측 경영진이 이를 막기 위해 곤 전 회장을 축출하려고 비리를 폭로해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주장마저 나왔다.

곤 전 회장은 “일본 친구들 중 일부는 닛산에 대한 르노의 영향력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나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했다. 실제로 곤 전 회장은 ”닛산 내부와 일본 당국과 연계돼 있다“면서 ”르노와 닛산, 미쓰비시의 3사 얼라이언스가 경영 통합과 합병을 추진하는 것에 반대하는 내부 세력의 모략에 당했다“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습성의 대표적인 단면이다.

결국 일본의 사법시스템과 외국 자본에 대한 배타성 등 ‘일본 리스크’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까지 나서서 일본의 수사와 재판 절차, 구금 여건 등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 미국 등 서구권 언론들도 사법적으로 부당한 종교재판, 인권 침해 소지를 끊임없이 비판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본 정부와 기업이 음모를 꾸미고 있다”면서 “반세기 역사의 먼지 덮인 ‘일본 주식회사’”라고 비판했다.

이 사태에 대해 해외 언론과 일본 전문가 등은 “닛산(日産) 자체가 문자 자체만으로도 ‘메이드 인 재팬’을 뜻한다”면서 “곤 전 회장이 일본인 고유의 것, 일본의 대표 기업인 닛산 최고위직에 오른 것이 섬나라 일본의 배외주의 속성을 발현시키지 않았겠느냐”라고 분석했다. 이런 일본의 외국인 혐오에 대해서 미국 바이든 대통령조차 수차례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인, 중국인, 러시아인은 외국인을 혐오한다. 이들은 자국인 이외의 사람이 자국 내에 있는 걸 원치 않는다”라고 밝힐 정도이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김미경 교수는 “일본 사회의 메타인지(자기 성찰) 부족의 결과”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이어 “단기적 자기만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극단적 내부 지향성으로 인해 스스로가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에 대한 자기 객관화가 안되기 때문에 외부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의 인식 체계 마비 상태”라고 지적했다.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한국대학생진보연합 관계자들이 라인 사태와 관련 일본 정부와 대통령실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한국대학생진보연합 관계자들이 라인 사태와 관련 일본 정부와 대통령실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 라인 탈취 사태 점화

일본의 폐쇄성과 이중성은 최근 네이버 라인 사태에서도 빚어지고 있다. 전혀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그 희생물은 한국 대표 AI 기업 네이버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라인이다. 2011년 6월 출시된 ‘국민 메신저 라인’은 일본 국민 80% 이상인 9700만 명이 사용한다. 일본 스마트폰 결제 시장 점유율 70%. 일본인들은 라인야후로 뉴스와 정보를 검색하고, 라인 워크로 기업 업무를 하고, 라인 비즈니스로 마케팅을 펼친다. 일본의 재난문자, 행정서비스 문자메시지도 라인을 통해 전파될 정도로 일본 대표 IT기업이다. 태국에 5500만 명, 대만은 2200만 명, 인도네시아 600만 명 등 동남아 시장에 약 2억 명의 사용자를 보유한 글로벌 플랫폼이다. ‘메이드 인 재팬’이란 뜻의 닛산(日産)과 유사하게 ‘일본 국민 메신저 라인’도 ‘일본 기업이어야 한다’는 논리가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이다.

네이버가 창립한 라인의 지분은 네이버 50%, 소프트뱅크 50%다. 라인의 정보통신 인프라는 네이버가 위탁받아 운영·관리하고, 소프트뱅크는 경영에만 관여했다. 일본 정부는 올해 두 차례 행정지도를 통해 "라인야후가 시스템 업무를 네이버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며 자본관계 재검토를 요구했다. 이에 라인야후는 네이버에 지분 매각을 요청했다. 닛산 사태처럼 일본 정부와 정치권, 재계의 ‘탈취 작전’이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는 느낌이다.

한국에서 반발이 심각해지자, 일본 정부는 닛산 곤 전 회장 사태처럼 거짓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이버 공격과 개인정보 유출을 빌미로 시작한 일본 정부의 라인 탈취 작전이 의도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이지만, 중국이나 러시아도 아닌 최첨단 자본주의·자유주의 국가인 일본에서 기업의 지분과 자유로운 활동이 보호받지 못하는 ’일본 리스크‘가 부각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가뜩이나 저성장과 창의적인 인력 구인난에 허덕이는 일본 경제를 더욱 나락으로 떨어뜨릴 위험성이 크다. 일본 정부 스스로 리스크를 키우는 셈이다.

이번 라인 탈취 사태는 일본의 배타주의에서 한발 나아가, AI 주권 확보를 위한 일본 정부의 노림수라는 분석도 나온다. AI 경쟁이 국가 간 대항전으로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대규모언어모델(LLM)이 없는 일본이 무리하게 관련 인프라와 데이터를 확보하려는 속셈이다. 일본에서 쌓은 라인의 데이터가 일본 정부가 노리는 최종 목표라는 이야기다.


일본 정부가 라인야후에 네이버와 자본 관계를 재검토하라고 행정지도를 내린 '라인야후 사태'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라인야후에 네이버와 자본 관계를 재검토하라고 행정지도를 내린 '라인야후 사태'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연합뉴스

■라인 탈취 사태가 정보 안보 전쟁으로 치닫나

라인 탈취 사태가 일본 정부의 AI 시대 데이터 확보를 위한 ‘순수한’ 목적이라면 이번 논쟁은 엉뚱하게도 한국 내 일본 지분 기업으로 번지고 있다. 삼성 계열사로 알려진 에스원과 일본 기업 세콤이 대표적이다. 연매출 2조 4000억여 원의 국내 대표 시스템경비 전문업체인 에스원은 전국 교도소 담장에 영상감지센서와 광센서를 이용한 전자경보시스템, 국방부의 전방 철책선 방어시스템, 비행장 무인경비시스템, 첨단기술 공장 보안 등 한국 군사·기술 안보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에스원의 대주주는 25.65%(2022년 기준)의 지분을 갖고 있는 일본 보안 기업 세콤이다. 일본 기업이 대주주인 삼성 계열사인 셈이다. 상근 대표이사 부사장과 비상근감사에도 일본 세콤그룹 출신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에스원과 세콤의 서버 미러링 공유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과 휴전선 철책선 등 국가의 민감한 기밀시설에 대한 출입과 모든 보안 사항을 일본 기업 세콤은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생기는 부분이다.

최근 전국 50여 회원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서울서 열린 한국무인경비협동조합 회의에서 부산 시티캅 정현돈 대표이사는 “일본이 네이버 라인을 빼앗아 가면, 삼성에서 세콤을 정리해 순수 국내 자본으로 가야 한다”라고 말해 좌중의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정 대표는 “세콤과 같은 경비업체가 관공서와 국방 기밀시설, 첨단 기업 등 한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살펴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면서 “경비시스템업체들도 서브 미러링 기술로 세계 곳곳에 클라우드 서버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에서도 한국의 모든 모습을 볼 가능성이 높다”라고 지적했다. 한국 기업이 만들었다고 ‘국민 메신저’ 라인을 탈취하겠다는 도덕성과 상식 수준이라면, 어떻게 첨단 기밀과 군사시설 정보를 공유할 수 있을까. 빈약한 신뢰 기반에서 한일군사협력과 안보 정보 교류 등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까. 많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단순히 이번 라인 사태를 뿌리 깊은 외부인에 대한 배격주의, 섬나라의 폐쇄성, 일본 우월주의 병폐 등 감정적인 시각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물론, 가전, 반도체, 전자 부문에서 한국은 물론이고, 대만에까지 밀리는 상황에서 상처 입은 자존심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자국 기술·인사·군사 안보와 AI 산업 경쟁 등 복합적인 측면에서 분석해야 한다. 물론, 우방국이라 칭하면서 한국 기업이 애써 쌓은 공로를 칭찬하고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침탈한다는 이미지가 굳어질 경우 어느 나라가 일본을 ‘친구’라고 칭할 수 있을까. 장기적으로는 일본에 엄청난 재앙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곤 전 닛산 회장은 일본에서 탈출한 뒤 레바논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에 거주하는 모든 외국인에게 충고한다. 당장 일본을 떠나라. 당신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번 라인 사태와 관련 일본 정부가 ‘일본 리스크’에 대해 스스로 답해야 할 때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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