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대구직할시와 ‘꾀끼깡꼴끈’ 부산

이현우 기자 hoor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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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콘텐츠랩 본부장

“언젠가는 모두가 서울 사는 시대”
부산 청소년들의 우울한 전망
홍준표 대구시장 ‘대구직할시’ 깃발
대구·경북 메가시티 통합 급물살
부울경 메가시티는 방향성 잃어
보다 확실한 부산 미래상 제시를

“저 높은 아파트는 언제 텅 비게 될까요.” 부산에 사는 한 중학생의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말뜻을 종잡을 수 없어 물었다. “바닷가 좋은 아파트가 왜 비어. 사람들이 잘 살고 있는데.” 어른의 놀란 표정에 아랑곳없이 중학생은 태연하게 답했다. “언젠가는 다들 서울 가서 사는 시대가 온대요. 그러면 부산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곳이 된다는데요. 학교 친구들도 다 그래요.”


바로 며칠 전 나눈 대화다. 불과 열다섯 살의 부산 청소년이 언젠간 서울로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니. 일하고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주변 친구들도 다 그렇게 알고 있다고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숨김없는 부산 청소년의 현실 인식이다.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도 바다가 있는 부산이 좋지 않으냐며 나는 말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곤 몹시 부끄러워졌다.

통계청이 지난해 말 발표한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50년 부산 인구는 251만 명으로 줄어든다. 올해 334만 명인 인구가 26년 후엔 80만 명 넘게 감소하게 된다는 예측이다. 다른 연구 자료를 보면 부산·울산·경남 인구는 현재 780만 명에서 2100년이 되면 318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에서 부산의 존재는 미미해진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여러 과학적 추산을 살펴보면 부산이 거의 사라질 것이라고 보는 부산 청소년 인식은 조금 성급한 면이 있긴 하지만, 상당히 ‘미래 예측적’인 것만은 틀림없다.

‘부산 소멸’이란 고민에 한동안 압도된 사이 문득 ‘대구직할시’ 소식이 들려왔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18일 대구·경북을 합쳐 인구 500만 명 규모의 ‘한반도 제2의 도시’를 만들자고 치고 나온 것이다. 당장 2년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서 대구·경북을 합쳐 대구직할시장 1명만 선출하자고 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즉각 맞장구쳤다. 이 지사는 이튿날 “수도권 일극 체제로는 저출생·지방소멸 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대구직할시 방안에 동의했다.

부산을 비롯한 동남권이 제대로 한 방 먹은 분위기다. 입으로만 ‘수도권 일극 체제에 맞대응하는 남부권 중심축’을 외치던 부산은 더욱 야단났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국가 핵심 지역 어젠다의 주도권을 홍 시장과 대구·경북에게 빼앗긴 형국이어서다. 그것도 박형준 부산시장의 일주일 유럽 출장과 맞물린 기습이니, 부산시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꼴이다.

부울경 광역지자체가 추진해 온 초광역 메가시티는 흐지부지 물거품이 됐다. 정작 메가시티 깃발을 가장 먼저 든 부울경이 지금은 대열에서 가장 뒤처지는 모습이다. 최근 대구·경북이 크게 불을 지폈지만, 대전·세종·충남·충북 4개 광역 시·도는 ‘충청지방정부연합’이란 명칭으로 충청권 메가시티를 더욱 구체화하는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 감소에 따라 ‘정해진 미래’가 있다면, 우리에게 메가시티는 ‘피할 수 없는 미래’라는 전문가들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 보자. 국토교통부 한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부산과 같은 지방 거점도시에 예산을 집중 투자하는 방식이 우리나라 인구 감소에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이다. 연구 결과 부울경에 재정을 투입하지 않으면 2100년 인구는 318만 명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부산을 중심으로 한 거점도시에 집중 투자할 경우 2100년 부울경 인구는 459만 명이 될 수도 있다고 예측된다. 이 재정을 국내 226개 기초자치단체에 고르게 배분해 투자하면 효과가 훨씬 떨어진다.

부울경이 이런 논리를 몰라서 머뭇거리는 건 아니다. 수도권에 맞대응할 수 있는 지방 중심축으론 부울경이 가장 걸맞다. 800만 명에 육박하는 인구와 산업 규모 등 외형으로 보면 수도권에 이은 국내 2위 권역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여유 부리는 틈을 타 더 절박한 지역들이 앞질러 나간다. 2위의 여유는 도태로 이어질 수 있다. 각 지역이 주도권을 놓고 다퉈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가야 할 길이 맞다면 온 지역이 함께 더욱 옳은 방향을 모색하자는 뜻이다.

박 시장이 유럽 출장으로 최근 자리를 비운 사이 번영로 터널 입구에 나붙은 괴문구 ‘꾀·끼·깡·꼴·끈’으로 큰 소동이 빚어졌다. 2030 월드엑스포 유치 참패로 가뜩이나 힘든 부산시민을 더 심란하게 만든 전국적 소란이었다. 박 시장은 올해 시무식에서 언급한 덕목대로 꾀(지혜), 끼(재능), 깡(용기), 꼴(디자인), 끈(네트워킹)을 다해 메가시티 정책을 보다 면밀히 검토해 부산이 가야 할 길을 더욱 뚜렷하게 제시해야 한다. 여러모로 어수선해진 부산시민의 마음을 보듬어야 할 때다.


이현우 기자 hoor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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