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저렴이 웨딩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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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수성례(酌水成禮). 물 한 그릇 떠 놓고 혼례를 치른다는 뜻. 궁핍한 남녀의 외로운 결혼식을 그리 일컫는다. 요즘 청년들에게는 불편한 장면일 테다. 형편 안 되면 말 일이지 꼭 그렇게까지 해서 결혼이란 걸 하고 싶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리 볼 게 아니다. 겨우 물 한 그릇이지만, 이때 물은 그냥 물이 아니다. 정화수(井華水)다. 새벽에 길은 맑고 정결한 우물물. 실제 우물물이 아니라도 마음을 다해 그리 여기면 곧 정화수다. 정화수 떠 놓는 행위는 부정(不淨)을 없애는 씻김 의식이다. 기독교의 세례(洗禮)나 불교의 관욕(灌浴)이 그런 것처럼. 제대로 갖추어 치르지는 못해도 정결한 물로써 천지신명에게 가시버시의 연 맺음을 고하는 신성한 예식, 즉 혼례로서 충분한 것이다.

요즘 혼례, 너무 화려하다. 당연히 돈이 많이 들어간다. 집값을 제외하고도 평균 6000만 원은 있어야 한다. 어림짐작이 아니라 어느 결혼정보회사의 최근 조사 결과다. 속을 들여다보면 기가 찬다. 프러포즈에만 수백만 원을 쓴다. 호텔 같은 호화로운 공간, 명품 가방, 보석 따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프러포즈도 한 번이 아니다. 처음 결혼 의사를 묻는 ‘1차 프러포즈’, 결혼 준비 도중에 하는 ‘2차 프러포즈’, 프러포즈 받은 사람이 답을 하는 ‘답 프러포즈’도 있다고 한다. 이건 서막에 불과하다. 웨딩드레스 등 부대비용에 메인 이벤트인 결혼식까지 수천만 원이 깨진다.

“결혼하려면 남녀 각자 연봉이 7000만 원은 돼야 한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연봉 7000만 원 받는 청년이 얼마나 있을까. 돈 없으면 결혼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게다. 모두가 지나치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치스러운 혼례의 강박을 떼지 못한다. “한 번뿐인 결혼인데”라며 부리는 허영일 수도, 웨딩업체의 교묘한 상술에 휘둘리는 탓일 수도 있다. 둘 다가 원인이라는 게 더 정확하겠다.

이런 형편에 참으로 의외인 소식이 외신을 타고 전해졌다. 미국에서 부는 ‘저렴이 웨딩’ 열풍 소식이다. 웨딩드레스가 한 예로, 미국 청년들이 3만~6만 원 정도의 값싼 웨딩드레스에 몰려들고 있으며, 그 바람을 타고 패션업체들도 저렴한 웨딩드레스를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고 한다. 거기나 여기나 삶이 팍팍하기는 매한가지일 텐데, 청년들의 생각은 어째서 이렇게 다를까. “축의금 5만 원 낼 거면 오지 마라”는 말을 서슴지 않을 정도로 백년가약이 돈으로 치환되는 세태다. 씁쓸하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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